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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Apr 11. 2021

잘 슬퍼하기

주말 아침 텔레비전에서 하는 '인사이드 아웃'을 잠깐 보았다.

좋아하는 영화인데 하는 줄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챙겨서 보면 좋았을 걸, 2부 끝만 봐서 아쉬웠다. 이제 막 사춘기를 접어드는 주인공 라일리 안에는 '기쁨', '슬픔', '까칠', '버럭', '소심'이 같이 있다. 무엇이든지 긍정적이고 매사에 희망적인 '기쁨'이 있어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어디서나 무슨 일에서나 부정적인 면을 발견하는 재주가 있는 '슬픔'은 자신이 라일리를 망치는 것 같아 역시 슬프다.


이사 온 집과 친구들을 그리워해 무작정 가출을 감행하던 라일리를 구하고자 모든 감정들이 애를 써보지만, 라일리에게는 감정이 작동하않는다. 감정들은 고군분투하면서 '기쁨'을 기다린다. 그녀가 이 상황을 해결해주리라, 라일리에게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그녀를 기쁘게 만들면 이 상황이 해결되리라 생각하면서. 하지만, 정작 라일리에게 필요했던 존재는 슬픔이었다.

슬픈 순간을 떠올리고, 마음껏 슬퍼하자 감정들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잘 슬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종종 우리는 우리가 슬픈지도 잘 모르고 지날 때가 있는 것 같다.

그저 요즘 기운이 없다던가, 왠지 무기력한다던가 하면, 일이 너무 많아서일 거야, 주말에 쉬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원인이 그거라면 쉬면 좋아져야 하는데, 통 그렇지 못할 때가 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에 딱 알맞은 이름을 찾을 수 있어야, 거기에 맞는 해결책이 들어맞는다. 슬픈 건지, 화가 난 건지, 불안한 건지, 짜증이 난 건지 등등. 내 감정을 정확하게 들여다보지 못하면, 전혀 쓸데없는 루션이 등장하고, 난 이유도 모른 채 계속 힘들어진다. 마치 동그라미에 네모를 우겨넣으려고 하는 것처럼.


어느 새벽, 갑자기 잠에서 깨었는데 이유도 모른 채 대성통곡을 했다.

온몸으로 운다는 건 그런 거였다. 온몸이 들썩거리게, 새벽이라 모두들 자고 있다는 사실도 깜빡하고는 꺽꺽, 기침이 나도록 울어댔다.  우는 거 반, 조는 거 반하다가 나도 모르게 다시 잠이 들어버리고는, 아침에 되어서 나는 내게 물었다. '왜 그렇게 슬픈 거였어?'


내가 불쌍했다.

나 혼자 어깨에 너무 많은 짐을 지고, 비틀거리면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는 내가 불쌍했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고 조금만 잘못되면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아서 억울하고 분했다. 그 어디에서고 위로를 받지 못하고 이렇게 또 혼자 넘어지고, 혼자 일어서야 하는 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래서, 많이 슬퍼했다. 불쌍한 나를 많이 슬퍼해하고 안아주었다.

잘 슬퍼하고 나면, 마음의 응어리가 많이 풀리는 것 같다.


슬픔을 애써 미숙한 다른 감정으로 막으려 하지 않기.

슬픔도 내 소중한 감정으로 인정하기.

마음껏 슬퍼하기.

내 감정들 모두에게 인색하지 않기.


내 많은 감정들을 모두 정직하게 바라보았을 때, 내 인생이 그만큼 솔직해지고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일요일 아침 지금 내 감정은 무엇인지?

잔잔한 기쁨과, 이제 막 지루해지려고 하는 짜증스러움, 조용한 아침을 맞이하는 평안함. 기분 좋은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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