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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Nov 16. 2024

이래서 심리상담을 받는군요

심리상담 처음 받아본 이야기

악성급 민원 학부모로 인해 한동안 많이 괴로웠다. 힘들고 괴로운 마음이 신체화가 되어 나타났고, 손이 벌벌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렸고 가장 힘든 건 밤에 잠을 못 이루었다. 물론 그 민원이 진행되던 시기에 일시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난 증상이긴 했지만 그 며칠이 지옥 같았다. 못 견디게 힘들어서 심리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사실 처음에는 바로 정신건강의학과로 직행해서 당장 수면제라도 처방받아볼까 싶었지만 불면의 밤이 장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루 이틀 잠을 못 자면 세 번째 밤에는 피곤함을 견디지 못하고 곯아떨어지긴 했으니, 다행히 매일 밤 못 자는 수준은 아니었다. 바로 병원의 도움을 받기보다 먼저 상담을 받아보는 절차를 밟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첫 번째 상담날 상담을 받으러 가는 길에도 나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살면서 심리 상담을 내 돈 주고 따로 받아보지도 않았고 아이 발달문제로 하도 힘들어서 한 번 받아볼까 생각도 든 적은 있지만 이게 무슨 돈낭비냐 싶어서 금세 마음을 거뒀다. 대신 책을 많이 읽고, 잘 먹고, 운동을 하면서 내 멘털관리쯤은 스스로 해내는 멋진 사람으로 살아가는 걸 목표로 세웠다.


상담받으면서 괜히 울고 불고 질질 짜는 그런 꼴불견은 되지 말아야지 미리 다짐했다. 신파극의 처량한 주인공처럼 자기 연민에 빠져서 우는 내 모습이 생각만 해도 너무 싫었다. 상담 선생님께 담담하게 내 상황과 힘들었던 점을 이야기해 보고 어떤 이야기를 해주시는지 한 번 찬찬히 드러나보자, 도움이 되는지 안되는지는 한 번 받아보고 그다음 상담을 받을지 결정해보자 싶었다. 일하고 육아하느라 바쁜 일상에서 상담센터까지 오가는 시간까지 하면 상당한 투자가 아닐 수 없었다.


처음 상담선생님을 보고 깜짝 놀랐다. 웬 할머니께서 무심하게 앉아있는데 이름만 보고 젊고 유능한 느낌이 나는 상담자를 기대했던 나는 섬뜩 놀랐지만 내 느낌을 숨기려고 노력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간 어떤 일이 있었냐기에 학교에서 당했던 이야기 위주로 일단 시작했다. 쯧쯧과 한숨과 같은 비언어적 표현인 공감 표현을 해주시기에 더욱 마음 편히 그간 있었던 일을 담담하게 해 나갔다. 이때만 해도 당연히 눈물 따위는 나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과 동료, 교원단체 등에 이미 여러 번 반복한 이야기라서 또 한 번의 반복일 뿐이었다.


하지만 상담선생님은 굉장히 신박한 분석을 내놓아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간 내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들은 모두 다 나에게 극공감을 해주고 악성 학부모에 대해 비난을 해주기는 했지만 이토록 내 마음을 편하게 해결책을 내주지는 않았다. 이래서 상담전공자들이 그냥 아무나 되는 건 아닌 건가 싶었다.


상담선생님의 분석은 이랬다. 그 학부모의 상황과 환경을 듣자 하니, 그분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증오'로 가득하다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다.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에 증오로 가득 차있으면 그 더 밑바닥에는 두려움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고. 그래서 스스로 어찌하지 못하고 그러한 증오를 자신의 아이를 맡겨놓은 학교라는 교육기관에 찾아와서 토해내듯 배설하는 거라고.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그동안 그분의 교육기관을 향한 행패 아닌 행패가 약간은 먹혀왔던 것 같다고. 그래서 멈추지 못하는 거라고.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으니까. 왜냐하면 그분은 그럴 권리가 충분히 있을 정도로 불행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순간 네가 내 불행을 손톱만큼이라도 알리가 하냐고 공격받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들어보더니 나는 굉장히 책임감이 강하고 학부모의 이야기를 귀담아서 잘 들어주는 편이며, 여태 그분이 아이에 대해서 요구하는 바는 최대한 친절하게 들어주다 보니, 쉽게 그분의 먹잇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학부모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로부터 느끼는 자신의 불행과 증오를 담임교사인 나도 같이 그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며 그래서 아이가 털끝만큼이라도 상처를 받으면 들고일어나서 득달같이 담임에게 달려와 당장 해결해 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들으니 소름이 끼쳤다. 정말 정확한 분석인 것 같았다. 내가 그 학부모의 깊은 속마음과 심리까지 이렇게 공부를 해야 하나 싶어서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앞으로 학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 관계가 이어질 수밖에 없으니 나를 보호하는 차원에서라도 알아두는 게 우선이기는 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앞으로 그 학부모에게 '인간미 없는 담임'이 되라고 했다. 그전처럼 그분의 모든 이야기를 끝까지, 친절하게 들어주다 보면 똑같은 상황이 또 반복될 거라고. 인간미 없다고 욕을 먹을지언정, 담임으로서의 본분만 다한다면 딱히 비난받거나 법적으로 책임질 것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문제는 내가 너무 그 사람에게 공감해주려 하고 그분의 마음을 자꾸 읽어주려고 노력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내가 너무 기가 빨리고 에너지를 뺏기다 보니 결국 그분을 대면하게 될 때에는 더 이상 그 무리한 요구와 부탁에 응해주지 못할까 봐 겁이 나서 손이 벌벌 떨리고 심장이 요동치는 신체적 반응이 나온 거라고 했다.


