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여전히 허덕이는가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빈곤, 그 사이의 행복

by 가릉빈가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의 시 <가난한 사랑의 노래>의 일부이다. 가난했기 때문에 간절하게 원했음에도 놓아야만 했던 것을 읊조린다. 이 시는 1988년에 발간되었다. 문학은 그 시대를 대변하기도 한다. 과연 그때에 정말 가난했을까?


우리나라는 실로 가난한 나라가 맞았다. 1982년 절대적 빈곤율은 무려 86%에 달한다. 절대적 빈곤은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가 심각하게 박탈된 상태를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의식주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2/3가 실로 하루하루 먹고 사는 걸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단 뜻이다. 배고프고 굶주리던 시절이다. 신경림의 시가 나오는 1988년은 여전히 국민의 반은 의식주에 목을 매던 시기였다.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두려움도, 사랑도 모두 다 사치였을지 모른다.


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빈곤통계연보


절대적 빈곤율 추이를 보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살아왔는지 알기에 충분하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는지 확연하게 보여준다. 그래프의 기울기는 실로 절벽처럼 가파르게 떨어진다. 1982년 국민의 대다수가 빈곤에 허덕이던 나라였지만 불과 10년 만에 절대적 빈곤율은 14%로 떨어진다. 대다수의 국민이 가난한 나라에서 일부의 국민이 가난한 나라로 바뀌는데 10년이면 우리나라는 충분했다.

물론 잘 떨어지고 있던 절대적 빈곤율이 갑자기 올라가던 시절이 있긴 했다. 바로 IMF다. 1997년 12월에 터진 IMF는 7%에 불과하던 절대적 빈곤율을 단박에 16%대로 2배 이상 급등시킨다. 그때 얼마나 국민들이 힘들었는지 저 불쑥 튀어나온 수치가 잘 말해준다. 그때 대한민국은 모든 패러다임이 바뀐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기여를 한 사건이다. 하지만 결국 대한민국이다. 10년 만에 빈곤율을 80%대에서 10%대로 만든 나라이고, 수혜국에서 공여국이 된 세계 최초의 나라이지 않은가. 결국 절대적 빈곤율은 떨어지게 되고, 2015년에는 7%로 IMF가 터지기 전의 절대적 빈곤율로 돌아온다.




우리나라는 2015년을 끝으로 절대적 빈곤율을 조사하지 않는다. 이유는 7%의 절대적 빈곤을 겪는 국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상대적 빈곤을 겪는 국민들이 많아졌다. 상대적 빈곤은 다른 인구집단과 비교하여 특정인구집단이 겪는 결핍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의식주는 해결하였으나 다른 것들로 인해서 박탈된 상태를 말한다. 이를테면 주변에 모두 다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데 내가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면 상대적으로 빈곤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출처: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2015년 상대적 빈곤율은 17.5%에 달한다. 절대적 빈곤율 7%에 2배가 넘는다. 의식주가 해결되었지만 남들과 비교했을 때 빈곤하다고 느끼는 국민은 약 1/5 정도이다. 2015년에 살고 있지만, 마치 1991-92년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분명 부유해졌다. 2015년과 1990년대 초반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2015년에서 1990년대 초반의 흔적을 찾긴 쉽지 않다. 찾아봤자 그때에 지어져 이젠 낡아진 건물 정도일 것이다. 사회의 모든 시스템 하나하나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자그마한 것 하나하나가 이미 다 교체된 지 오래다. 서류 한 장조차 1990년대 초반의 모습을 찾긴 어렵다. 1990년대 초반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그 시절에 만들어진 드라마나 영화, 책 등을 통해서만 이제 우리는 알 수 있다. 너무 멀리 있는 느낌마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빈곤율은 1990년대 초반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분명 이전의 시절과 다르다. 우리는 이제 가난하지 않다. 가난한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책의 기조도 더 이상 절대적 빈곤율에 목매지 않는다. 절대적 빈곤에 속하는 그들은 이제 복지제도를 비롯하여 다양한 지원책으로 어느 정도 나라에서 자체적으로 커버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의식주가 해결됐음에도 그 외의 것이 필요해졌다. 의식주는 이제는 기본으로 해결되는 욕구이다. 우리는 이제 기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그 무언가를 원한다. 갈구한다.


