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티쳐의 완벽한 학교
미국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이 한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Your mom did." (네 엄마가 했겠지.ㅋㅋ)
미 행정부 입장에서 뭔가 대답하기 불편한 내용이었는지는 몰라도 공식적인 석상에서 썩 무례한 대응이었다는 언론의 반응이 있었다.
엄마 이름 가지고 놀리는 건 한국의 중학생들에게나 재미있는 장난인 줄 알았는데, 미국에서도 상대방에게 무안 주고 싶을 때 써먹는 걸 보고 김티쳐는 적잖이 놀란 적이 있다.
학교에 있다 보면 심심치 않게김티쳐 귀에 들어오는 말이 있다.
"응~ 느그 엄마 이름..ㅋ"
아이들은 어떤 경로로든 친구의 엄마의 이름을 알아내서 친구를 놀린다. 무슨 말만 하면 친구 엄마 이름을 대면서 친구가 끝까지 화날 때까지 자극한다. 물론 멘탈이 강하거나 적응이 된 아이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대응하거나 재미없는 리액션으로 끝나버리지만 꼭 이런 장난에 과민반응하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은 귀신같이 이렇게 과민 반응할 만한 친구들을 대상으로 패드립을 꾸준히, 잊을만하면 끊임없이 하고 또 한다. 왜냐하면 친구의 반응이 재밌기 때문이다.
사춘기를 지내는 십 대의 아이들은 이제 막 초등학생 티를 벗고 점차 몸과 마음에 성장의 날개를 달고 성숙하는 중이다. 겉으로는 키도 크고 목소리도 굵어지고 몸매 라인도 달라져서 성인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막상 직접 대하고 보면 아직 정신적으로는 한없이 어린 애기들인 경우가 많다.
불과 일이 년 전까지만 해도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고,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부모님, 특히 엄마에게 몸과 마음을 의지하며 자라왔을 아이들이다. 영유아기의 어린아이에게 엄마는 온 세상이고 우주라는 말을 들었다.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조금씩 벗어나긴 했겠지만 여전히 초등기는 엄마가 아이에게 절대적인 신 같은 존재로 작용한다.
그런 아이가 사춘기가 오고 자라면서 중학생이 되고 점점 또래집단의 영향력이 커지는 시기가 온다. 이상하게 이 시기와 맞물려서 아이들의 패드립 장난도 더더욱 본격화된다. 무슨 말만 하면 '응~ 니 엄마' 말끝마다 이런 식이다.
수업 시간 끝나기 직전 1-2분 정도 여유시간이 남아서 김티쳐는 학생들에게 잠깐 쉴 시간을 주었다. 죽상을 하고 피곤한 얼굴로 앉아있던 남학생들도 쉬라고 하니까 갑자기 얼굴에 생기가 돌면서 지들끼리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한 남학생의 입에서 또 패드립이 들린다. '응 느그엄마 이름ㅋㅋ'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것 같은데 김티쳐는 오늘따라 발끈 화가 났다. 애들이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선생님 앞에서도 패드립을 하네,부터 시작해서 패드립을 주고받은 당사자를 향해서 또 전체 반 학생들을 향해서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김티쳐다. 아이들은 몇 분 안 남은 자유시간이 선생님의 잔소리로 낭비되는 게 짜증 나서 싫고 별생각 없이 항상 하는 말인데 발끈하는 선생님이 이해 안 간다는 분위기다.
아직 어린이집,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자녀들을 키우는 입장이어서 그런지, 친구 엄마를 욕하는 중학생 아이들이 김티쳐는 너무 꼴 보기가 싫고 듣기 싫다. 애들을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모유 젖먹이고 똥오줌 기저귀를 몇 년씩 갈면서 애써서 힘들게 키운 내 아이들이 중학생이 돼서 저렇게 엄마욕이나 하고 다닐걸 생각하니 김티쳐는 너무 화가 나고 이해도 전혀 되지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시 또 선생님 귀에 패드립하는 거 들리면 가만 안 둔다고 엄포를 놓고 교실문을 나섰다. 아무리 겁을 주고 혼을 내봐야 다음에 또 할거 뻔히 알면서도 또 지도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1교시 수업 반에서는 패드립으로 한바탕 화를 내고 나왔는데 2교시 수업에서는 또 다른 일로 이성의 끈을 놓고 말았다.
모둠별로 학습지 풀라고 했더니 몇몇 남학생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면서 웃고 있길래 가서 물어보았다. 뭐가 그렇게 재밌느냐고. 아이들은 그냥 모른채하면서 쟤가 웃긴 표정 지어서 그렇다면서 대충 넘기려는 모양새였다. 근데 아까부터 이상하게 무슨 숫자를 말하면서 웃는 것 같았다. 김티쳐는 그 의미가 궁금해서 집요하게 물어보았다. 그 숫자가 뭔데 그렇게 웃기냐고.
결국 한 남자아이가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 **전 대통령 생일날짜예요."
너무 놀라고 당황한 김티쳐는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세상에나 정치적인 이야기로 애들이 이렇게 웃는다는 것도 놀라운데 전 대통령 생일이 웃길 건 또 뭔가 싶어서 한 번 더 놀랍다.
어쩌다가 이 아이들은 이런 정치적인 소재를 웃음거리 삼게 된 건가. 따로 그 아이들을 불러서 이야기해 보았더니 호기심에 일베 사이트를 들어가 본 적도 있고 관련 쇼츠나 영상을 보다 보니 웃겨서 그런 거라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걸 보았다. 요즘 애들 이런 거 다 본다고, 뭐 새삼스러울 게 있냐는 말투에 더 당황하는 김티쳐다.
저번 수업시간에는 어쩌다 독일의 나치즘 이야기가 나왔고, 히틀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어떤 남자아이가 다급하게 할 말 있다는 표정으로 손을 들고 말을 시켜달라고 했다.
"근데 선생님, 책 읽어보면요 히틀러가 독일 경제에 좋은 일도 정말 많이 했어요!" 라며 왜 무조건 나쁜 사람 취급하냐는 식이다. 좋은 점도 있는데 너무 나쁜 점만 이야기하는 거 아니냐면서 김티쳐를 나무라는 말투에 굉장히 놀랬던 기억이 떠올랐다.
요즘 애들이 대체 왜 이러지? 왜 이렇게 일베스러운 아이들이 많은 건지, 어디서 이런 사상을 주입받고 있는 건지 심히 궁금해졌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한 반에 대략 서너 명 정도는 이런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녀석들이 있다.
쇼츠 탓인가? 걸러지지 않은 무수한 영상들을 보다 보니 이런 정치적으로 편향된 내용들에 가감 없이 노출돼서 이런 건가.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건 물론 자유지만 요즘 중학생들의 특징은 제대로 된 지식이나 자신만의 세계관이 정립되기도 전에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것 같아서 좀 위험해 보인다. 그런 영상들을 보면서도 좋은 내용의 책이나 걸러진 미디어를 접하면서 동시에 생각을 다잡아나가는 건 괜찮지만 가뜩이나 책도 안 읽는 세대인데 무조건 편견에 치우친 영상만 보다 보면 정말 위험해지는 거 아닌가.
에이, 내 자식도 아닌데 걱정은 이 정도만 하자.
다음 수업 준비랑 행정업무 처리도 바쁜데 아이들 생각 개조까지 어떻게 시키냐 싶어서 이내 그 일은 의식적으로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김티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