인간미 없는 담임이란, 매번 보낼 때마다 A4용지 길이에 달하는 문자 내용에 한 줄로만 간단히 알겠습니다라고 답하는 것, 되도록 전화통화는 피하고 문자메시지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 그 아이의 처지에 너무 공감하려고 하지 말고 담임교사로서 해줄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 등이다. 그러면 그분이 우리 담임 인간미 없다고 욕할지언정 더 이상 과도한 요구는 하지 않게 될 거라고. 굉장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꽤 그럴듯한 비유를 들어주셨다. 친구가 나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라서 만날 때마다 밥을 사주는데 이게 서너 번이 넘어가고 열 번을 내가 밥을 사주면 결국 그 친구는 나를 욕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지 싶었다. 상담선생님은 그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했다. 나보다 더 약자라고 생각해서 배려와 호의를 끝없이 베풀면 앙갚음으로 갚게 되는 거라고. 흔히 겪어본 일은 아니라 바로 이해 가진 않았지만 얼핏 알 것 같았다. 그 학부모의 심리도 비슷한 원리라고. 내가 끝없이 받아주고 감정에 공감해 주고 아이 일로 힘든 마음을 어떻게든 위로해주려고 하면 할수록, 더 의지하고 요구하려 들 거고 나중에 산더미처럼 커져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칼을 꽂게 될지도 모른다고.


예전에는 나도 MBTI로 따지면 T에 가까운 성격으로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에 이렇게까지 공감하고 알아주려고 한 적이 없는에 내 아이를 키우고 수많은 육아서와 교육서를 읽다 보니 무조건 남의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게 모든 일상의 기본값이 되어버렸고, 또 그게 훌륭한 참 교사의 의무인 양 장착하려고 노력했다. 진짜 참 교사란, 이런 비상식적인 일을 당해도, 좀 안하무인격 학부모를 만나도 신체적,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더 성숙한 어른의 태도를 유지하며 침착하게 잘 대처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그분의 걱정과 불안감을 내가 끝없이 받아주면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 게 오만이 아니었을까.


"그분의 운명에 공감하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존중은 하되." 이 말에 나는 무너져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어차피 선생님이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주어도 그분의 인생을 바꿔드릴 수도 없고 더 낫게 변화시켜 줄 수도 없습니다. 그 학부모는 자기 운명을, 본인 인생을 그냥 살아가는 거예요 그만의 생존 방식으로."


내 마음속에 뭔가 내가 교사로서 계속 노력하고 잘해주면 아이도 부모도 다들 나를 좋아해 주고 참 교사로 봐주고 전같은 무리한 요구는 그만두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건 다 헛된 망상이고 잘못된 접근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 마음먹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상담선생님의 정곡을 찌르는 몇 마디에 나는 무너져서 한참을 조용히 울고 말았다. 그리고 정말로 마음이 시원해졌다. 아이 낳고 기르기 전에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나름대로 선을 긋고 제삼자 입장에서 바라보곤 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감정에 극히 치우친 인간이 되어버렸는지도 알 길이 없다.


이 시대의 참된 교사란 학부모의 마음을 알아주고 들어주다가 교사의 자아까지 갉아먹히도록 내버려 두는 게 아니라 어떤 학부모를 만나더라도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하고 지킬 줄 알고, 병가도 휴직도 내지 않고 그렇게 학기말까지 살아남아 담임 교체 없이 우리 반 학생 모두를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 아닐까.


심리상담을 한 시간 받고 나니, 심장이 뻥 뚫린듯한 기분이 절로 들었다. 마음이 너무 편하고 상쾌해졌다. 그 날밤에는 오래간만에 잠도 정말 푹 잤다. 이래서 다들 상담을 받는 건가. 현대인에게 주기적인 심리상담쯤은 필수라는 말이 새삼 와닿았다. 어서 빨리 두 번째 상담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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