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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Apr 26. 2024

칭찬을 칭찬으로 못 받아들이는 병

이것도 병인가요

안과 정기진료가 있어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진료 보기 전에 먼저 시력검사부터 했다. 관리한다고 해주었는데도 그새 몇 달도 안되어서 시력은 좀 더 나빠져 있었다. 나빠진 시력 검사 결과를 보고 아이에게 이래서 게임은 절대 하면 안된다고, 게임이 얼마나 눈에 나쁜줄 아느냐고 겁을 줬다. 아이는 이러다 앞을 못보게 될 정도로 눈이 나빠질까봐 잔뜩 겁을 먹은 듯 했다.


추가 검사를 받아야할까봐 약간 걱정되는 마음으로 진료실로 향했다. 의사선생님을 보자마자 아이는 방금 한 시력검사에 대해 묻지도 않았는데 아주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검사 결과는 의사에게 다 데이터로 전송됐을텐데 굳이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막무가내로 구구절절 늘어놓는 아이를 보며 뜯어 말리고 싶은 심정을 억눌렀다.


'또 ADHD 증상으로 언어적 충동성을 억누르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구나.

의사, 간호사 선생님이 이상한 애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묻지도 않은 쓸데없는 소리를 왜 저렇게 많이 하는거야.

좀 조용히 잠자코 앉아서 진료 기다렸다가 선생님이 먼저 질문이라도 물어보면 대답하면 되는데, 왜 저렇게 말을 늘어놓는건지.

혹시 다들 애가 ADHD인거 들키면 어쩌지.. 겉으로는 표현 안해도 속으로 눈치 챘을거 같은데..

아 부끄럽다 부끄러워..'



의사선생님이 뭔가 진료를 시작하기도 전에 자기 증상에 대해 한창 떠들어대는 아이를 보며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이다. 어렸을 때는 말도 안 듣고 떼를 쓰느라 진료 자체가 힘들어서 병원에 데려오는게 고역이었는데 좀 크고 나니 또 다른 이유로 당혹감이 앞선다.



원장님은 아이의 말에는 별 대수롭지 않은듯 진료를 보고 난 후 좀 나빠지긴 했지만 당장 렌즈를 바꿀 필요는 없고 몇 달 지켜보자고 하셨다. 그러더니 갑자기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15년생이면 3학년이니? 선생님 아이랑 동갑이네. 우리 애는 너처럼 말을 잘 못하는데, 넌 3학년치고 말도 굉장히 잘하고 야무지네. 다음 진료때 보자."


"...???"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애랑 나를 놀리는건가?


애는 말이 안 터져서 언어발달지연 소견을 5세때부터 받아서 부단히 치료중이고, 언어표현은 더디기만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소통다운 소통이 겨우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그나마도 화용적인 부분은 어색함이 있어서 계속 신경쓰는 중이다. 말이 터지면 정말 다 끝나는줄 알았는데 이제는 adhd 증상으로 인해 남의 말을 듣기보다 자기말만 하는 자기중심성이 돋보이고 있어서 그것도 걱정이다.



특히나 또래보다는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친절한 어른들과의 대화를 참 좋아해서 어딜가든 어른들만 보이면 이런 저런 말을 걸고 대화하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그것도 상황 봐가면서 하면 좋겠는데, 이렇게 병원에 와서 한시가 바쁜 의료진 앞에서 장광설을 늘어놓는 아이를 보면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드는 것이다.



그렇게 부족한 점만 눈에 들어오는 내 아이에게 갑작스런 의사선생님의 칭찬이라니? 나는 무척 당황했다.

순간 속으로 의사선생님 아들도 발달장애인가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초3이나 되는 애가 이 정도로 말을 못하지는 않을텐데 왜 우리 애한테 말을 잘한다고 칭찬을 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진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한참을 생각했다.

별 뜻없이 아이가 본인 시력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설명하는게 귀여워서 가볍게 칭찬한걸지도 모른다. 의사선생님 아이가 발달장애가 아닐 수도 있다. 보통의 또래 초3에 비해서 우리 애가 말을 조리있게 잘한다는 인상을 받았기에 한 말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걸 있는 그대로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거다.



칭찬을 칭찬으로 못받아들이는 인지왜곡은 아이가 가진 증상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진단명의 프레임속에 가두고 그 한계에 꽁꽁 묶여서 애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못미더워서, 남이 하는 가벼운 칭찬조차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곡하고 있는 나는 뭐가 문제일까.



늘 모든 면에서 아이는 부족한 존재, 뭔가 더 채워넣어야할 존재, 또래보다 서투르고 느린 존재라고만 여겼다. 더 발달을 끌어올려야하는데, 더 나아져야하는데, 빨리 또래만큼 사회성이 올라와야하는데..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아이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바라보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게 내 죄는 아닌것 같은데.



발달장애를 키우는 부모에게는 남다른 역량이 필요한 것 같다. 그 중 하나는 현재 아이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중립적인 시각도 필수적인 요소인데 그와 함께 아이의 현 상태를 무조건 마이너스라는 개념으로 바라보지 않고 나름대로 뛰어난 점은 인정해주고 다소 부족한 점은 보완해준다는 좀 더 현명한 관점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하는 능력도 요구되는 것이다.



비록 현재의 진단명은 발달장애지만 언젠가 아이는 이 프레임을 벗어날지도 모른다. 변화해야하는 것만 아이뿐만이 아닌것 같다.


나에게도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는 피해의식에서 좀 벗어나자. 남이 한 칭찬을 곡해하지도 말고 너무 깊게 그 의미를 곱씹으며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아이를 향한 칭찬은 그저 칭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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