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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Apr 19. 2024

월 천만원도 못 벌어오면서

금쪽같은 내새끼 극강의 절약맘

최근 방송된 <금쪽같은 내새끼>는 아이가 문제의 중심이 아니었다. 방송분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큰 아이가 동생을 때리고 괴롭히는 문제행동 때문에 출연하게 된 것 같은데 결국에는 엄마의 과도한 절약 강박이 주된 화제가 되버린 것이다.


내 아이도 방송에 출연하는 금쪽이들 못지 않게 문제 행동이 많았다. 방송에 나가서 전국적으로 얼굴이 팔리는걸 감수하고서라도 오은영 박사님의 극약처방을 받을만한 용기는 없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얼 못하겠느냐 싶겠지만 나도 그렇지만 남편도 절대 동의하지 않았을거다. 다행히 적극적인 약물 치료를 시작하면서 금쪽이에 나갈 정도의 눈에 띄는 문제행동은 줄어드는 편이라, 늘 수동적인 시청자 입장에서 참고만 했다.


티비를 즐겨보지도 않기에 따로 금쪽이를 챙겨보지는 않지만 가끔 인기 방영분은 기사나 영상에서 소개되는 경우가 많아서 참고식으로 보는 편이다. 최근에는 아이의 언어틱 증상이 걱정이 되어서 여기 저기 검색하다가 전에 금쪽이에서 거의 똑같은 증상을 보이는 친구가 출연한 적이 있어서 참고했다. 언어틱에 대한 오은영 박사님의 설명과 처방이 도움이 되었다. (결국 원인은 높은 불안도 때문이었음)


하지만 이번에 방송된 극강의 절약맘은 아이가 금쪽이라기보다 엄마가 금쪽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상식적인 선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을만큼 과도하게 일상의 모든 면에서 자린고비 정신을 보여주었다. 몇 가지 행동 양상을 본 후에 오은영 박사님은 딱 한가지 질문을 엄마에게 던졌다.


"평소에 두루마기 휴지를 사서 쓰십니까?"


박사님은 사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한 모양이었다. 수돗물, 전기, 보일러비와 같은 안전한 생존에 직결되는 모든 소비재를 극단적으로 아끼고 절약하는 절약맘의 행동을 보고 한 질문이었다. 절약맘은 우물거리면서 산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두루마기 휴지를 밖에서 누가 쓰던거를 가져와서 쓰는 것이었다. 변기물도 못 내리게 하고, 욕조 목욕도 못하게 하고, 한 겨울에도 난방비가 천원도 안 나오는 악착같은 삶을 사는 엄마였다.


목표가 서른 전에 일억을 모으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자녀와의 관계뿐만이 아니었다. 남편과의 관계, 부부 사이도 갈등이 곯을대로 곯은 상태였다. 서로가 대화가 없고,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부부 상담까지 받았다. 아내의 불만은 늘 돈에 관한 것이었다. 경제적 안정을 위해서, 더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해서, 그것도 안되면 투잡이라도 뛰면서 돈을 벌어야하는데 남편이 그럴 의지가 없다는게 불만이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자기네 가정이 심하게 가난한것도 아니고, 대출도 없이 자가집에 살고 있는데 아내가 너무 과하다는 입장이었다. 퇴근하고 나면 아내는 자기계발을 하거나 자격증 공부를 하기를 원하지만 남편은 아이들과 놀아주고 편하게 쉬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에게 이런말까지 했다.


"월 천만원도 못 벌어오면서.."



나는 경악했다. 어떻게든 같은 여자 입장에서 절약맘을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저 말은 이땅의 모든 남성, 아니 가장들에게 상처가 될게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이 시대에 월 천만원을 안정적으로 버는 남편들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월 천만원을 벌지 못하는 남편들이 저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니, 월 천 이상을 버는 남자들에게도 불편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근로소득이든 사업소득이든 한 달에 천만원 이상을 버는 사람은 그 돈의 액수만큼 육체적 또는 정신적 노동을 불태울 것이다. 소수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처음에는 절약맘을 보면서 어쩜 저렇게 악착같이 살까, 좀 심한거 아닌가 싶었다. 계속 머리속에서 절약맘의 잔상이 떠나지 않아 계속 떠올랐다. 검색해보니 관련 기사와 블로그, 카페글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대부분은 엄마의 과도한 자린고비에 대한 비난글이 많았다. 저 정도면 정신과 약을 먹어야한다는 글도 있었다.


