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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Mar 31. 2023

출근길 눈앞에서 버스를 3대 놓치면

늦는다.

다른 도리가 없다.  20분 정도 일찍 나선 출근길이라면 도리가 있겠으나 평소처럼 나선 월요일 아침이라면 막 떠난 버스 궁둥이를 마주하는 순간, 그것도 3대라면 깨끗하게 단념을 해야 한다.


평상시보다 5분 일찍 눈을 떴을 때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이다.

판교부터 잠실까지 가려면 시내버스를 타고 광역버스로 한번 갈아타야 한다. 하루 이틀 다닌 길이 아니다. 집 앞 정류장에서 탈 수 있는 버스가 3개, 광역버스는 2개. 8시 출근이라 그렇게 막히는 교통상황이 아니니 약간씩의 변수를 감안해도 오늘 아침은 처음 겪는 당황스러운 경우이다.

집 앞 정류장에 시내버스가 막 도착하는 것을 몇십 미터 뒤에서 보면서도 뛰지 않았다. 갑자기 아프다고 연차 낼까 잠깐이지만 진심으로 고민하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에 갈아타야 할 광역버스가 교차로 건너 그것도 두대가 동시에 막 떠나는 것을 보았을 때는 미래를 직감했다. 지각이로세. 지금은 뛰는 걸로 되지 않는다. 사거리 신호가 두 번이 바뀌어야 되는데 버스들은 이미 정류장에 있고 나는 아련히 버스가  출발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는 없었다.

오늘따라 아침공기는 왜 이렇게 춥고 나는 왜 굳이 굳이 봄옷을 꺼내 입었는지, 덜덜덜 떨면서 다음버스가 15분 뒤 도착이라는 표시를 애써 보지 않으면서, 나는 오늘 아침을 복기했다. 눈을 뜨고는 멍 때리지 않았아야 했을까? 결정적으로 버스정류장에서 뛰었어야 했나?


자주 후회한다.

후회란 지나간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그러지 말걸'하는 거다. 사소하게는 오늘 아침처럼 '뛸걸'에서부터  '이 사람과 결혼하지 말걸', '젊었을 때 영어공부를 좀  더했을걸', '짜장면 말고 옆테이블 저거 시킬걸'등 저마다 다양한 종류의 후회가 자주 찾아온다.

후회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길이 있을까? 다만, 이미 저질러진 일에 대해서 내가 지금 그 일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선택만이  할 수 있다. 현재나 미래를 후회할 수는 없으므로, 후회는 모두 과거에 대한 것이다. 돌이킬 수 없다. "만약 내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움직였더라면", "만약 내가 버스를 집어타려고 뛰었더라면"이라는 여러 가정을 생각해본다한들, 결과는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왜 후회를 하고 있는걸까?

다음에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려고? 그렇다면 그 원인이 내게 있다고 생각하는 걸꺼다. 나 아닌 다른 곳에 원인이 있다면 내가 후회하고 복기한다 한들, 내가 어쩌지는 못하지 않겠는가.


원인을 내게만 두지 않았으면 한다.

세상에 오직 한가지 이유, 나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 많을까? 아침에 버스를 세 대 놓친 것은, 주사위를 던져서 6만 10번이 연속해서 나올 수도 있는 것처럼 확률적인 일이었다. 주사위 숫자에 대해서 자책하지 않듯이 내게 벌어진 좋지않은 일에 여러요소가 있음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도 많음을 알면 좋겠다.

내탓일때도 있겠지. 하지만 오로지 '내탓이오'라고만 한다면 남탓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사회의 탓도 들어오지 않고 가끔은 우연한 사고에 대해서도 고민하게된다.


그 다음날은 같은 시간 일어나서 출근했지만 버스가 딱딱 오는 덕분에 10분 먼저 도착했다. 좋은 일에는 내가 잘해서 그런거야 이러지않고 운이 좋았네 생각한다.


후회가 너무 많은 삶을 살고 있다면 그래서 괴롭다면, 나 말고도 원인은 많으며 반대로 일이 잘되었을 때는 '내가 잘해서 그래'라며 내게 인심을 후하게 주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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