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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Mina Nov 02. 2020

분리라는 처방전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제일 힘들게 하고 있었다



주변에 너 같은 손녀 없어.
우리 엄마조차 감동했어.




우리 집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걸 아는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렇다. 나도 내가 효손인 줄 알았다.



하지만 1달, 2달... 그리고 6개월...

나도 똑같은 인간이었다.










갓난아기로 돌아간 할머니를 모시면서 나도 점점 지쳐갔다. 문제는 할머니의 컨디션이 나의 에너지를 너무 많이 뺏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점점 부정적인 감정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오래 산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야...'

'왜 이렇게 다치셔서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87년.. 살만큼 사셨지...'




처음 이 감정들을 맞닥뜨렸을 땐 나는 내가 너무 무서웠다.




'내가 어떻게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할머니한테 이런 감정을 느낄  있지?'


'무섭다. 나 진짜..'




하지만 매일 24시간 아픈 사람의 손과 발이 되어 간병을 한다는 것은 나조차 피폐하게 만들었다. 내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지쳐는 만큼, 그 부정적인 감정은 나를 더 지배했다.

물론 이 감정이 계속 지속되는 건 아니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나의 감정은 요동쳤다.



이런 감정이 내 안에서 고개를 들 때마다 '할머니 돌아가시면 얼마나 후회하려고 해', '살아계실 때 최선을 다해야지'라고 나를 달래며 그 감정을 꾹꾹 눌렀다.










나의 미래에 대한 생각에 갇혀 고민하던 하루의 끝자락에서 '내일부터는 정말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하고 잠들었던 다음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할머니를 도와드리고 시계를 보니 아침 10시였다.


불현듯 꾹꾹 눌렀던 감정이 폭발했고, 내방으로 가자마자 깨진 창처럼 눈물이 와르르 쏟아져내렸다.




'너무 힘들어...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지... '

'내가 할머니 모시려고 이렇게 쉬고 있는 게 아닌데...'




심지어 할머니가 내 앞길을 막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효도가 미움의 얼굴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친언니에게 전화해 이런 나의 감정들을 털어냈고, 엄마가 더 신경 써서 할머니를 모시기로 하고 일단락되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내가 느끼는 이 모든 감정을 다 무시하는 게 맞는 걸까?'




너무 답답했다.

불쑥 나타나는 미움의 감정으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것도 힘들었고 정작 나에게 쓸 에너지조차 고갈되는 상황에서,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

이윽고 나는 심리상담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선생님은 나와 할머니의 분리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모든 에너지를 할머니에게 쏟지 말고 자신에게 써야 한다고... 내가 모든 짐을 짊어지려 하지 말고, 그 책임감을 조금 내려둬도 된다고...





그렇다. 공간의 분리.

할머니와 나 사이의 분리.

결국 같은 공간에서 있는 건 할머니에게도 나에게도 마이너스였다.




'내가 살기 위해'

'나의 미래를 위해'

'나를 먼저 보살피고 남을 보살필 수 있는 여유를 갖기 위해'




나는 오늘도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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