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lyingMina Oct 22. 2020

할마미

할머니이자 엄마


나는 7살까지 엄마,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다.




7살까지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로 일하는 중이었고 나는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강릉으로 내려가 자랐다.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에게 외조부모 이상의 존재이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 술 한잔 걸치고 들어오셔서 '우리 강아지, 우리 강아지' 하시며 안아주시던 할아버지. 

머리 감을 때 운다고 나를 때리던 할머니.(어릴 땐 무서운 할머니였다) 

정말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7살 때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부모님이 계시는 서울로 올라왔던 날. 할아버지가 출장에서 사다 주신 pooh 인형을 껴안고 정말 밤새도록 이불 안에서 엉엉 울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어린 7살 아이가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하룻밤에 모든 주변 환경이 변해버렸으니..








그리고 나는 성인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무척 힘들어하셨다. 결국 우울증 약까지 드셨고 나는 방학 때 강릉으로 내려가 할머니 옆을 지켰다.





그러던 3년 전 어느 날.

할머니는 할머니 집 안에서 앞으로 넘어지셨고 그 후로 차츰 걷기 힘들어하셨다. 몇 일뒤 외삼촌은 안 되겠다 싶어 서울로 모시고 올라왔고 우리는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는 휠체어에 앉아 계신 할머니를 보며 우리에게 말했다. 




할머니 점점 더 못 걸을 거예요...




넘어지고 외상만 없었다 뿐이지 할머니의 목뼈는 어긋났고 그 부분에서의 신경 손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 만난 의사는 수술을 권유하지 않았다. 어차피 해도 큰 이득이 없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가족 맘은 그게 되는가... 우리는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다른 병원을 찾았고 2차례의 수술 후 할머니는 아예 걷지 못하게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