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상처
할머니가 와상환자가 된 지 3년이 지났다.
아직도 외삼촌과 엄마는 가끔 이런 말을 한다.
넘어지고 빨리 병원에 모셔갔었다면...
외삼촌이 빨리 병원에 모시고 가서 일찍 수술을 받았다면 우린 지금 어디쯤 있을까?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안다. 후회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의 잘못된 판단이라고 하기엔 결과가 너무 가혹하다.
할머니에게도, 우리에게도.
2차례의 수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의 신경 눌림은 점점 더 할머니에게 고통을 주었다. 손발이 저리다며 밤마다 우리를 부르면 자다 말고 일어나 할머니의 손과 발을 주물러야 했다.
할머니에게서 '열'이 난다.
우리는 어김없이 병원으로 향한다.
'요로감염'
또, 우리는 병원에서 1주일, 많게는 2주일 동안 할머니를 간병해야 한다.
이런 상황의 반복은 우리를 점점 지치게 만들었고, 할머니를 결국 요양원에 모시기로 결정했다.
과연 어떤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까.
그곳은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가.
'죽음의 수용소' 라 칭하면 너무 잔인한가.
2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일제히 할머니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인다. 모두 한 마음 한뜻으로 내자식이길 바라고 계신듯하다. 요양원에 가면 나는 모든 할머니의 손녀가 되어, 한 분 한 분 인사드리고 할머니 옆에 콕 붙어 있는다.
바리깡을 가지고 일률적으로 밀어버린 듯한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도 안가는)할머니의 새하얀 머리를 보면 가슴이 너무 아리다. 조금만 흰머리 나도 염색하던 우리 할머니였는데...
요양원에 갈 때마다 마치 나의 죄를 씻기라도 하듯, 할머니의 얼굴과 손, 발을 깨끗이 씻겨드렸다. 그래도 재활 운동을 한 덕분에 두 손으로 휠체어를 끌 수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그저 감사했다.
할머니, 여기 말 잘 들어야 해. 할머니 상태면 집에 가면 죽어...
어느 날, 요양원 원장이 할머니한테 한 말이다. 그 말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는 '몸'만 불편한 할머니를 더는 그곳에 모실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할머니는 오랜 시간 차로 이동할 때면 '어딜가길래 이렇게 오래 걸리나' 하고 물어보신다. 자신을 요양원에 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함이 목소리에서 묻어 나오는 것 같다.
마음 한 켠이 아프다.
그리고 우리의 위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