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분장은 철판깔고 버텨야하는 거야

김티쳐의 완벽한 학교

by 레이첼쌤

김티쳐는 결국 아는 사람이라고는 거의 없는 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결혼 전에 친했던 샘들은 다 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고 중학교로 전근 온 지 얼마 안돼서 연달아 애를 둘 낳고 휴직을 이어가다 보니 교직에 친한 사람 찾기가 힘들어졌다.


그 와중에 동네 엄마들과 친분이 생기기는 했지만 복직 소식을 알리고 직장에 복귀하면서 은근한 질투와 시기의 눈빛이 스쳐 지나가는 걸 느꼈다. 다들 전업으로도 부족함 없이 사는 편인데도 일하는 여자를 향한 시기라는 게 존재하는듯했다. 만나면 앞으로 애들 등하원이랑 학원픽업은 어쩔 거냐고 애들이 일하는 엄마 밑에서 적응하려면 참 힘들겠다고 김티쳐보다 더 걱정해 주는 모습에 고마우면서도 조금은 의아한 감정이 밀려왔다.


새 학교에서는 업무 배정 신청서를 쓰는 게 거의 의미가 없다. 이미 괜찮은 비담임업무 자리는 다 독차지되어 있고 담임 아니면 기피업무만 남아있는 상태다. 교감선생님도 그냥 형식상 쓰라는 거지, 큰 의미는 없다는듯한 태도로 전임지에서 업무가 뭐였냐고 물어본다.


교감선생님 첫인상은 소문난 대로였다. 겉으로는 굉장히 반가운 듯이 밝게 웃어 보이셨지만 그 밝고 명랑한 웃음 속에 숨겨진 히스테리 같은 게 언뜻 지나갔다. 별 의미도 없는 업무 신청서를 쓰고 같은 과 회의에 갔다. 다들 김티쳐보다 연배가 있어 보였다. 한 분은 퇴직을 곧 앞두신 분인지 아예 참여도 하지 않고 바쁘다며 시수 제일 적은 거 해놓으라는 말만 남기고 이내 퇴장하셨다.


올해 수업 시수를 나누는 게 가장 큰 관건이었다. 설마 하니 그래도 엄청나게 불공정하진 않겠지, 다들 상식 있는 교사들인데, 내가 처음 왔다고 심하게 불리한 시수를 주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은 시수표 안을 보면서 금세 사라졌다. 김티쳐의 시수만 말도 안 되게 가장 많았다. 게다가 혼자 두 개 학년을 가르쳐야 했다.


인상 좋아 보이는 한 선생님이 변명하듯 친절한 말투로 설명을 했다. ”우리도 처음 이 학교 왔을 때 이렇게 다 했었거든. 첫 해라 조금 고생은 되겠지만 자기가 이 시수만 좀 양보하고 나머지 업무들은 공평하게 분배하자. “


자기? 언제부터 나를 알았다고 자기라고 부르지? 김티쳐는 아직 서로 나이 공개한 것도 아니고 일면식도 없는 처음 본 사람이 무작정 자기라고 부르는 게 불편했다. 누가 보면 엄청 친한 사이인 줄 알겠네.


"그럼 시수는 이렇게 하는 걸로 하죠. 저는 저희 부서 협의에 또 가봐야 해서요."

고민할 틈도 주지 않고 이미 결정된 사안인 양 회의를 급히 끝내버리는 모양새다. 무슨 말을 해볼 틈도 없이 과 협의가 끝나버렸다. 왠지 당한듯한 느낌이 드는데. 아무리 봐도 김티쳐 시수가 가장 불리해 보였지만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한 선생님이랑 그나마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그분도 별 말없이 앉아 있길래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그분은 계약직 기간제 교사라는 걸 알게 된 건 나중이었다. 그러니까, 기간제 선생님과 새로 전근 온 김티쳐가 가장 힘든 업무를 맡게 된 셈이었다.


새로 전근 온 선생님들은 별 이변이 없는 한 대부분 담임을 맡게 된다. 김티쳐도 담임교사 업무를 배정받았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그 학교에서 가장 기피학년이라고 한다. 학교폭력 사건도 가장 많았고, 교권위원회도 몇 번 열린 적이 있다고 들었다. 올 한 해는 그저 포기하고 지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저 반 뽑기나 잘해서 그중에서도 무난한 애들을 맡게 되기를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새로운 교무실에 자리를 잡고, 짐을 풀고 업무 인수인계를 받았다. 학년부장님 인상이 굉장히 깐깐해 보인다. 이야기를 할 때 내 눈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곳을 응시하면서 이야기하는 기분이 든다. 저분은 또 어떤 분이실까,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 고민이 된다. 같은 교무실 다른 선생님들도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어서 몹시 어색했다. 벌써 숨이 막힐 것 같다. 새로 받은 반 배정표에 새겨진 학생들 이름 목록을 보고 있자니 더 답답해져 온다.


새로 가르칠 교과서를 받고 집에 오는 길 내내 뭔지 모르게 찝찝하다. 올 한 해 왠지 힘들 것만 같다. 저녁에 남편에게 이런저런 하소연을 해봤지만 그래봤자 학교 근무가 사기업보다 힘들겠냐며 자기가 사내정치로 인해 얼마나 스트레스받고 있는지 한바탕 성토가 벌어졌다. 더 따지기도 싫어서 거기까지만 이야기하고 말았다.


다음날 같은 교사 친구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이야기해 보았다.

"야, 그러니까 다들 학기 초 수업시수 짤 때 얼굴에 철판 깔고 손해 안 보려고 끝까지 버티는 거야. 너 이번에 호되게 당한 것 같은데. 그 선생님들 보통 아닌 것 같아. 올해 고생 좀 하겠다. 어떡하니.."


그제야 김티쳐는 상황이 좀 객관적으로 이해가 갔다. 내가 당한 거다. 그 불여시 같은 선생님들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해보고 가장 힘든 시수를 떠안게 된 거다. 왜 말 한마디도 못했을까. 이건 좀 아니라고,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냐고, 힘드시겠지만 다시 짜달라고 왜 말 못 한 걸까.


그때부터 3월이 시작될 때까지 가슴앓이가 시작됐다. 만만치 않은 선생님들이랑 한 해 보내야 한다는 생각, 수업 시수가 너무 많아서 학기 초에 적응하려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걱정, 왜 수업시수 회의 때 바보같이 당하고만 있었는지 자책감 등 여러 가지로 너무 괴로워서 밤에 잠도 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제 와서 시수를 다시 다 뒤집어엎을 수도 없고 이미 수업계에 시간표가 제출된 상황이라 더더욱 암담하다. 올 한 해는 이렇게 포기하고 지내야 하나. 새 학기 시작되는 게 너무 무섭고 두렵다. 하루하루 지나가는 날짜에 피를 말리는듯한 기분으로 3월을 맞이하는 김티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