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은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러 사람이 각각 의견을 말하며 논의하는 것을 말한다. 문제가 있고, 그것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의견을 말한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싸운다. 사실상 토론은 곧 논쟁, 디베이트인 것이다. 이런 논쟁은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있고, 특히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디베이트 교육이 상당히 많이 발달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의 토론과 미국의 디베이트는 사뭇 다르다.
겉으로 보이는 모양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비슷하다. 서로 언성을 높이고 상대의 주장을 까내리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솔직히 한국의 토론보다는 미국의 디베이트가 더 격정적이다. 하지만 토론이 끝난 이후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미국은 디베이트를 할 때 거칠게 말해도 디베이트가 끝난 이후에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서로 친했던 사람이 논쟁을 하면서 서로를 공격하더라도 논쟁만 끝나면 다시 원래 친한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미국과는 다르다. 서로 친했던 사람이더라도 토론을 하면서 서로를 공격하면 사적인 관계도 틀어지게 된다. 정치인들은 모르겠지만 일반인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지면 그런 현상이 상당히 많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가? 우선 방식의 차이이다. 미국은 디베이트 교육이 발달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토론과 미국의 디베이트와는 아주 큰 차이점이 존재하는데 바로 주장을 관철시키는 대상이다. 한국의 토론에서는 내 의견을 반대하는 사람에게 내 의견을 주장한다.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고, 사회자나 제3자는 토론이 정상적으로 흘러가도록 이어가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의 디베이트의 경우 상대방이 아닌 심판에게, 또는 제3자에게 내 의견을 주장한다. 상대방이 내 의견을 따르든 말든 그건 관심이 없다. 제3자가 내 의견과 상대의 의견 중 내 의견을 선택하도록 주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디베이트는 상대의 의견을 공격하지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의 토론은 상대방에게 내 의견을 주장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직접 공격하는 경우도 왕왕 존재한다.
그러나 필자는 다른 이유에 더 초점을 맞추고 싶다. 바로 한국인은 자신의 의견과 자아를 분리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모두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많은 한국인이 그런 경향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자신의 의견과 자신은 분리되어 있는 존재이다. 생각이 바뀔때마다 자아가 변화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의 주장이 공격당하거나 거절당하면 마치 자신이 공격당한 것처럼 화를 내거나 시무룩해진다. 그리고 공격하는 사람도 상대의 의견을 반박해야 하는데 상대방을 반박해버린다. 이른바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의견 뿐만 아니라 직업, 종교, 지역, 취미, 커뮤니티 등 자신과 관련된 것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직업을 비하하는 사람은 그냥 머저리 취급하면 되는데 꼭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자신의 출신지가 모욕당하면 마치 내가 모욕당한 것처럼 느껴진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한국인들의 의식이 그러하니까. 그러나 아주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나의 직업, 종교, 지역, 취미, 커뮤니티 등은 나와 완전히 다른 개체일 뿐, 그것이 내가 될 수는 없다. 같은 출신지의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면 나도 살인자인가? 가족의 죄도 별개의 것인데 당연히 출신지만 같은 사람의 죄는 나와 전혀상관이 없다.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부정을 저지르면 나도 그 부정을 저지르는가? 역시 그것도 아닐 것이다.
한국 사회는 참으로 개인과 집단을 분리하지 못한다. 그것이 자신이든 타인이든 말이다. 그래서 나와 관련된 것이 잘못되거나 비방받으면 화가나거나 슬프고, 어떤 집단이 범죄를 저지르면 그 집단 구성원 모두가 범죄자인 것처럼 매도한다. 그러나 내가 있는 집단은 그 집단으로 있을 뿐이고 나는 나일 뿐이다. 역시 다른 집단 또한 마찬가지이다. 범죄집단에 속하였다 하더라도 (범죄자일 가능성이 매우 크지만) 그 이유만으로 구성원이 범죄자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내가 속한 곳과 자아를 분리시켜야 한다. 직장에선 직장인으로, 가족에선 부모·자녀로, 종교에선 신도로 존재하고 그 곳을 벗어나면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와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사회이고 건강한 사고방식이다. 집단이 개인을 모두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