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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Mar 26. 2023

달리기를 시작하다.
팔도 쓰는 거구나

왕년의 기록 100미터 20초


#장면 하나

일 년 중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날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오늘 비가 왔으면, 배라도 아파서 학교를 결석했으면 하고 바랐던 날. 시험날도 아니고, 운동회날이다. 

제일 고역이었던 시간은 역시나 달리기. 내가 어쩌다 3등을 한 날은 출전자가 3명이었던 거고, 그 예외는 벗어난 적이 없었다. 1등을 해 본 적이 없어서 1등 상품이 뭐였는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꼴찌로 들어왔어도 줄 쳐져있는 공책을 하나씩 받았던 기억은 있다. 동네에서 한 치맛바람 했던 엄마는, "다른 애들은 다 뛰더만, 너는 왜 걷는 거야?"라며 딸의 달리기 실력을 창피해했다. 그때 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도 뛴 거야, 그것도 열심히"



역시나 죽기만큼 싫었던 고등학교 체력장을 끝으로는 달리기를 일부러 해 본 적은 없다. 출근길에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달려서 버스를 집어타서는 두 정거장은 지날 때까지 숨을 헉헉 쉬곤 한다. 가끔 강아지 산책을 시키면서 같이 좀 뛰어볼까 싶어서 시작했다가 이내 6킬로 나가는 강아지에 끌려서는 '아고, 엄마 못 뛴다'며 포기를 선언하고는, '그럴 거면 왜 시작했냐"는 원망 어린 눈초리를 받곤 한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 중의 하나는, 달리면 안 되는 오만가지 이유에, '무릎이 아파서', '무리하면 안돼서'라는 안전한 이유를 덧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내게 나이 오십 넘어 '왜 달리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제 내가 달리기를 시작했다. 자의로, 그 어느 누구의 강요도 없이, 하고 싶어서. 52세에 왕년에 100미터를 20초에 뛰던 실력으로 말이다.

이유는 크게 거창할 것 없고, 그 옛날 그렇게 달리기를 싫어했던 역사를 감안하면 의외의 선택이긴 하지만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저, 갱년기, 우울증, 무기력을 이겨내기 위해 무슨 운동이라도 했어야 하는 시점에서 달리기가 선택되었을 뿐이다. 그나마 할 줄 아는 운동인 수영을 해볼까 싶었는데, 내 실력으로는 같은 라인 뒤에서 무섭게 쫓아오는 사람들의 압박이 싫었다. 오로지 내가 달리기를 선택했던 이유는, 언제든지 현관으로 나가서 운동화로만 갈아 신으면 할 수 있겠다는 낮은 진입장벽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상 속의 그림처럼 집 밖을 나가자마자 멋있는 폼으로 달리기를 해 낼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믿고 있고 별 실패가 없었던 방법 하나를 쓰기로 했다. '투자'하는 것. 시간이 되었든, 노력이 되었든 인풋이 있어야 좋은 아웃풋이 나온다. 숨고에서 '달리기 선생님'을 구했다.  '바라는 목표'에 '나중에 혼자서 달리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썼고, 정말로 그것이 내가 바라는 다였다. 



#첫 수업

내가 달리기 폼이 좋다니. 나쁜 습관이 없단다. 달리기로 칭찬을 받아본 것은 정말로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칭찬이어서 좋다기보다는 의아했다. "아마도 평생을 달리기를 해 본 적이 없어서, 나쁘고 좋고 간에 습관이라는 것 자체가 없을 거예요." 첫 시간에 학생 격려해 주려고 해 준 말일 텐데, 영 납득이 되지 않은 내 말에 머쓱해하는 선생님의 표졍이다. 