그 엄마도 결국은 피해자가 아닐까. 그 정도의 강박증을 지니게 되기까지 어려서 어떤 트라우마라든가 특정한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서 그런게 아닐까.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그런 절약에 대한 강박증이 성격과 습관으로 내재화되어서 이제는 고칠래도 고치기 힘든 상태까지 와버린거 아닐까. 그로인해 남편과 자식까지 힘들어지게 되었으니.


더 가슴 아픈건 큰 아이가 엄마랑 따로 살고 싶다고, 엄마랑 떨어져 살면 더 행복할 거 같다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오은영 박사님은 결국 금쪽 처방을 내리지 않았다. 문제는 엄마에게 있다고 본 것 같다. 그 후 방송분은 보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듯 하다.


본인의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과 가족의 끊임없는 지지와 지원을 받으면 그래도 긍정적인 변화가 오지 않을까 기대도 된다. 그러나 절약맘의 다른 행동들은 다 차치하고서라도, 남편에게 월천 못벌어온다는 발언은 남자가 아닌 여자로서도 꽤나 불편하게 들린다.


남자로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남자는 자존심 빼면 시체란 말이 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자기 외모가 '류준열'보다는 잘생겼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차은우급은 안되더라도 사뭇 연예인치고(?) 덜 화려한 외모 축에 끼는 류준열 정도는 능가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말에 코웃음치긴 했지만 그만큼 남자들은 자기 자존심 하나에 의지해서 사는 경우가 많다.


훤칠한 외모, 화려한 학벌 따위로 자존심을 메꾸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도 한 가족을 먹여살리는 가장이라면 경제적 능력이 남자의 자존심을 구성하는 가장 큰 척도가 되는 세상 아닐까 감히 추측해본다.


남들보다 더 좋은 집에 살면서 더 좋은 차를 타고, 자녀들에게 더 좋은 교육을 시키고, 더 많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여행을 데리고 다니고 싶은게 모든 인간의 그리고 아빠들의 바램이다. 모두가 그 욕망을 다 채울 수 없고, 각자의 능력과 경험에 한계가 있기에 원하는만큼 이루고 살지 못하는게 보통의 우리네 삶이다.


남편이 월 천을 못 벌어도 월 오백을 벌어도, 월 이백을 벌어도 처자식 내버리지 않고 성실히 한 직장에서 남의 눈치 봐가며 스트레스 받아가며, 싫은 소리 들으면서 본인 한 몸 불태워 일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게 우선 아닐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성실히 돈을 버는게 기본적인 의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기본적인 의무를 저버리는 사람도 의외로 많은 세상이다.


남편을 하늘같이 떠받드는 구시대적 발상에는 철저히 저항하고 싶지만, 그래도 "월천도 못벌어온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이 남녀평등 시대라고 해서 쉽게 허용가능한 발언은 아니라고 본다. 남자의 자존심은 좀 지켜줘야한다. 특히 돈에 관한 한.


금쪽이 엄마는 이 불안정한 세상에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 재테크 책을 많이 보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아마 그렇게 많이 공부한 재테크 책에서 ‘월 천쯤’ 버는 것 쉽다고 외쳐댄게 아닐까. 네가 노력을 덜해서, 퇴근후에 자기계발은 안해서, 투잡이라도 뛰면서 더 벌 얀구를 하지 않은거라고 가스라이팅하지 않을을까싶다.



절약맘을 비난하고자 쓴 글은 아니다. 오은영 박사님 마법으로 그 가정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올거라고 믿는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그리고 더이상 각종 SNS에서도 비난받지 않기를 바란다.


본인 가정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방송에까지 나간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에 설령 대다수의 사람이 보기에 답답하고 비상식적이라고 해도, 본인은 그게 상식이라 믿고 살아왔기에 문제의식이 없이 지낸온게 문제라고 보면 된다. 따지고보면 다들 각자의 영역에서 어느 정도의 ‘강박’은 지니고있지 않은가. 그 분은 도가 지나칠뿐이다.


방송을 보면서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상식적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대다수가 봤을 때 혹시 그렇지 않은 면이 있지는 않을까. 내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서 늘 고민해야하고 나쁜 습관은 고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나도 모르게 어느샌가 손도 쓸 수 없을만큼 나쁜 버릇들이 내재화되어 감당하지 못할 수준까지 가기전에 인지해야한다.


그리고 어느 한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아가면서, 적당히 타협할 필요가 있을 때는 모르는척 타협하면서 힘을 빼고 살 필요가 있는것 같다. 절약도 재테크도 중요하지만 적당히 눈감아 가면서 즐기는 순간도 있어야 삶을 이어갈 에너지가 생기니까.




<이미지 출처: 채널A 금쪽같은 내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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