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동기부여, 위로는 도대체 뭘까?
내 친구 놈 중에는 5년째 경찰간부 시험을 치르고 있는 녀석이 있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사실 기억이 잘 나질 않는데 제 놈이 5년째라고 하는 걸 보니 퍽 오래되긴 했다. 그러는 와중에 우리는 이제 소년이라고 하기엔 욕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어 버렸고, 20대 때 하염없이 어른으로 보였던 30대가 거짓말처럼 찾아왔다. 20대 때 30대가 되면 우리는 무얼 하고 있을까? 뭘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그때 즈음이면 제 갈길을 어느 정도는 찾아서 가고 있지 않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조차 말도 안 되는 기대였다. 우리는 20대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 길을 찾아 헤매고 있고, 혼란은 더욱 가중되어가고 있다. 더 엿 같은 건, 10년 전에는 학생이라는 이유로 고민하는 게 장려되었지만 이제는 고민조차 민폐와 방종이 되어 버리고 있어 죄스럽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본인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일 것이다. 꿈이라는 것은 살아갈 희망을 주는 것과 동시에 절망을 주는 저주에 가깝게 느껴지는 것을 20대를 지나며 느끼곤 한다. 비단 이것이 이 녀석만 겪는 고통은 아니겠지만 고통스러워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는 것도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특히, 장수생의 경우 합병증처럼 본인을 갉아먹는 자격지심도 세트 메뉴로 따라오기 다반사라서 주변인들과의 관계도 파국으로 치닫은 것은, 아마 모르긴 몰라도 노량진 고시텔에 한집 건너 한집 있는 사연일 것이다. 가끔 이런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라고 말한 윌리엄 클라크의 싸대기를 후려갈기고 싶은 때가 있다.
요즘 흔히들 꿈을 잃어버린 세대라고 메스 미디어에서 떠들어 대는 것 같다. 말장난 일수도 있지만 꿈을 잃어버렸다기 보다는 꿈을 꿔도 고통스러우니 꿈을 꾸길 겁내는 세대가 더 정확한 게 아닌가 한다. 내 주변 한정인지는 몰라도 꿈을 물어보면 다들 뭔가는 말한다. 다만 그 후에 씁쓸한 미소가 디폴트로 따라오는 게 문제이지, 꿈을 잃거나 없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그것을 나라 탓이라느니 정부 탓이라느니 어른의 탓이라고 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들 세대야 말로 꿈 자체를 생각지 않고 더 잘 먹고 잘 입는 것만 바라보고 산 세대가 아닌가? 동의하기 어렵다면 주 6일 근무하던 때를 생각해보자. 본인도 주 6일 일한다고 지금 생각하고 있다면 미안할 따름이지만, 아예 지정된 근무일이 6일인 것과 직장의 특수성으로 6일 일하는 것은 염연히 다르다.
다시 친구 놈 이야기로 돌아와서, 하여튼 이놈은 5년째 꿈 고문을 이어가길 계속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많은 사람들이 말렸지만 들어먹을 놈이었으면 3년 차 때 아마 스스로 공부하던 것을 분서하고 다른 걸 찾았을 것이다. 20년째 알고 지내는 짬은 무시 못하는지 이놈의 그런 습성을 알고 다른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늘 나는 박수를 쳐주곤 했다. 하지만 나의 박수와는 별개로 누구보다 그 시간이 두렵고 고통스러운 사람은 그녀석 자신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녀석은 가끔, 아니 어쩌면 조금 자주 공부에 지치고 실패가 두려운 나머지 나에게 전화를 해서 자신이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하듯 묻고는 했다. 그런 때면 나는 매번 다양한 이야기들로 녀석에게 잘 가고 있음을 다독여 주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 자신조차도 내가 가는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문과 회한이 들던 날이었다. 내 기준에서 잘 나가는 친구를 만나고 나의 나태함과 약한 의지력에 대해 강한 비판을 듣고 집에 돌아온 날이었다. 그러던 그때 그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고 녀석은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생일에 어떤 선물을 사주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무슨 이유였을까?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정신 차리라고 말해주는 게 진짜 좋은 조언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 지금 돌아보면 사실 나 자신에게 정신 차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켜고 전화기를 더욱 얼굴에 가져다 대고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좀 씨게 니한테 말해도 서운해하거나 곡해해서 듣지 않아 줬으면 한다.”
“그래 뭔데 함 들어보자”
“나는 니가 내 생일 선물 고민할 시간에 한자라도 더 공부를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 뭐라고?”
“니가 지금 뭐 경제적으로 풍족하거나 안정적인 직장이 있는 것도 아이고, 매일마다 공부에 지쳐가는 놈이 내 생일 선물을 뭐 줄까 이딴 소리 하는 게 어이가 없다 솔직히.”
“야 자, 잠깐…”
“니 얼마 전에 내랑 모바일 게임해보자 캐서 했던 거 기억 나제? 니 솔직히 잘하드라? 공부한다고 매일 힘들다면서 그 게임할 시간은 언제 있었냐? 니가 솔직히 그 게임할 시간이 있냐? 아니 그전에 그 게임하면 스스로한테 안 미안하더냐?”
“… 하…”
“니가 낸 테 줄 수 있는 제일 좋은 선물은 게임이고 생일 선물이고 그냥 경간부 합격해서 합격했다고 말하는 거다.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은 그때 가가 말해도 전혀 안 늦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전화기 너머로 녀석의 거칠어진 숨소리와 떨리는 목소리가 느껴졌다. 녀석은 입을 크게 벌리지 않는 말투로 한 자 한 자 내뱉었다.