고령(?)의 학생을 모시고 하는 수업인지라, 선생님은 내 컨디션을 수시로 체크하면서 초급의 진도를 나갔다. 1분 뛰고, 2분 걷고를 반복하다가, 손동작, 다리동작, 합쳐서 하는 동작을 알려줬다. 예전에 운동장에서 선생님이 흰 가루로 100미터 선을 그릴 때부터 땅으로 꺼졌으면 하고 바랐던 나인데, 달리기에 대한 이론에 흥미가 있었을 리가 없다. 솔직히는 달리기에 이론이 필요한지도 이제 처음 알았다. 

제자리에 서서 팔을 앞뒤로 흔들기를 반복했다. 팔꿈치는 그저 앞뒤로 진자처럼 흔들기만 하고 힘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팔을 움직이면서 한쪽씩 다리를 드는 연습을 했다. 희한하게 팔만 움직일 때는 앞뒤로 같은 각도로 움직이던 팔이 다리를 들기 시작하니까 뒤로 가면서는 팔이 펴졌다. 뒤로도 팔이 펴지지 않게 신경을 쓰면서, 다리를 들 때도 무릎과 발목의 힘은 빼고 다리를 들어 올리는 힘으로만 유지해야 부상이 없다고 한다. 반백년을 넘게 살면서 또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달리기를 할 때 무릎과 발목에 힘을 빼야 한다니' 나는 어떤 동작을 할 때면 관련되어 있는 모든 근육과 관절에 힘을 있는 대로 주어야 하는 건 줄로 알았다.  아직은 이렇게 팔을 앞뒤로 균형 있게 흔들고, 무릎과 발목에 힘을 빼는 것이 어떻게 달리기에 영향을 주는지 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따로 노는 팔과 다리에 신경을 쓰느라 수업이 끝나고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제야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 나 혼자 달린다

생전 처음 '달리기 숙제'를 받았다. 받아쓰기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고 달리기 숙제라니. 런데이라는 앱을 깔고 초급코스로 달려서 기록을 남겨오는 것이 숙제다. 선생님은 말하지 않았던 준비물을 아주 약간 산 것은 오로지 숙제를 위해서였다. 막상 숙제를 하려니 변변한 러닝화가 없어서, 나이키 러닝화를 하나 샀다. 땀이 언젠가는 많이 날지도 모르니 운동용 헤어밴드를 하나 샀다. 앱에서 나오는 지시사항을 들으면서 해야 하는데 귀에 꽂는 이어폰은 거추장스러우니 골전도 이어폰을 하나 샀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자니 한쪽으로만 치우친 핸드폰 무게 때문에 기록에 영향을 줄 것 같아서 핸즈프리 런벨트를 하나 샀다. 정말로 그것뿐이다.

초급코스로 30분 정도 뛰고 걷기를 반복하면서 이틀을 뛰어 보았다. 끝나고 나면 숨이 약간 차는 정도의 운동량이다. 

이틀의 달리기 숙제의 결과는 이렇다.

1) 뭔가 멋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동네 도서관 가느라, 장 보느라 걸어갔던 똑같은 길이다. 그런데 러닝화를 신고 오로지 뛰는 것을 목적으로 달려보니, 내가 '달리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나 자신이 조금 근사해 보였다. 

2) 목표가 생겼다. 우선은 앱에 있는 30일을 채우는 것이 작은 목표이지만, 그다음으로는 나이키에 민소매 러닝복 상의에 레깅스를 입고 뛰는 것이 내 목표가 되었다. 언젠가 초보 티를 벗게 되면, 누가 봐도 저 사람은 러너이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게 제대로 뛰어 보는 것이 목표다.



왜 달리기일까? 100미터에 20초라는 기록이 언제나 나를 꼴찌로 만들고, 숨고 싶게 만들었지만, 달리기는 인간의 본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나이에 누구와 달리기 기록으로 경쟁하고 싶지도 않고, 경쟁이 되지도 않는다. 다만, 내가 평생 안 써왔던 한 가지 기능을 지금보다는 더 좋게 만들고 싶어서이다. 


오늘 당신이 평생 쓰지 않았던, 하지만 오늘부터라도 조금 더 좋게 만들고 싶은 그런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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