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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Nov 13. 2024

악성민원 학부모는 PD수첩에만 있지 않아요

지옥 같은 지난 며칠을 복기하며

지난 며칠간 교사로서 내가 겪었던 일을 상세하게 써 내려가고 싶지만, 구구절절 쓰다 보면 누구인지 추측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어 차마 자세히 쓸 수는 없겠다. 학교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긍정적인 내용이 아닌 이상 자세히 쓴다는 것 자체도 상당히 부담이 가지만 특히나 교직 생활 중 한 번이나 만날까 말까 한 최악의 학부모를 겪었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관리자가 상당히 적극적인 대처로 나서준 편이었고, 교원단체와 교권보호센터 등 자문을 구할만한 통로도 알아보고 직접 연락해서 도움을 강구하고 나니 그래도 조금 숨통은 트인다. 다시 한번 느끼는 바는 세상은 절대 나 잘났다고 혼자서 살 수 없다는 것. 여기저기 주변에서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위로와 도움의 손길로 인해 그나마 이만큼 겪어낼 수 있었다.


<PD수첩, 아무도 그 학부모를 막을 수 없다> 편을 편집된 짧은 영상으로 보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이 정도로 심각하게 직접 부딪히지지 않았기에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방송이 나오고 바로 다음부터 우리 반에서 사안이 발생했고 그때부터 이 악성 민원 학부모의 행동은 개시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PD수첩에서 방영된 학부모가 대응하는 민원 방식과 말투, 요구 사항 등까지 우리 반 학부모와 너무나 똑같이 닮아 있었다. 횟수와 강도가 조금 덜해서 순한맛 버전(?)이라는 미세한 차이만 있을뿐. 이 일로 인해 본인 가슴이 벌렁거리고 손이 벌벌 떨린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감정이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는 것, 지금 당장 어떤 행동을 취해서 일을 제대로 해결해놓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 온갖 핑곗거리를 만들어서 수시로 학교를 방문해서 교장실로 바로 직진해서 교사와 교감의 미온한 대처를 일러바치는 식, 본인이 하고 있는 행동이 교권 침해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교사에게 본인이 시키는 방식 그대로 학생들에게 적용해서 해결하고 결과를 본인에게 당장 보고하라는 무리한 요구, 주말 저녁 할 것 없이 연락을 요구하는 일 등등.


그 학부모의 전적은 학교 내에서 이미 유명했다. 누구보다 아이들에 예뻐하고 사랑으로 대하는 작년 담임선생님도 병가를 낼 정도로 고통스러워하셨고, 관리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내가 진심으로 학생을 대하면, 피곤하고 바쁘지만 좀 더 시간을 내서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자주 임장을 하고 관심과 애정을 쏟아붓는다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이 생각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망상이었다. 이런 내 순진한 착각은 어쩌면 PD수첩에 첫 번째 담임교사로 나왔던 그분의 생각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열정을 다하면 별 일이야 있겠냐 하는 생각. 지금은 교사의 이런 순수한 의도와 열정이 너무나 손쉽게 무시당하기 쉬운 세상이다.


정말 오랜만에 돌아간 학교라서 잘 해내고 싶었다. 특히 그 아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관련 책도 찾아 읽기도 했다. 애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학부모의 마음을 겪어보고 나니 나도 더 잘 해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고, 전보다 더 내 나름의 열정과 애정을 쏟았다. 돌아온 건 악성 민원이라는 사실이 참 씁쓸하지만.


안하무인에 몰상식적이고 본인 감정이 가장 중요하고 본인 말이 법이라는 개념을 가진 사람의 말을 끝도 없이 듣고 있는 일은, 생각보다 강도가 높았다. 내가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괴롭고 힘든 순간이었다. 말 그대로 뒷골이 당겼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아 한숨도 못 잤다. 손 발이 떨렸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그 학부모의 얼굴을 보는 게, 눈빛을 보는 게 힘들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사람은 나를 향해 온갖 성토를 하며 말을 하고 있지만 점점 그 말이 음소거돼 가면서 작게 들리고 눈앞이 흐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속으로는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라는 외침으로 가득 찼다.


본인이 요구하는 내용이 무리한 요구라는 것, 교권침해라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에 넌더리가 났다. 그간 교직생활을 하면서 여러 학부모를 만나왔고 몇 번은 그 과정에서 기분이 상한 적도 있지만 단연코 이 정도로 과한 적은 없었다. 궁금했다. 세상이 점점 변해서 이런 학부모가 생겨난 건지, 내가 악성 민원 학부모에게 잘못 걸린 건지.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약 처방이라도 받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느린 아이를 키우면서도 내 멘탈을 관리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고 그나마 정신 건강은 챙긴 덕분에 약 없이 버티고 있다는 게 나의 소박한 자부심 중 하나였다. 그런 몇 년간의 노력이 이 학부모를 만나, 너무나도 손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게, 나를 약까지 복용하게 만들 수 있는 위력을 학부모가 가졌다는 게 너무나도 억울해서 아직은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아서 버텼다. 대신 심리 상담을 받기로 했다.


다행히 주변에서 내 처지를 많이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어서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 요 며칠간 악성민원학부모키워드만 검색해 가면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이야기들을 찾아 읽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살 것 같았다.


이전에 오랜만에 돌아간 학교에서 아이들이 못 견디게 예뻐서 죽겠다는 글을 썼다. 하지만 교사의 일은 이제 아이들만 다루는 범위를 넘어섰다. 학부모 복도 있어야 한다. 어서 올해가 지나가기를, 무사히 마무리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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