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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Apr 20. 2021

주말에 치킨 흡입한 다이어터들은 앞으로 나오세요.

허기가 광기가 되다.

다이어트 4개월차 정체기이다.

체중은 답보인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식욕을 조절하지 못하는 순간이 자주 닥치고 있다. 전에는 제법 타이트한 식이로도 허기가 잘 조절되더니 어느 순간 한번 풀려버린 식욕이 주춤할 줄 모른다.

계절을 탄다면 나른한 봄날에 입맛도 없어지고 그러는 것 아니었나? 나는 자연순리도 거스르는 식욕을 갖고 있나 보다.


이틀 건너 한 번 있었던 약속 덕분에 1킬로 정도 체중이 늘어나자 아차 싶었다. 1킬로 정도야 쉽게 찌고 빠질 수도 있지만, 이걸 시작으로 전처럼 먹어댈 수 있으므로 어느 정도 멈출 수 있을 때 다시 고삐를 조이리라. 주말 전 금요일 굳게 다짐했다.


주말 시작부터 삐끗했다.

보통은 아침에 사과 하나만 먹는데, 너무 일찍 일어나 버린 게 화근이었을까?

새벽부터 일어나서 밤 사이 놓였던 그릇 몇 개 설거지하고, 강아지 배변판도 치우고 했는데도 아직도 이른 아침이다. 게다가 아침부터 사부작거렸더니 허기가 갑자기 밀려왔다. 거기에 냉장고에 처박혀있는 음식들을 처치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왜 그 순간 갑자기 밀려들었을까? 몇 달 전부터 냉동실에 꽁꽁 얼려있는 또띠야를 즉시 해결해야겠다는 조급함에 또띠야 위에 토마토소스를 바르고 집에 있는 채소와 모짜렐라 치즈를 얹어서 피자를 해 먹었다.

아침을 챙겨 먹었더니 더 배가 고파지는 건 무슨 연유일까? 점심은 파스타로 어느 정도 선방을 했지만, 저녁에 딸이 시켜달라고 한 치킨 앞에서는 무너져 버렸다.


치킨이 액체인 줄.

몇 달 튀긴 음식과는 담을 쌓고 지내다가, 갑자기 치킨이 눈 앞에 나타났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치킨 몇 조각을 거의 씹지도 않고 마시다시피 먹고 난 이후였다.

간신히 워워 자제시키고 당연히 더 먹을 수 있지만 치킨무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나서야, 넉 달만에 치킨 앞에 무너진 원인 분석에 들어갈 수 있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이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외양간을 고쳐놓아야 할 것 같았다. 아니면, 또 어느 순간에 라면국물에 찬밥을 말아먹고 있는 나를 마주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신체적, 정신적 허기감이 누적된 것 같다.

저녁에 배가 고파도 이 정도는 이겨내야지 하고 계속 참았던 상황이 한계에 부닥치는 것 같다. 또한, 탄수화물이나 기름진 음식을 그득 먹었을 때의 포만감을 몸이, 뇌가 계속 나에게 원하고 있는 것 같다. 원시시대부터 인류에게 전해지는 공복에 대한 공포는 생존본능이어서, 내가 쉽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그냥 무조건 참는 게 능사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 기한까지는 참는 게 가능했지만, 그걸 지속하기에는 포만감에 대한 욕구가 너무나도 본능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전략수정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몸무게가 계속 줄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분명 처음에 정해 놓은 목표치는 도달을 했는데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조급함이 생긴다.

4달에 6킬로 감량. 광고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감량에 비하면 소소하지만, 내게는 거의 생애 처음으로 이루어낸 큰 업적이다. 결코 무시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보낸다.

무조건 어제보다 더 줄어야 한다는 막연한 강박에서, 느슨하지만 구체적인 수치를 정해보았다. 현재 상태를 유지하거나, 앞으로의 또 다른 4달 안에 2킬로 감량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칭찬한다.


그동안 나를 억누르면서 억제해 왔던 식이에서, 이제는 조금 더 즐기는 식이로 바꿔보기로 했다.

'치팅데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몸으로 배웠다. 스스로에게 보상해 주는 시간이 없이 달려만 오다 보니까 즐기는 식사 대신에, 정신적, 신체적 허기를 채우기에만 급급해서 몰아쳐서 먹는 식사가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쌈을 적극 활용해 본다. 상추 두 장, 깻잎 한 장을 기본으로 깔고, 볼이 미어터져라 입으로 밀어 넣고 나면  흡족한 한 끼가 된다.

가끔씩은 내가 원하는 음식을 죄책감 없이 즐겨보기로 한다. 내 뇌가 탄수화물과 지방을 갈구하면서 갑자기 이성이 마비되기 전에 미리미리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즐기는 것이다.

뇌와 몸이 같이 행복해지는 음식을 찾아봐야겠다.


언제나 균형잡기가 중요하면서 어렵다.

욕구만을 따라서 내 몸에 꼭 필요하지는 않은 음식을 아구아구 먹어치우는 내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건 '가짜 허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칼로리와 몸무게에 집착하는 내가 있다.

둘 다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은 아니다. 둘 사이의 균형을 얼마나 조화롭게 잡아나가느냐가, 앞으로 내가 건강한 몸과 마음을 지켜나가는 핵심이 될 것 같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내 허기가 광기가 되지 않는 그 정도의 식사.

오늘은 강된장을 만들어서 어제 사놓은 쌈과 같이 먹을 예정이다.

또 어느 날, 치킨을 흡입하지 않는다고 장담을 하지는 못하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나에게 보상을 주다 보면, 또 어느 날은 그 어려운 균형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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