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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Apr 04. 2024

불륜글 보고 남편 의심하기

브런치 불륜글은 못 참지

수시로 브런치 앱을 켜고 하이에나처럼 이 글 저 글 훑어본다. 요일별 연재글, 추천작가글, 상위 브런치북 글 등 읽다 보면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과 생각, 그리고 각자의 사정과 다채로운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걸 새삼 알게 된다. 쓸데없이 광고나 마케팅 홍보은 거의 없고 정말 글을 위한 글만 접할 수 있는 공간이라서 브런치는 소중하다.


브런치 글을 보다 보면 상위에 자주 노출되는 소재 중 하나는 바로 '불륜'이다. 이혼도 정말 자주 볼 수 있는 글인 것 같긴 한데, 불륜 글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주로 아내인 여자 작가님들이 쓴 글이 많다. 아니 거의 대부분인 것 같다. 혹시 남편 입장에서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 글을 쓰는 작가님도 있나? 아직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대부분은 나와 같은 여자 입장에서, 남편의 불륜으로 인한 배신과 분노에 몸부림치며 쓴 글이 많다. 정말 사람은 자극적인 주제에 끌리는지 나도 이런 불륜글을 한 번 읽게 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보게 된다. 글쓴이 입장에 나도 모르게 이입되면서 같이 분노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이 모든 고난과 역경을 어떻게 이겨내고 이렇게 담담하게 글로 써 내려갔는지 글을 쓴 작가님에 대한 존경심까지 차오른다.  


한창 불륜글을 읽다가 남편을 바라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의심을 하게 된다.

'혹시 저 인간도 나 몰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브런치를 모르는 남편에게 그냥 어디 인터넷에서 본 글인데 어떤 남편이 세상에 다른 여자랑 바람이 나서 돈 갖다 바치고 집안일, 자식일은 나 몰라라 하며 저지른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이혼까지 요구했대 하면서 떠본다. 얼굴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그러면 남편은 꼭 "야, 그거는 아내 입장에서 쓴 글이잖아. 집안 속사정은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 남자가 그렇게 바람을 피우게 된 데에는 뭔가 남들은 모르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는 거야. 너는 꼭 여자 편만 들더라." 하면서 가재는 게 편이라고 남자 편에서 역성을 든다.


어떤 글에서 남편이 자기 몰래 안마방에 꾸준히 출입한 사실을 알게 되어서 '출근부'라는 남자들 세계에서 공용되는 단어가 있다고 했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용어였다. 직장이든 어디 일터든 쓰일 수 있는 말이지만 유독 남편과 친구들이 자주 언급하는 단어였는데 나중에 그게 안마방에 출근한 여직원 목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그 날밤 퇴근한 남편에게 다짜고짜 출근부가 뭔지 아냐고 물어보았다. 황당한 표정으로 그게 뭐냐고 나에게 되묻는 남편에게 모르는 척하지 말고 알면 안다고 솔직히 말하라고 압박했다. 끝까지 모르는 척하길래 실은 이런 의미의 단어다, 해줬더니 자기는 가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겠냐며 생사람 잡지 말라고 화를 낸다.


흥. 진짜 안 가본 척하는 건지 나는 모를 일이다. 아니면 안 가본 건 '안마방'일뿐 그와 비슷한 종류의 다른 업장은 가봤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서로의 핸드폰은 보지 않는 게 우리 부부의 암묵적인 약속이다. 고백하자면 예전 신혼 때 한번 몰래 본 적이 있다. 남자들 단톡방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던 기억이 난다. 저속적이고 수준 떨어지는 음담패설과 이미지, 영상 공유에 넌더리가 났다. 남편이 적극적으로 뭔가를 올린다거나 말을 하지는 않았는데도 그 공간에 한 패거리로 있다는 자체에 정이 떨어졌다. 배웠다는 양반들이 왜 이런 수준의 대화밖에 못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남자들이란..


그 후로는 남편의 핸드폰은 아예 보지 않고 있다. 마음먹으면 볼 수도 있지만, 남편도 내 핸드폰을 보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에 예의상 나도 참으려고 한다. 보면 화만 날뿐 기분 좋을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은 강한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내 남편은 절대 그럴 일 없다는 생각 또한 하지 않는다. 몇 번의 실망스러운 행적을 보였기에. 그래도 가정을 포기하고 처자식을 맞바꿀 만큼 뜨거운 불륜을 저지를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이 남자를 믿지는 못하겠다. 넋 놓고 믿었다가 큰코다칠 수 있으니까, 너무 배신감이 커서 못 받아들이고 내가 나로 살지 못할 만큼 힘들 수도 있으니까 앞으로도 믿지는 않을 거다. 핏줄은 못 끊어도 남편 아내는 얼마든지 법적으로 끊어질 수 있는 관계니까. 너는 너, 나는 나 마인드로 사는 게 목표인데 자식 때문인지 사실 잘 안될 때도 많다.


불륜글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예방주사 맞듯, 남자는 이렇게나 어리석을 수 있다는 것, 너무 백 퍼센트 믿고 의지하면 안 된다는 것, 내 남자는 절대 처자식 두고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어리석은 믿음 따위, 내 남편도 새로운 여자에게 설레어서 혼외 연애관계를 꿈꿀 수 있으며 자칫 현실화시켜버릴 수도 있다는 것 등을 염두에 두려고 한다.


브런치 글들을 보면 자신이 의도하지 않아도 언제든 겪을 수 있는 게 배우자의 외도, 불륜, 바람, 이혼이던데. 그리고 불륜 상대방도 의외로 결혼한 유부녀인 경우도 참 많더라. 가해자는 조용하다고 그 사람들 입장에서 쓴 글은 본 적이 없으니 그 입장을 이해해 볼 기회는 없지만.


요즘은 대기업 회장님도 당당하게 이혼 처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혼외자도 낳고 동거인과 공식적인 행보도 이어가는 걸 보면.. 세상이 아무리 불륜이라 명명해도 본인들에게는 순수한 사랑이요 로맨스일 수도 있으니.


꼭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백년해로해야 하는 시대도 아닌데 남편만 바라보고 살아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기왕지사 결혼하고 애 낳고 살고 있으니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 한 번 꾸린 가정, 끝까지 무탈하게 이끌어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남편도, 나도 한순간의 감정과 설렘에 휩쓸리기보다 이성과 자제력을 우위에 두도록 매사에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유혹과 흔들림은 한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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