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자 이야기는 왜 자꾸 하시는거죠

김티쳐의 완벽한 학교

by 레이첼쌤

김티쳐는 작년 업무 담당자로부터 업무 인수인계를 거의 받지 못했다. 그 선생님이 발령받은 학교의 새학년준비기간과 겹친다는 이유로 작년 업무파일 내용만 겨우 받아보고 간단하게 짧은 통화가 전부였다.


혼자 작년 업무파일과 기안공문들을 일일이 다 클릭해보면서 겨우 파악해갈 수 밖에 없었다. 전임자와 친분이 좀 있었다면 편하게 자주 연락하면서 궁금한 점 물어볼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기에는 영 껄끄러웠다.

일이 엄청 어렵고 공문이 쏟아지는 부서는 아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여기저기 묻고 검색하면서 그럭저럭 해나갈 수 있었다.


전임선생님은 3년동안 같은 업무만 했었기에 여러모로 아주 능숙했다고 들었다. 원래도 일에 철저한 타입이라고 들었는데 같은 업무를 몇년 연속 했으니 흠없이완벽에 가까웠으리라. 이 모든게 김티쳐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학기가 시작되고 고통스러운 학기초 몇 달이 지나고 일도 나름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우연잖게 김티쳐는 본인에 대한 뒷담화를 듣게 되었다.


사실 뒷담화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누가 들으면 별 일 아닐 정도의 이야기였다. 같은 교무실에 있는 사회선생님이 다른 친한 선생님들한테 가서 요즘 학교 생활이 너무 무료하고 재미없다고 토로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사회샘이랑 거의 하루종일 같은 교무실에 있는게 바로 나인데, 그럼 나랑 있는게 재미없다는건가?'


속으로 조금 어이없었지만 크게 신경쓸 일도 아닌것 같아 처음에는 무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자꾸 생각났다.


'그럼 사회쌤은 얼마나 나를 재밌게 해준적은 있나? 나는 뭐 재미있어서 같이 근무하는건가. 본인도 별로 재미있는 사람도 아닌것같던데 왜 우리 교무실이 재미없다고 말하고 다니는거야.'


자꾸 그 말이 생각나고 종국에는 서운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학기초에 다같이 바쁠 때 피곤할까봐 커피도 자주 사다주고 잘 챙겨주려고 애썼는데 다 소용없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자식 이야기할 때에도 그 바쁜 와중에 컴퓨터 모니터 보면서 열심히 들어주고 리액션해줄려고 했는데, 그건 다 뭐였나 싶다.


김티쳐 교무실은 작은 별실같은 곳으로 책상은 대여섯개 뿐이고 상주하는 교사는 세명에 나머지는 방과후 강사 책상이다. 강사샘들은 자기 수업시간만 채우면 되기 때문에 공강 시간에 딱히 교무실에 상주하지는 않는다. 고로 자리를 거의 하루종일 지키는 선생님은 두세명 뿐이다.


사람수가 작기 때문에 잘 지내지 않으면 더 불편해질수도 있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더 잘하려고 노력했는데 김티쳐더러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뒷담화를 하다니. 더 불쾌해졌다.


작년에 있던 선생님들은 다들 성격도 밝고 앉아서 차 마시는것도 좋아하고 취미가 맞아서 같이 뜨개질도 하고 썩 즐겁게 지냈다고 전해듣기는 했다. 학교가 놀려고 오는 곳인가 싶다. 직장생활에 친목이 중요한 요소긴 하지만 일이 먼저 아닌가.


그런데 사회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노골적으로 작년 선생님들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 것이었다. 대놓고 김티쳐 앞에서 전임자 선생님이 얼마나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사회성이 좋아서 항상 우리 교무실에 다른 선생님들이 사랑방처럼 놀러와서 재미나게 지냈는지 모른다며 전임자 칭찬을 해댔다.


행정실 직원들이랑도 굉장히 친해서 예산 쓸 때도 팍팍 밀어줘서 전기포트나 커피같은 물품도 티 안나게 잘 구매해줬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작년 김티쳐 자리에 근무했던 선생님 이야기를 꺼냈다. 그 선생님이 성격은 어떠했고, 누구랑 친했고, 뭘 좋아했고 뭘 싫어했는지 등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열심히도 해대는거다. 어지간히 작년 샘이 그리운가보다하고 김티쳐는 그냥 듣는척만 했다. 나중에는 은근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함께 근무하는 사회쌤은 성격도 평판도 좋은 편이라서 다른 실 선생님들과도 다 친한 편이다. 그런데 단 둘이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점점 김티쳐와는 안 맞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김티쳐는 자문했다.


'사회쌤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내가 비정상인가?'


그럴수록 더 잘하려고 노력했다. 간식도 사다 나르고, 커피도 아낌없이 사고 노력했다. 김티쳐도 전임자만큼 충분히 좋은 사람이다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었던건지 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잘해드리고 싶었다.


사회쌤은 나이로는 학교에서 가장 연장자로 대선배뻘 교사다. 아무리 교직이 평등한 관계라고 해도 한참 나이 많은 교사들을 존중하고 받들어주는 분위기는 존재한다. 떠받들어주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경력을 존중하고 업무에서도 약간의 배려가 있기도 하다.


한참 나이 많은 선생님이라서 더 잘해드리고, 재미없는 이야기도 잘 들어준다고 생각했는데 더 실망감이 컸다.


나중에는 퇴근하고 나서도, 주말에도 사회쌤이 했던 말들이 떠올라서 괴로웠다. 김티쳐는 스스로가 이렇게 예민한 사람이라는데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솔직히 사회쌤이 대놓고 무안을 주거나, 비난을 하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는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티쳐 자신은 전임자보다 못하다는 생각,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낙인같은 말이 자꾸 따라다녔다.


말이란 이렇게 힘이 있구나라는걸 새삼 깨달았다. 어떤 면에서 내가 그렇게 만족시켜드리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에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다행히도 학기말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사회쌤은 내년에는 꼭 이 교무실을 벗어나서 다른 업무를 맡을거라고, 같은 업무를 몇 년 했더니 재미없고 시시하다고 습관처럼 매일 내뱉았다. 그 말이 꼭 김티쳐에게 '너랑 같이 근무하는거 재미없어, 빨리 여기를 벗어나고 싶어.'라고 외치는것처럼 들려서 더 괴로워졌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주 평화로운 교무실이었다. 아침이면 밝게 인사하고, 커피를 타서 마시고 간식을 나눠 먹으며 학생들 이야기, 수업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눴다. 겉으로는 아주 정상적이었지만 사회쌤도 김티쳐도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서로 잘 맞지 않는다는것을.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