“니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솔직히 진짜 실망했다. 니가 20대 들어서 나만큼 노력한 적 있냐? 누구보다 내가 치열하게 사는 것을 니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니 내 공부하는 거 실제로 본 적 있냐? 하루하루 지옥 같은데 버텨내는 건 본 적 있느냐고? 니 20대 아무것도 안 할 때 나는 누구보다 처절하게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니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안 살았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너무나 많은 감정이 소용돌이쳐왔다. 나의 20대… 정말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구나 싶은 슬픔과, 그걸 그렇게 말하는 친구에 대한 분노도 있었지만, 나는 분명 20년 정도 친했으니 이 정도의 지적은 녀석에게 들릴 거라고 착각했던 모양이었다. 아니 사실은, 나는 다른 친구에게 내가 녀석에게 한 말 같은 말을 들었는데 녀석처럼 반박하지 못했다. 그것은 나의 이미 무너진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좀 더 현명해서였을까? 솔직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모르겠다. 녀석은 그 후로 계속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한동안 서로 연락 안 했으면 한다.”
“… 그래 나도 니가 이렇게 반응할지 몰랐다. 나는 물론 누구보다 니 노력을 알지만 좀 더 허슬 하길 바라는 마음에 그랬다. 나도 니랑 한동안 연락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정말 그 후로 반년이 넘는 동안 서로 조금의 연락도 하지 않았다. 매주 한번 정도는 안부를 묻던 친한 사이가 하루아침에 연락을 주고받게 되지 않았음에도 허전함은 없었다. 나는 속으로 녀석은 녀석의 길을 알아서 가겠지, 나는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것 같다고 느꼈다. 다시 연락한 것은 이듬해 녀석의 생일 때 내가 치킨 기프티콘을 보내면서 다시 대화가 이어졌다. 다시 한번 한국인의 치킨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는 경험이었다.
지금은 뭐 서론에서도 말했다시피 녀석은 결국 그해 경간부에서 불합격하고 올해도 재도전 중이다. 주변에서는 이미 말리는 목소리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가끔가다 있어도 이제 녀석은 ‘쟤는 저래 생각하는가 보다’ 하고 예전만큼 귀 기울이지 않는 눈치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
나는 그때 그 사건을 떠올리며 나에게 질문했다. 정말 누군가에게 필요한 위로란 무엇일까? 어떤 말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나? 우리는 수많은 동기부여 영상과 책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조선시대 농경사회일 때 밭이든 논이든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노동요 수준으로 위로와 동기부여에 관한 콘텐츠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참 위로나 동기부여가 잘팔리는 세대인가 보다. 급격한 산업화와 정보화시대를 겪으며 어른들이 말하던 이야기들이 오늘 우리의 하루와 괴리가 느껴지는 삶을 마주하고 있어서인가? 좋은 직장을 가지던, 무언가를 준비하던,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던, 모두가 내일이 두려운 하루를 살고 있다. 30대가 이립(而立)이라고 했던가? 마음이 확고하게 서서 도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나이기는 개뿔 나는 아직 도덕이 뭔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조차 흔들릴 따름이다. 착하고 착실하게 사는 사람은 더욱 궁핍해지고. 성실하게 꿈을 놓지 않는 사람에게 수군대며, 오로지 물질적 풍요와 그것을 담보하는 직장에 환호하는 이 30대가 맞는 것인지 나는 도통 모르겠다.
내가 녀석에게 던진 그 충고는 위로도 동기부여도 전달하지 못해 땅에 떨어진 말이 되었다. 의도야 어찌 되었든 나의 이야기는 끝내 닿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우리는 주변에 수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받고 또 건네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래도 본인 안의 불신과 의심은 여전히 거기 그대로 남아, 혼자 있는 시간에 다시 슬그머니 그 얼굴을 비추곤 한다. 나의 불안정하고 실패하기만 한 듯한 20대가 지나고 여전히 공허한 30대를 달리며 그래도 하나 알게 된 것은 있다. 아무도 나의 짐을 대신 들어주지 못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설령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라 할지라도 말이다. 아 물론 결혼은 안 해봐서 모르겠다. 옆에서 힘내라고 네가 가는 길이 맞다고 외쳐줄 수는 있다. 하지만 사실 본인 안의 의심을 이겨내지 못한다. 그 공허한 마음에 책이나 영상 혹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동기부여와 위로를 찾지만 어느새 그런 위로에 취해 내면의 공포를 외면하는 ‘찰나’에 익숙해진 ‘위로 중독’의 자신을 마주하게 되곤 한다.
안타까운 이야기다. 안다. 지독하게 외롭고 쓸쓸하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내가 살아본 30년이 그렇더라. 만약 아니라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니 나의 부러움을 받아라. 그런 세상에 우리는 내던져져 있는가 보다. 나는 아직 우직하고 성실하게 본인의 꿈을 밀어붙이는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인지 까지는 모르겠다. 나조차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으니 알 턱이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세상에 필요하다는 것은 확실히 안다.
그러니 착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의 위로가 썩 훌륭할 수는 있다. 하지만 타인의 마음 깊은 어둠 모두를 밝혀주지 못한다. 혹여 누군가가 당신의 위로를 듣고 일어났다고 한다면 그건 당신의 공로가 아니다. 그 말을 듣고 일어선 본인이다. 우리는 그 누군가가 본인의 두 다리로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준 것 밖에 없다. 그러니 일어설 가망이 있는 사람 주변에 있는 것도 삶의 한 지혜라면 지혜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위로를 바란다면 아낌없이 위로해주고 동기부여 해주자. 가끔 그 위로의 방식이 상대방에게 먹히지 않을 때도 있다. 서운해 말자. 상대가 더 서운해하더라. 그리고 언젠가 그 사람이 다시 서서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할 때,
“너라면 해낼 줄 알았어!”
라고 말하는 앙큼함 정도는 센스이니 참고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