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이자 엄마
나는 7살까지 엄마,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다.
7살까지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로 일하는 중이었고 나는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강릉으로 내려가 자랐다.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에게 외조부모 이상의 존재이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 술 한잔 걸치고 들어오셔서 '우리 강아지, 우리 강아지' 하시며 안아주시던 할아버지.
머리 감을 때 운다고 나를 때리던 할머니.(어릴 땐 무서운 할머니였다)
정말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7살 때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부모님이 계시는 서울로 올라왔던 날. 할아버지가 출장에서 사다 주신 pooh 인형을 껴안고 정말 밤새도록 이불 안에서 엉엉 울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어린 7살 아이가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하룻밤에 모든 주변 환경이 변해버렸으니..
그리고 나는 성인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무척 힘들어하셨다. 결국 우울증 약까지 드셨고 나는 방학 때 강릉으로 내려가 할머니 옆을 지켰다.
그러던 3년 전 어느 날.
할머니는 할머니 집 안에서 앞으로 넘어지셨고 그 후로 차츰 걷기 힘들어하셨다. 몇 일뒤 외삼촌은 안 되겠다 싶어 서울로 모시고 올라왔고 우리는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는 휠체어에 앉아 계신 할머니를 보며 우리에게 말했다.
할머니 점점 더 못 걸을 거예요...
넘어지고 외상만 없었다 뿐이지 할머니의 목뼈는 어긋났고 그 부분에서의 신경 손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 만난 의사는 수술을 권유하지 않았다. 어차피 해도 큰 이득이 없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가족 맘은 그게 되는가... 우리는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다른 병원을 찾았고 2차례의 수술 후 할머니는 아예 걷지 못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