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나는 새로운 꿈을 위해 퇴사를 했고, 3월 초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 끝나면 영국에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중국발 코로나는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우리나라로 퍼지기 시작했고, 그리고 유럽, 미국...
전 세계 모든 사람의 시간을 멈추게 만들었다.
나의 계획 또한 기약 없이 미뤄져 버렸고, 그렇게 할머니와 나의 위험한 동거는 시작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나는 할머니의 '24시간 전담 간호사'가 되었다.
인간이 하는 일을 0~10까지 매긴다면, 할머니는 0~10까지의 도움이 필요하다. 물론 엄마도 함께 도와주시지만 대부분은 내가 도맡아 했다.
할머니를 목욕시키는 날이다.
만개했던 꽃이 시든 것 마냥, 할머니의 굽어진 등을 보면서 마음 한 켠이 아린다. 그동안의 세월이 느껴지기도 하고, 병으로 인해 얼마나 고통받고 있을지... 감히 헤아릴 수 없다.
그리고 할머니 몸, 구석구석 씻겨드리며 나는 생각한다.
할머니와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내가 할머니를 도울 수 있음에 감사했다. 할머니의 아픔을 내 아픔이라고까지 여기며 지극히 정성스레 간호했다. 머릿속이 아닌 가슴에서 나오는 행동. 이래서 길러준 정이 무섭다고 하나보다.
눈을 뜨자마자 할머니의 상태를 살핀다. 할머니가 기분이 좋으시면 오늘 하루는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고, 아프다고 인상 찡그리는 날이면 나도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다.
소변통을 비우는 일로 나의 하루 일과는 시작된다. 엄마가 차려주신 아침을 할머니께 드리고, 약을 챙겨드린다. 방으로 들어가 공부를 하다 보면, 할머니가 "민아야... 민아야.." 하고 부르신다.
"노래 나오는 것 좀 틀어줘", "목이 마르다", "팔, 다리가 저리고 쑤신다" 등등... 할머니의 손과 발이 되어드리고 다시 방으로 가 공부를 한다.
멈추지 않는 배경음악은 막걸리 한잔, 찐이야, 진또배기, 누이 등등...
그리고 점심, 저녁...
이게 나의 5개월 동안의 루틴이었다...
집에서 콕 박혀 생활한 지 5개월 차..
아, 이러다 미칠 수도 있겠다..
정말 한 끗 차이였다.
까닥하다가 정신의 마지막 한 가닥을 놓을 것만 같았다.
다 무너질꺼 같았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내가 지금 당장 원하는 것 딱 하나.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방해받지 않는 공간'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내 정신에서 보내는 위험한 신호임을 감지하고 바로 떠났다.
서울의 한 호텔 방.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와, 이제 나 혼자야,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다'라는 신남보다, '여백'이었다.
여기서 여백에는 두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나 혼자만 있는 '공간의 여백'.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나의 숨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소리의 여백'..
어떤 이에게는 일상이겠지만 나에겐 일상에서의 탈출이었고, 내 몸에서 보내는 위험 신호에 대한 처방전이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반신욕과 책으로 달래며 나에게 오롯이 집중했다.
한결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임시 처방전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