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분의 조부모님
어느덧 삼십 대 중반을 향해가는 나에게 든든한 빽이 있다면, 조부모님 네 분이 모두 살아계시다는 것이다.
사실 코 앞의 당장의 삶만도 버거울 때는 죄송스럽지만 조부모님의 존재를 잊으며 살곤 했다.
가끔씩 먼저 연락을 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연락을 제때 받지 못해 부재중으로 찍힌 핸드폰 화면을 보면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또 무슨 걱정을 하신 걸까...'
귀찮은 마음이 들다가도, 연락을 제때 받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고.
많은 감정이 교차한다.
'사랑' 그 단어엔 참 많은 감정들이 뒤엉켜 때로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곤 한다.
우리 가족의 사랑 방식은 마냥 해피하지만은 않았다.
22살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나에 대한 가족의 관심과 사랑이 좀 무겁게 느껴졌다.
그렇다. 사랑의 방식은 다르다.
누군가의 사랑은 조용하며, 무심할 수 있고.
한없는 미안함. 그리고 고마움. 걱정일 수도 있겠다.
모두 사랑이라는 것은 알지만, 혼재되어 내 마음에 착 붙은 감정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무엇보다 걱정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가슴에 또다시 얹힌 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잘 살고 있으면 됐지 뭐.'
단 한 번을 칭얼거리거나 기대 보질 못하고 주는 사랑을 달갑게 받지도 못했다.
난 참 애써 밝은 척. 강한 척했다.
"후~"
한숨 한 번 길게 내 쉬고 할아버지께 다시 전화를 건다.
나는 애써 괜찮은 척. 별일 없다는 말투로 매번 했던 말을 한다.
"네~ 잘 지내고 있어요. 할아버지도 건강하시죠?"
크리스천이신 할아버지는 그제야 안심하신 듯.
매번 "살아줘서 감사해!" 라며 짧은 안부를 묻고 통화를 마친다.
그럼 나도 내 임무를 마친 것 마냥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 혼자 오롯이 서 있으며, 잘 헤쳐나갈 수 있다 해도.
한 없이 약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제야 서서히 왜 그들이 내 곁에 존재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의 불현듯 찾아오는 연락은 "살아 있음"으로 나의 조용한 조력자이자 든든한 빽이 되어 주었다.
특히, 결혼을 앞두고 있는 지금.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의 예비 신랑 될 사람에게 한 마디씩 신신당부를 한다.
연극으로 치면, 이 대사 한 마디 하기 위해 기다리고 기다렸던 배역처럼.
"끝까지 책임지고 사랑해줘야 해!"
"참 복이 많으시네요? 진짜배기를 데려가서.."
그래서 얼떨결에 나는 진짜배기 신부가 되었고..
예비 신랑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또렷한 그들의 말 한마디에 평생의 약속을 걸고 확답을 한다.
(물론 잘 지켜질지는 살아봐야겠지만..^^;;)
결혼이라는 인생의 제2막을 앞두고 참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지난한 과거가 원망스럽고 안쓰럽기도.. 그럼에도 잘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그렇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그저 묵묵히 함께 '살아 있음'으로 존재해 주던 그들이 사실은 조용히 나를 살게 했는지도.
그렇게 우리는 사랑의 방식은 다르지만 서로가 서로를 살아있게 해 줬다.
다만 잊고 있어서, 그저 앞만 보고 살아 내느라 그들을 몰랐다.
어쩌면 살아 내는 건 내 의지와도 무관한데,
미련하게도 내 힘으로만 살아내느라 둘러보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알아차려 미안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
그들은 언제나 지긋지긋한 내 사랑의 원천이고 든든한 빽이었다는 것을.
나 역시 누군가의 때에 나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있음으로 존재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지금도 소중한 장면이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가고 있으니. 잘 기억해 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