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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수용 Jun 22. 2021

가족은 당신의 소유가 아니다

직업이 심리상담사는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이 가끔씩 필자에게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한다. 재밌는 것은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상대의 마음을 파악하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에 관심이 있는 반면, 결혼한 사람들은 자신의 배우자나 자녀가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것에 관심이 있다. 남편이 담배나 술을 안끊는데 어떻게 끊게 하는지, 자녀가 공부를 안하는데 어떻게 시키는지, 아내가 아침을 안차려주는데 어떻게 차리게 하는지 등등 다른 사람을 자신에게 맞추려 용을 쓴다. 사실 가능한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라 대부분 그런거 없다고 하고 그냥 돌려보내긴 하지만 실제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오늘 그것들을 한 번 써내려가본다.




한국문화에서는 유독 가족을 자신과 동일시 하는 경향이 강하다. 전에 올린 '자아가 분리되지 않는 사회'에서도 언급했듯이 대부분의 한국인이 자신과 연관된 것을 본래 자신과 분리시키지 못한다. 근데 이것이 자신의 가족과 친척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하자면 가족과 자신을 같은 존재로 본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이 취직이나 결혼에 간섭하는 것도, 부모가 자신의 자녀가 이룬 업적을 마치 자신이 이룬 것 처럼 자랑하는 것도, 자녀의 의견은 무시하고 공부를 강요하는 것도 모두 가족을 자기 자신 또는 자신의 소유물(物)으로 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너무 비약적으로 말하는거 아니냐 할 수도 있다. 취직과 결혼은 전 글에서 언급했으므로 자녀의 성과를 자랑하는 부모 이야기를 해보자.


가족도 결국 타인이다


소위 흙수저라 불리는 가정에서 판사가 한 명 나왔다치자. 판사가 된 자녀는 말 그대로 미친듯이 공부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는 그를 가르치기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돈을 벌었다고 해보자. 이때 부모가 감당해야 할, 감당한 과제는 돈을 벌어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판사가 되기 위한 공부는 오로지 자녀의 과제다. 즉 엄밀히 말하면 부모는 자녀가 판사된 것을 자랑하면 안되고 자신들이 돈을 벌어서 자녀가 돈걱정하지 않고 공부하도록 도운 것을 자랑해야 하는 것이다. 판사가 된 것은 자녀의 업적이기 때문이다.


위와는 반대로 돈을 벌어서 자녀를 공부시켰는데도 불구하고 백수가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여기서도 부모의 과제는 돈을 벌어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자녀의 취직은 자녀 본인의 과제일 뿐이다. 판사자녀의 부모는 택배기사에게도 자녀가 판사가 되었다고 자랑하겠지만, 백수자녀의 부모는 자기자신을 자책하거나 자녀를 원망할 것이다. 그러나 둘 다 옳은 반응이 아니다. 두 상황 모두 부모는 자기 자신의 몫을 다했고, 끝까지 부모의 책임을 다한 것이 업적이 된다. 자녀가 어떤 직업을 가지든 부모 자신들의 과제는 충실히 이행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원리로 자녀의 진로에 조언을 할 수는 있어도 강요는 할 수 없다. 선택은 오직 자녀의 몫이기 때문이다.


배우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도 마찬가지이다. 그건 배우자의 몫이다. 담배도, 돈도, 쇼핑중독도, 도박도, 치약짜는 것도, 휴지거는 것도 모두 배우자의 몫인 것이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을 할수는 있다. 그러나 배우자가 행동을 고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치약을 끝에부터 짜는데 배우자는 중간을 누른다고 해보자. 이야기를 했는데 안고쳐진다면 그냥 치약을 따로 쓰면 된다. 배우자의 흡연이 싫다면 말만하지 말고 같이 금연하도록 노력해보자. 보건소 금연 프로그램에 동행하거나 담배를 3달 이상 끊으면 플스5를 사준다고 계약을 맺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 밖에 없다. 가족을 포함한 타인을 마음대로 조작하려는 것은 오만이고 타인의 과제를 침범하는 것이다. 필자가 위에서 얘기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다.


당신 남편, 아내, 아들, 딸은 당신 것이 아니라 그냥 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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