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은 답보인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식욕을 조절하지 못하는 순간이 자주 닥치고 있다. 전에는 제법 타이트한 식이로도 허기가 잘 조절되더니 어느 순간 한번 풀려버린 식욕이 주춤할 줄 모른다.
계절을 탄다면 나른한 봄날에 입맛도 없어지고 그러는 것 아니었나? 나는 자연순리도 거스르는 식욕을 갖고 있나 보다.
이틀 건너 한 번 있었던 약속 덕분에 1킬로 정도 체중이 늘어나자 아차 싶었다. 1킬로 정도야 쉽게 찌고 빠질 수도 있지만, 이걸 시작으로 전처럼 먹어댈 수 있으므로 어느 정도 멈출 수 있을 때 다시 고삐를 조이리라. 주말 전 금요일 굳게 다짐했다.
주말 시작부터 삐끗했다.
보통은 아침에 사과 하나만 먹는데, 너무 일찍 일어나 버린 게 화근이었을까?
새벽부터 일어나서 밤 사이 놓였던 그릇 몇 개 설거지하고, 강아지 배변판도 치우고 했는데도 아직도 이른 아침이다. 게다가 아침부터 사부작거렸더니 허기가 갑자기 밀려왔다. 거기에 냉장고에 처박혀있는 음식들을 처치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왜 그 순간 갑자기 밀려들었을까? 몇 달 전부터 냉동실에 꽁꽁 얼려있는 또띠야를 즉시 해결해야겠다는 조급함에 또띠야 위에 토마토소스를 바르고 집에 있는 채소와 모짜렐라 치즈를 얹어서 피자를 해 먹었다.
아침을 챙겨 먹었더니 더 배가 고파지는 건 또 무슨 연유일까? 점심은 파스타로 어느 정도 선방을 했지만, 저녁에 딸이 시켜달라고 한 치킨 앞에서는 무너져 버렸다.
치킨이 액체인 줄.
몇 달 튀긴 음식과는 담을 쌓고 지내다가, 갑자기 치킨이 눈 앞에 나타났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치킨 몇 조각을 거의 씹지도 않고 마시다시피 먹고 난 이후였다.
간신히 워워 자제시키고 당연히 더 먹을 수 있지만 치킨무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나서야, 넉 달만에 치킨 앞에 무너진 원인 분석에 들어갈 수 있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이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외양간을 고쳐놓아야 할 것 같았다. 아니면, 또 어느 순간에 라면국물에 찬밥을 말아먹고 있는 나를 마주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신체적, 정신적 허기감이 누적된 것 같다.
저녁에 배가 고파도 이 정도는 이겨내야지 하고 계속 참았던 상황이 한계에 부닥치는 것 같다. 또한, 탄수화물이나 기름진 음식을 그득 먹었을 때의 포만감을 몸이, 뇌가 계속 나에게 원하고 있는 것 같다. 원시시대부터 인류에게 전해지는 공복에 대한 공포는 생존본능이어서, 내가 쉽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그냥 무조건 참는 게 능사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 기한까지는 참는 게 가능했지만, 그걸 지속하기에는 포만감에 대한 욕구가 너무나도 본능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전략수정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몸무게가 계속 줄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분명 처음에 정해 놓은 목표치는 도달을 했는데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조급함이 생긴다.
4달에 6킬로 감량. 광고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감량에 비하면 소소하지만, 내게는 거의 생애 처음으로 이루어낸 큰 업적이다. 결코 무시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보낸다.
무조건 어제보다 더 줄어야 한다는 막연한 강박에서, 느슨하지만 구체적인 수치를 정해보았다. 현재 상태를 유지하거나, 앞으로의 또 다른 4달 안에 2킬로 감량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칭찬한다.
그동안 나를 억누르면서 억제해 왔던 식이에서, 이제는 조금 더 즐기는 식이로 바꿔보기로 했다.
'치팅데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몸으로 배웠다. 스스로에게 보상해 주는 시간이 없이 달려만 오다 보니까 즐기는 식사 대신에, 정신적, 신체적 허기를 채우기에만 급급해서 몰아쳐서 먹는 식사가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쌈을 적극 활용해 본다. 상추 두 장, 깻잎 한 장을 기본으로 깔고, 볼이 미어터져라 입으로 밀어 넣고 나면흡족한 한 끼가 된다.
가끔씩은 내가 원하는 음식을 죄책감 없이 즐겨보기로 한다. 내 뇌가 탄수화물과 지방을 갈구하면서 갑자기 이성이 마비되기 전에 미리미리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즐기는 것이다.
뇌와 몸이 같이 행복해지는 음식을 찾아봐야겠다.
언제나 균형잡기가 중요하면서 어렵다.
욕구만을 따라서 내 몸에 꼭 필요하지는 않은 음식을 아구아구 먹어치우는 내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건 '가짜 허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칼로리와 몸무게에 집착하는 내가 있다.
둘 다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은 아니다. 둘 사이의 균형을 얼마나 조화롭게 잡아나가느냐가, 앞으로 내가 건강한 몸과 마음을 지켜나가는 핵심이 될 것 같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내 허기가 광기가 되지 않는 그 정도의 식사.
오늘은 강된장을 만들어서 어제 사놓은 쌈과 같이 먹을 예정이다.
또 어느 날, 치킨을 흡입하지 않는다고 장담을 하지는 못하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나에게 보상을 주다 보면, 또 어느 날은 그 어려운 균형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