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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y수 Apr 09. 2024

고2 금쪽이가 웁니다.

금쪽이가 몇 시간을 울기만 하는 거야.


오랜만에 카톡이 왔다. 통화 가능?

아는 언니의 카톡이 온 것을 보니 철학관에 갈 일이 있거나, 관련 고민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답을 쓴다. 한번 통화하면 2시간이 넘었던 생각이 나서, 아이 픽업 핑계로 한 시간 이상 통화는 어렵다고 말해야겠다는 마음만 먹는다. 이사한 지 오래되었는데 어찌 지내냐는 질문과, 내 일상을 물어보는 질문들 뒤에는 고구마를 삼키며 할 말을 참고 있는 느낌이 가득하다. 말하는 나도 상투적인 내 일상을 대충 말하고 마무리하며 본론으로 들어가 본다.


금쪽이는 키가 아주 큰 여자친구다.

머리도 짧고 외모만큼 성격도 털털하여, 남 신경 안 써 보인다. 이건 금쪽이 사주를 알기 전 내가 받은 인상이고, 사주를 알고 난 후에는 어떠한 환경이 타고난 예민함을 이처럼 치밀하게 감출 수 있게 했는지 궁금했다. 부모님이 모두 대학 교수인 금쪽이는, 초등학교 때 특별한 선행도 공부도 하지 않았다. 마냥 즐겁게 여행 다니고 운동도 하며 컸던 것 같다. 중학교 들어서면서 스스로 공부 욕심이 생겼고, 교육자 부모님의 서포트까지 더해져 어릴 적부터 공부 잘한다고 소문난 친구들을 한 명씩 제치기 시작했다.


시험 끝나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노래방 가는 것을 좋아했고, 크게 친구와 문제도 어울림도 없었다. 잘난 척도 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만 하는 금쪽이는, 유리처럼 얇고 날카로운 사춘기 친구들의 타깃이 되기도 하였다. 쉬는 시간에 돌아가면서 한 명씩 금쪽이 옆에 앉아 말을 걸고 공부를 방해했다고 한다. 읽던 책을 빼앗는 다던지, 심지어 교재를 숨기기까지 해서 문제가 되었다. 어찌어찌 해결된 이 사건을 들으며 나는 딴 것에 놀랐다. 못된 아이들이 어디든지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놀라지 않았지만, 공부에 꽂히면 중학생이 스스로 쉬는 시간에 공부를 할 수 있구나 싶었다. 중학교 입학 때까지 어떠한 공부도 안되어 있던 금쪽이는, 유명 학군지 중학교에서 전교 5등이라는 훌륭한 메달을 걸고 졸업하였다.


참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다.

다른 집 아이지만, 어릴 적부터 선행하던 아이들을 속 시원하게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인간 대 인간으로 멋있었다. 어떻게 보면 교육자 부모님과 손발도 잘 맞았다. 부부가 열심히 학군지에 라이드 하며 보석 같은 학원과 선생님을 잘도 찾아냈다. 여기서 부모의 전문성이 발휘되었는데, 보석 같은 수업들은 금쪽이에게 딱 맞는 방법의 공부를 제시해 주었다. 일타 강사 수업을 들어서 공부가 다 해결된다면, 동네 아줌마인 나도 다시 수능을 본다고 덤빌지 모른다. 세상은 각자에게 맞는 교육법이 있다는 것을 교육자 부부는 금쪽이 커리큘럼에 녹아낸 것이다. 중이 자기 머리는 못 깎는다고 하던데, 교육자 부부가 자녀교육을 이리 잘 해내는 것을 보며 속담도 시대에 맞춰 업데이트해야 하나 싶었다.  




메달의 무게는 컸다.

그 지역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고등학교에 원서를 내기로 했고, 금쪽이 정도면 그 학교에 갈 수 있다며 모두들 끄덕이며 인정해 주었다. 끄덕임은 금쪽이에 대한 신뢰감이고, 앞으로도 쭉 잘할 것이라는 확신이고 축하였다. 교육자 부부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인가. 알아야 고민한다고, 정보가 많으니 고민이 더 깊었을 것이다. 금쪽이는 입학하고부터 안정적인 활약을 보였다. 치열한 동아리 면접에서도 무던하게 뽑히며 벌써 원하는 대학은 들어간 것 같이 보였다.



숨이 잘 안숴져서 걸어갈게요.



지난겨울, 금쪽이가 학원 끝나고 1시간 넘는 거리를 걸어온다며 카톡을 남겼다. 감기기운도 있는데 추운 겨울, 그것도 밤 11시에 딸아이가 걸어온다고 하니 엄마 마음은 방망이질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이유가 더 무섭다. 숨이 안숴진다는 말을 부모는 어떻게 이해하고 답 해야 할까. 금쪽이 엄마는 수도 없이 아이 위치추적 앱을 새로고침할 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한다.


고2, 금쪽이는 스스로 포기를 선언했다.