어쩌면 차라리 다같이 가난한 시절이 사람들의 마음은 더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가난하고, 너도 가난한. 국민 대다수가 가난하여 오히려 그 격차를 느끼지 못한다. 박탈감은 적어진다. 비교해봤자 비슷한데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그저 열심히 노력해서 지금보다 나을 생각만 해도 충분하다.

또한 예전에 자신의 위치를 높이는 방법은 실로 많지 않았다. 4년제 대학교를 나오거나 고시를 합격하거나 사업이 잘 되거나 등 선택지가 많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사람의 비율도 많지 않았다. 질투도 너무 차이가 나면 느끼지도 않는다.


사회의 세그먼트(segment)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지금은 고시에 합격했다고 해서 확실한 부와 지위가 예전처럼 쥐어지지 않는다. 4년제 대학교 졸업장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다니는 것에 별반 다르지 않다. 석박사학위자라고 그리 다르지 않다. 그 특별함을 상실한 지 오래이다. 예전에는 우습게 봤던 것들이 부각되었다. 저런 것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무시했던 것들로 돈을 벌어서 소위 떼부자가 된다. 어느 순간 나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다.

우리의 상황은 이제 노력만으로 나아지지 않는다. 스스로 특별하게 잘하는 재주가 없는 이상 개천에서 용나는 시절은 끝났다. 수저론이 각광을 받고 있다. 나의 능력과 관계없이 주변의 것들로 내 것들이 채워지고, 출발선은 더더욱 달라져만 간다. 요즘은 입사할 때부터 월급이 다르다. 자격증 유무에 따라서, 학위에 따라서 등 다양한 이유로 입사 동기의 연봉이 나와 똑같을 것이라 보장하기도 어렵다. 분명 비슷한 것 같은데 다르다. 질투는 항상 나와 비슷하다고 여겨질 때 생긴다.


2019년 상대적 빈곤율은 16%이다. 2021년이라고 그리 수치가 낮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마음으로는 IMF 시대에 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최악이라고 일컬어지는 시대에 있다. 분명 겉은 더 좋아졌는데 속은 오히려 더 안 좋아지고 있는 셈이다.





2021년 퓨 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에서 17개국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삶의 가치의 질문에 대하여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물질적 행복이 1위인 나라라고 발표했다. 대다수의 국가가 가족을 내세운 것을 생각하면 정말 너무나도 튀는 결과이다.

조사한 이래로 물질적 행복이 1위로 결과가 나온 것이 처음이란 이야기도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의 결과는 이러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이전에는 가족이나 건강을 먼저 우선시했음을 의미한다.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서는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믿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돈이 있어야 무엇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돈이 있어야 가족이 있다, 돈이 있어야 건강이 있다, 돈이 있어야 뭘 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돈만 있으면 살기 편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우리는 더 이상 먹고 사는 것에 허덕이지 않는데도 여전히 돈이 필요하다. 돈 없이는 안 되는 나라가 되어버린 것 같다.


사실 현재를 둘러보면 실로 살기 팍팍한 삶이다. 날로 치솟는 물가는 말할 것도 없고, 집값은 터무니없이 높아져서 내 조그마한 몸뚱아리를 맘 편히 뉘일 곳도 불편하다. 월급은 최저임금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사람이 대한민국에 넘쳐난다. 우리가 IMF 시대에 살고 있는 것과 사실 뭐와 다를까 싶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명품샵에서는 사람들의 줄이 늘어선다. 대규모의 복합단지는 경쟁적으로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끊임없이 확장하고 팽창되어가는 속에서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N포세대'란 말이 몇 년 전에 생겼다. 맨 처음에는 3포로 시작되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란 뜻이다. 그러던 것이 5포세대에서 7포세대가 되더니 어느 순간 미지수인 N포세대가 되었다. 포기할 것이 딱히 정해놓을 것도 없이 셀 수 없어졌단 뜻이다.


우리는 절대적 빈곤율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의 노래>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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