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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Oct 29. 2023

휴지심의 반란

#2. 상상이 현실이 되는 '휴지심 놀이'

<놀이가 일어난 배경>
휴지를 다 쓰고 나면 남는 동그란 휴지심, 늘 재활용품 영역에 비치되어 있었지만 아이들의 눈길을 크게 끌지 않는 휴지심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된 놀이이다. 여름철 맴맴맴 매미의 울음소리를 듣고 ‘매미가 있는 높은 나무’ 위까지 올라갈 수 있는 휴지심 다리를 만들어보자’라고 발현된 아이들의 생각에서부터 어떻게 하면 휴지심을 길게 연결할 수 있을지, 기다란 휴지심 기둥으로는 어떤 놀이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시도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높은 나무 위에 있는 매미가 궁금해  

‘맴맴맴’ 우는 매미소리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 높은 나무에 앉아있는 매미를 본 아이들이 양팔을 뻗으며 “매미 보여줘”라고 말한다. 교사가 아이를 안아서 매미 가까이 다가가자 눈이 동그래지며 “매미다!!”라고 소리를 지르고 소리를 들은 다른 아이들이 나무 주변으로 몰려든다. 나무의 수액을 주식으로 먹는 매미는 항상 높은 나무 위에 매달려있어 키가 작은 아이들은 매미를 보려면 성인의 도움을 받는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매미와 연결될 수 있을까? 그때였다.

 “매미에게 갈 수 있는 아주 기다란 다리를 만들어보자”  

다리를 만들 재료를 찾던 아이들이 재활용품 영역에 두었던 휴지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원통형의 휴지심을 높은기둥처럼 쌓아보려 했지만 금방 무너지자 한 아이가 “여기에 테이프를 붙여주자”라고 말한다. 색테이프를 제공하자 아이들은 혼자서 혹은 여럿이서 모여 휴지심 사이에 테이프를 붙여 길게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분 정도가 흘렀을까 짧았던 휴지심이 점점 길어진다. “이것 봐봐 휴지심이 천장에 닿아” 자신들의 키보다도 길어진 휴지심이 재미있는 놀잇감이 되었는지, 교실 이곳저곳을 다니며 휴지심 기둥 놀이가 진행되고 그러다 매미가 생각한 아이들이 외친다. “우리 이제 매미 만나러 가요!”      


# 너무 길면 구부러지기 쉽지

교실에서 아이들이 각자 열심히 길게 만들어준 기둥을 모아서 연결해 주자 처음에 작고 짧았던 휴지심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길어졌다. 휴지심이 얼마나 길어졌을까? 아이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자~ 하나, 둘, 셋!” 소리에 맞춰 교사는 휴지심 기둥을 번쩍 세워주자 아이들이 반짝반짝한 눈으로 길어진 휴지심 기둥의 끝을 쳐다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휴지심 기둥의 중간이 서서히 구부러지더니 이내 ‘기역자’가 되어버린다. “으악” 비명 외치는 아이들의 눈에는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아쉬운 대로 옆에 있는 계단에 휴지심 기둥을 기대어 지탱해 주었다. 처음보다는 완전히 구부러지지는 않았으나 부분 부분 구부러진 모습이 마치 알파벳 ‘S’ 자를 연상시킨다. 열심히 휴지심을 연결하며 매미에게 가까워지고자 하는 꿈이 있었으나 실현은 그렇게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다들 아쉬워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구부러진 휴지심 기둥 또한 그들에게 즐거운 놀이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기울어지는 휴지심 기둥



<교사의 고민과 놀이 지원>
아이들의 놀이를 따라다가 보면 전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경우가 잦다. 매미에게 닿고 싶다는 엉뚱한 소원에서 비롯된 휴지심 놀이가 그러했다. 테이프로 휴지심 사이에 붙여 연결하는 과정에서 조금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는 좀 더 잘하는 아이들이 도움을 주었다. 휴지심으로 기다란 기둥을 만들어 높은 나무 위에 있는 매미에게 닿겠다는 시도는 성인의 입장에서는 약간은 터무니없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둥을 만들어 매미에게 도달하는 계획은 아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이 만들어낸 획기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아직은 미숙하고 경험이 부족하기에 궁금한 것들이 많은 아이들에게 교사는 휴지심과 테이프를 충분히 제공하며 그들이 원하는 만큼 더 높이 쌓아가도록 충분한 자료를 지원해 주었다. 앞으로 휴지심 놀이는 어떻게 변화하고 확장되어 갈 것인가?  