일명 '콘크리트 1등급'이라는 존재들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어릴 적부터 공부가 탄탄했던, 영재고에 아쉽게 떨어지거나 전략적으로 안 가서 스스로 1등급을 선택하여 입학한 아이들을 일 컸는다. 과도한 선행이 과도하지 않게 소화되고 타고난 머리에 의지까지 있는 그들을, 금쪽이는 넘어 보려 1학년 내내 최선을 다했었나 보다. 어디 가도 공부 못한다는 소리 들을 성적이 아닌데, 앞에 있는 등수보다 뒷 등수 친구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 더 이상 노력할 의미가 없어졌던 것이다. 모든 공부를 눈물 가득한 눈으로 멈추었다.  





금쪽이는 '대접'이 중요하다.

금쪽이 같이 사주에서 '관'이 강한 사주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대접받는 것을 중시하고 대접받기 위해서 노력한다. 각자의 사주에서 사회적 모습을 뜻하는 글자는 그 사람이 쓰는 언어만 봐도 예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금쪽이 같은 사주의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둘 때 '나를 제대로 대접해 주지 않아서'가 주된 이유이다. 이직할 회사를 선택할 때도 연봉이 좀 낮더라도 내 존재가 중요하고 적절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느냐를 더 크게 보는 성향이다. 금쪽이는 1등급을 받아야 본인이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는 가치기준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노력해도 대접을 못 받는다고 판단되는 순간, 더 이상 노력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만 가득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런 금쪽이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이 엄마였다. 어찌 보면 금쪽이 엄마는 억울할 것이다. 금쪽이 사주에서 엄마는 아이를 성장시키고 채찍질하는 역할이다 보니,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어찌 보면 훌륭한 교육자라는 사회적 타이틀 자체가 금쪽이에게 넘기 힘든 산 같은 존재이고, 영원히 부모보다 못한 존재로 대접받는 것이 아닌가 라는 불안감을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통화가 길어질수록 내 마음이 옥죄어 왔다. 금쪽이 엄마는 아이의 답답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더 노력할 능력이 안된다고만 선 그어 평가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의 가장 큰 불만이 금쪽이 스스로 한계 짓고 포기해 버린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스스로 한계 짓는 모습과 부모가 내리는 금쪽이에 대한 평가는, 시선이 너무도 똑같아서 말의 흐름을 잃었다. 둘째는 영특해서 노력을 덜해도 결과값이 나오는데, 금쪽이는 그렇지 않고 머리의 한계가 있다는 말을 한다. 교육자로서 객관적인 시선일지 모르지만, 지금 금쪽이 옆에 교육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출처 : 금쪽같은 내 새끼




슬펐다.

내가 혹여나 가졌던 내 아이에 대한 잘못된 시각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마음 아프게 타산지석 삼는다. 금쪽이는 충분히 좋은 사주를 타고났고 머리도 좋고 다재다능한데, 지금 좀 힘든 운이 와서 그런 것이라 말해주었지만 엄마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금쪽이는 하지 말라해도 잘할 텐데 지금 부담이 너무 크고 시야가 좁아진 것이니 조금 덜 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라 하지만, 금쪽이 엄마가 듣고 싶은 말이 이게 아닌가 보다. 금쪽이의 20대 후반부터 좋아지는 운을 설명해 주며 위로해 보지만 금쪽이 엄마는 고3 수능날까지 버틸 있는지가 전부이다. 잘할 없고 하던 대로만 해서 지금 등급만 지키면 좋겠다며 소박해 보이는 말을 남기며 통화를 마무리 했다.


금쪽이는 스스로 통제감이 큰 아이라 힘든 운이 왔을 때 많이 흔들린다. 하필 지금 운은 많이 힘겨울 것이고,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억울해지는 운을 맞이하였다. 운이라는 것은 인생에 어떤 형태로든 흔적을 남기고 지나가니, 주변 사람들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모든 짐을 내려놓으라고 해도 힘겨울 시기에, 더 이상 못하겠다는 아이에게 타협한 말이, 지금처럼만 하라는 것이다. 힘든 운에 너무 바닥까지 내려가면 다음 힘든 운을 만났을 때 이겨낼 마음도 못 먹고 도망치게 된다. 이제 알게 되었다. 금쪽이에게 힘든 운을 만드는 대상이 누구인지.


다른 집 이야기라 마치 나는 다른 척하는 것 같아, 또다시 반성해 본다. 막상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나는 내 아이에게 괜찮다는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마음이 방망이질 치고 내 눈이 너무 좁아졌을 때, 이 글을 읽고 하늘 한번 바라보며 이렇게 말해주고 싶은 소망을 가져본다. 그리고 힘든 운이 왔을 때, 아이를 가장 힘들게 만드는 대상이 제발 나는 아니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살아보니 넘어야 할 언덕이 포기한다고 없어지지 않더라.
오르기 힘들 때는 내려온다 하지 말고, 푹 쉬었다 힘이 생겼을 때 다시 올라가면 돼.

너의 애씀을 의심하지 말고, 그게 너의 최선이라 네가 믿어줘 봐.

다음 언덕에서는 조금 덜 두렵게, 운동화를 조일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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