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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Aug 09. 2024

미국 인플루언서의 진실은 뭘까?

Ballerina farm에 대한 고찰

어느 날 우연히 ballerina farm이라는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다.

영상은 말 그대로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미국 유타 주 어느 시골 마을의 목조 주택에서 아름답고 젊은 백인 미국 가정주부가 사워도우 빵을 굽는다. 한 손에는 신생아처럼 보이는 아기를 안고 능숙한 손길로 요리를 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빠져들었다. 빵을 저렇게 '처음부터' 아예 제대로 집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집에 빵을 구울 수 있는 커다란 오븐이 있었다.


창문 밖으로는 광활하게 펼쳐진 농장이 보였고 화려하고 예쁜 외모와는 다르게 영상에 나온 주부는 아주 평범한 농부의 부인이 입을법한 80년대식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목가적이라고 해야 하나, 영상이 주는 평화로운 분위기 자체가 굉장히 매력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계속 보게 되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의 자녀는 안고 있는 신생아 한 명이 아니었다. 보다 보니 세 살짜리도 보이고 여섯일곱 살짜리 아이들도 보이고, 급기야 한창 초등학생 나이의 남자아이들도 보인다. 저 아이들이 다 그녀의 아이들이란 말인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세상에나. 그녀의 자녀는 8명이나 되었다. 8명의 아이를 키우면서 집에서 요리를 하고 살림을 하고 농장일도 하는 사람이었다. 농장에서 소젖을 직접 짜고, 청소도 하고, 트랙터 같은 것도 직접 운전하는 모습도 보였다.

충격적인 건 8명의 자녀를 낳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씬하고 아름다웠다. 그녀는 미시즈 아메리카에 출전해서 수상한 경력도 있었다.  


더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유튜브 이름처럼 결혼 전 그녀는 쥴리어드 대학에서 발레를 전공한 발레리나였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커리어를 완전히 포기하고 남편과 결혼한 후 유타 시골에 자리를 잡고 농장을 사서 아이를 주렁주렁 낳고 살게 된 것이다.


보면 볼수록 그녀의 삶에 대해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니, 애 한 명도 키우기가 힘들어서 방학만 하면 탈진할 정도로 한 번씩 아프기 일쑤인 나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애를 8명이나 낳았고, 종교적인 신념 때문인지 마취 주사도 없이 집에서 출산했다고 한다. 게다가 미시즈아메리카 같은 대회도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출전했다고.


일반적으로 마트나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을 불신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모든 음식을 농장에서 생산한 식재료로 만든다고 했다. 빵도 발효부터 숙성 굽기까지 다 직접 하는 걸 보면 다른 요리도 다 처음부터 그녀가 하는 것 같았다.


남편 포함해서 아이 8명이랑 다 같이 먹을 음식을 매번 이렇게 본인이 직접 한다고?

밖에 나가서 외식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것 같은데 삼시세끼 이렇게 해 먹나?

그렇게 하기엔 영상에서 보이는 한 번에 요리하는 음식양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는데?

빵 하나 저렇게 구워서 10명이 나눠 먹는단 말인가?

영상에서는 따로 애 봐주는 도우미 같은 사람도 없어 보이는데, 혼자 애 여덟을 다 본다고?

애들이 학교를 다니기는 할까?

빵을 굽는 오븐이 엄청 비싸 보이던데?

잠을 잘 시간은 있을까?

저 정도면 하루종일 요리만 하다가 끝나는 거 아니야?

저 여자는 육아가 하나도 힘들지 않나?

발레를 해서 기본 체력이 받쳐주는 걸까?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궁금한 마음에 계속 영상을 찾아보게 되었다. 영상 특유의 차분하고 목가적인 분위기가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youtube the ballerina farm>


그런데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미국에서도 이 인플루언서가 상당한 논쟁이 되는 것 같았다. 유튜브와 신문기사에 그녀와 남편 집안에 대한 추측성 내용들이 난무했다. 사실 남편이 항공사를 운영하는 굉장한 부자 집안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며, 아무나 시골 농장에 가서 자리를 잡는다고 저렇게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결혼 전에 남편이 그녀를 스토커 해서 억지로 결혼하다시피 했고, 그녀의 커리어를 다 단절시킨 채 시골에 데려와 애만 낳고 살림만 시킨다는 주장도 있고, 그렇게 가사노동에 혹사당하다시피 하며 고생하는 그녀에게 남편이 생일선물로 달랑 앞치마 하나를 줬다는 둥, 출산을 8번이나 하고도 아가씨처럼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그녀의 모습에 미국 주부들이 박탈감을 느낀다는 둥, 사실은 영상 촬영 도와주는 사람도 있고, 애 봐주는 도우미도 있고, 농장 일꾼도 엄청 많을 거라는 둥 깎아내리는듯한 비난조의 의견도 넘쳐났다.


그 영상의 문제점은, 아이가 집에 8명이나 있는데도 그녀는 항상 평화로운 표정과 말투로 오로지 요리에만 집중하며 치즈를 만들고 빵을 굽는다는 점이다. 애들이 날뛰고 다녀도 아무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신생아를 안고 요리해도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정말 이상할 정도로 신기하다. 아이들은 저렇게 통제하지 않고 좀 내버려 두면서 키워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도대체 뭐가 문제이길래 나는 애 하나도 감당을 못해서 이 난리인데, 게다가 요리도 직접 못하고 쿠팡과 마켓컬리에 적극적으로 의존하면서 사는 형편인데, 그녀는 나보다 훨씬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릴만한(?) 환경인데도 영상 속에서는 이보다 더 안정적이고 평화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최근에 그 인플루언서에 관한 영상과 의견들을 찾아보는데 정신을 많이 빼앗겼다. 그러다가 또 현타가 왔다. 아무 상관도 없는 그 인플루언서의 사생활과 진실이 뭐가 그리 궁금한지 나도 참 어이가 없다 싶다가도, 또 새로운 기사가 올라왔는지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정말 아무의 도움도 없이 오롯이 혼자서 저 큰 살림과 가사노동을 감당하며 아름다움까지 유지하고 있는 거라면, 너무너무 불공평해서 박탈감이 너무 커질 것 같아서일까. 집 앞에 마트와 편의점과 외식할 수 있는 온갖 식당이 있고, 주문하면 바로 다음날 도착하는 로켓시스템 환경에서 살다 보니 집에서 모든 음식을 만들어먹는 그 모습이 너무 생소하고 이국적으로 느껴진 탓도 있을 것 같다.


남편이 항공사 재벌 집안 후계자라고 하니, 아무래도 영상 밖에서는 아내가 좀 더 편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지 않았을까? 뭐, 진실은 그들만 알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도 아니고 먼 나라 남의 사정에 뭘 그리 집착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무리 빵 굽고 요리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여도 영상으로 볼 때 만족감을 느낄 뿐, 내가 그런 식의 요리를 직접 하고자 하는 마음을 하나도 들지 않는다. 웃기지만 대리만족하는 것으로 끝이다. 진실이 뭐든 간에 대중들에게 즐거움과 볼거리를 제공하는 게 인플루언서의 역할이니까, 그 시각에서 보자면 그녀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 관련 비즈니스도 시작해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 같던데 결국 모든 게 수익 달성을 위한 콘셉트 만들기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발레리나로서의 커리어가 끊어지든 말든 주부 미인대회에 나가서 또 다른 꿈을 이뤄내고 있으니 뭐 그녀로서는 대리만족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뭐 한다고 남의 인생을 놓고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결론은? 유튜브 적당히 보고 나나 잘 살자.



<이미지출처: Youtube the ballerina fa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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