#휴지심을 블록처럼 끼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

자꾸만 구부러지는 휴지심, 어떻게 하면 구부러지지 않는 기둥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 하던 고민에 봉착한 아이들, 오전 놀이시간이었다. 끼우기 블록으로 여러 모양을 구성하던 한 아이가 문득 말했다. “휴지심도 블록처럼 끼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 휴지심을 어떻게 블록처럼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휴지심의 끝을 오려 끼워보면 어떻게 될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만 2세 영아들이기에 날카로운 가위를 사용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어 자르는 것에는 교사가 도움을 주고 영아들은 잘린 휴지심을 서로 끼워 연결해 보았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여러 번 해보니 요령을 습득하게 되어서 테이프로 연결하는 것보다 더욱 쉽고 빠르게 연결할 수 있었다. 더불어 정말 블록처럼 끼웠다 뺐다를 반복할 수 있었고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휴지심 기둥의 길이를 조절하기에도 용이했다.  


#길어진 휴지심으로는 어떤 놀이를 할 수 있을까?

휴지심 놀이가 왁자지껄 이루어지고 나면 기다란 휴지심 기둥들이 놀이의 흔적으로 남는다. 교사는 그 휴지심 기둥을 한 곳에 모아서 아이들이 언제든 꺼내어 자유롭게 놀이할 수 있도록 놀이터에 비치해 주었다. 아이들은 예상보다 휴지심 기둥으로 놀이하는 것을 좋아했다. 길어진 휴지심을 놀이터의 미끄럼틀 혹은 경사진 곳에서 굴려보기도 하고 휴지심을 뱀이라고 설정한 후 뱀을 피해 다니는 놀이를 하기도 했다. 어느 날 아이 2명이 기다란 휴지심 기둥의 양끝 구멍 각각에 눈을 대고 있어 교사가 다가가 “서로가 보이는 거야?”라고 질문하자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우리는 연결되어 있어!”  


길어진 휴지심 기둥을 여러 명의 아이들이 함께 잡은 후 칙칙폭폭 기차놀이를 하기도 했다. 휴지심 기차를 안정적으로 이동하던 중 기차 기관사의 역할을 맡은 아이가 갑자기 달리면서 뒷부분을 잡고 있던 아이들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발이 꼬여 “으악”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넘어졌다. 돌아보며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기관사 아이에게 교사가 “기차는 함께 속도를 맞추어 걸어야지 끊어지지 않아~ 기관사의 역할이 중요해”라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칙칙폭폭 기차를 출발한다. 넘어지지 않도록 천천히, 가끔은 친구들을 돌아보며 걷는다. 그 뒤로 기차는 넘어지지 않았다.

한 여자아이는 자꾸만 휴지심의 동그란 부분에 눈을 대고 구멍 안을 살펴본다. 휴지심안은 그저 깜깜 할 텐데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한참을 집중해서 휴지심 구멍을 들여다보던 하린이가 교사를 보며 말했다. “여기 개미가 보여” 자세히 보니 기다란 기둥의 끝이 흙 안쪽으로 들어가 있었다. 휴지심 기둥으로 개미를 관찰하는 현미경 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깥놀이 시간 내내 그 아이는 구멍에 눈을 대고 개미를 열심히 관찰했다.


놀이터에 바람이 불면 아이들이 놀이하고 있던 휴지심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놀이의 진행이 엉망이 될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바람이 불 때마다 아이들은 즐거워한다.

바닥을 굴러다니는 휴지심들이 또 어떤 놀이로 변신할까?



<놀이 사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특성과 교사의 생각 나누기>
휴지심 놀이의 발단은 매미였다. 매미에게 닿고 싶어 만든 휴지심 기둥이었지만 놀이가 지속되는 동안 여름에서 가을이 되었다. 놀이의 과정에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땐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 보았고 바람이 불어 애써 연결한 휴지심이 흩어지더라도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했다. 처음에 만든 휴지심 기둥이 계속 무너졌을 때 교사는 덜컥 걱정을 했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시원치 않아 이대로 놀이가 멈춰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구부러진 휴지심 기둥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고 휴지심 기둥의 구부러진 특성을 활용해 더 재미있는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목적에 얽매이지 않고 순간순간을 즐기는 것, 주도적으로 궁리하고 탐색하는 것, 서로 협력하고 배려하는 기쁨을 느끼는 것’이 바로 건강한 놀이의 본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도적으로 놀이할 수 있는 자유와 적절한 자료만 제공된다면 무한대로 신나는 놀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아이들의 유능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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