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티쳐의 완벽한 학교
김티쳐가 새 학교로 발령을 받고 가장 처음 만난 사람은 이 학교 교감이다. 교감선생님은 밝게 웃으면서 반겨주셨지만 뭔지 모르게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느낌이 있었다. 첫 만남부터 서류 하나에 문제가 있다고 다시 도장을 제대로 받아오라고 채근하는 통에 정신이 쏙 나갈 지경이었다.
교감선생님의 책상은 온갖 서류 파일들과 업무 관련 책자들이 너저분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관련 업무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그 복잡한 책상 위에서 귀신같이 해당 내용 업무철을 찾아내서 근거를 제시하며 열심히 설명하시곤 했다. 아주 깐깐하고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느꼈다. 일하다가 뭐라도 실수 하나라도 하면 서슬퍼런 보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인상이었다.
김티쳐는 최대한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학교 일이란 게 어차피 굉장히 창의성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새로 기획해서 이끌어나가야 할 커다란 프로젝트형 업무 종류가 흔하지도 않다. 최대한 실수 없이 전임자가 한 내용에서 벗어나지만 않게 해 두면 안전하다.
듣자 하니 교감선생님은 마음에 안 드는 선생들을 한번 찍으면 두고두고 싫어하고 괴롭히기도 하며 울리기까지 한 적도 있다고 했다. 김티쳐는 찍히지만 말자, 다짐해 본다.
무슨 일이든 모르면 그냥 바로 교감샘께 직행해서 물어보았다. 크게 바쁘지 않으면 교감샘은 친절하게 대답해 주시는 편이었다. 놀라운 건 어떤 내용에 대해서 질문하든, 학교에 모든 제반 업무가 머릿속에 들어있는 사람처럼 자동반사적으로 답변이 튀어나왔다. 언제든 물어봐도 대답할 준비가 된 분 같았다. 그간 여럿 관리자를 만나봤지만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업무를 잘 파악하고 있는 분도 거의 없었다. 새삼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업무를 그냥 잘 알고 잘하는 것에 더불어서 교감선생님의 또 다른 특징은 일하는 걸 너무 즐거워한다는 점이었다. 모르는 걸 물어봤을 때 답변해 주면서 굉장히 만족해하고, 이런 부분은 김티쳐도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업무 공부 좀 더 해,라고 친절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해 주신다. 이렇게 일을 잘하니 젊은 나이에 승진해서 교감이 된 건가 싶다가도 어쩌면 이렇게 학교일에 도가 틀 정도로 업무 파악이 제대로 되어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교감선생님과 잠깐씩 업무 관련 대화를 나누면서 업무포털에서 공문을 찾고, 근거 법령을 검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녀의 얼굴은 행복한 미소로 꽉 차 있었다. 모르는 걸 새로 알게 되었을 때 굉장히 만족해하고, 남을 가르쳐 주는 것도 좋아한다. 뭔가 새로운 일을 추진하는 것도 즐기는 것 같다. 그냥 이 사람은 일을 너무 좋아하는구나라는 게 대번에 느껴진다.
세상에 이렇게 일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김티쳐는 하는 수없이, 해야 되니까, 주어진 일이라서 하는 업무라고 여겼는데 교감샘은 그와 정반대였던 것이다.
살림, 육아를 안하셔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더 있는건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보통 여자들은 결혼하고 애 낳고 살림하다 보면 일에 투입할 에너지가 남아나질 않는다. 하나의 생명을 기르면서 일을 병행하는 건, 그나마 공무원 신분이라서 사기업보다는 조금 상황이 낫다고 해도 여전히 엄청 빡센 일이다. 중간에 몇 년씩 육아휴직이라도 하게 되면 더 도태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아마 교감선생님은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이러저러하든 간에 세상에 이렇게 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다.
김티쳐는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았다. 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일을 좋아하기 이전에 업무 능력이 있기는 한 건가.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면서 자신감과 업무에 대한 감도 많이 잃어버렸다. 승진은커녕 그저 애 둘 키우면서 하루하루 버텨가는 하루살이 삶을 살아내는 게 일생일대의 목표다. 김티쳐도 결혼하지 않았다면, 애를 낳지 않았다면 과연 교감샘처럼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승진해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고, 오늘도 업무 관련 질무을 하러 교감실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