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들을 그렇게 보면 안 돼.
그들에게 선을 명확히 그어주면 되는 건데
선긋기를 못해줘서 그래.
남편은 직장에서 20대 후반의 MZ 직원 때문에 꽤 오랫동안 힘들어했다. 누구의 잘못 이라기보다는 정말 안 맞는 둘이 만난 것 같다. 하필 나이대가 MZ다 보니 남편은 MZ 단어에 치를 떨 정도로 힘겨워했었다. 그런 남편이 나와의 대화에서 MZ들을 비난한 것이다.
나 : 오늘 회사에서 대표님이 인스타 광고도 진행해 보자 하셨는데 내가 너무 벅차서 그건 못하겠다고 말씀드렸쟈나.
남편: 유튜브도 하는데 인스타까지 해야 하는 거야?
나 : 어. 결국 다 연결되어 있어서, 인스타도 관리해줘야 해. 근데 예전 같았음 힘들어도 '네. 진행해 보겠습니다'라고 했을 텐데 이제는 못하겠어. 내가 감당할 선을 넘어서, 나중에 할 수 있을 때 하겠다고 했어.
남편 : 잘했네
나 : 근데 이래서 나이 많은 사람 직원으로 안 두려 하나 봐. 못한다고 선 그어 말하고. 아래 직원으로 관리하거나 일 시키기가 어렵쟈나. 내가 좀 어렸을 때였음 상상도 못 할 대답이야.
남편 : 아냐. 차라리 나아. MZ들은 10분만 시간이 넘어도 돈 달라 그러고, 업무 시키면 이걸 내가 왜 하냐 그러 쟈나.
그때 갑자기 나는 남편에게 반대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공격이다.
나 : 아니 그건 업무에 정확한 선을 안 그어줘서 그런 거고, 실제로 10분 추가 근무 시켰나 보지. 그런 걸 윗사람은 아무 잘못 없다고 하는 게 잘못된 생각 아냐?
남편 : 넌 정말 모든 내 의견에 공감은 없고, 비난만 하는구나.
순간 더 화가 나서 나는 내가 언제 그랬냐는 이야기로 남편을 추가 공격 하였다.
다들 알겠지만, 찔리는 게 있는 사람이 더 큰소리로 방어를 한다. 딱 그 모습으로 나는 내 방어를 한 것이다. 남편은 나의 공감을 바랄 뿐이었다 하고, 나는 공감이 1도 안되는데 어떻게 공감하냐며 큰소리쳤다. 거짓 공감도 괜찮다면 해주겠다며 협박까지 해버렸다. 금요일 저녁에 외식하러 가던 우리 차는, 유턴하여 집으로 왔다.
평소에는 불편한 마음이 다 사라질 때까지 시간을 끌며 말을 안 하고 냉전 시간을 버텼다. 공격은 내가 했지만 사과하기도 자존심 상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 걸기는 더 싫어서 화난 모드로 나를 포장하여 상황을 회피해 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남편이 일상의 마음으로 돌아오고, 그럼 나는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지나가곤 했다. 그런데 새삼 축복을 받은 것인지, 내가 내 마음에 대해 바라보기 시작했다. 분명 문제가 있는 것 같긴 한데.
격투 게임이 딱 떠오른다.
상대를 공격하면 내 에너지가 올라가고 상대가 죽으면 나는 추가 무기도 생기고 에너지가 더 올라간다. 자존감이 낮은 나는 남편의 인격을 비난하고 공격해서 내 자존감을 채워갔던 것이다. 그동안 남편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네가 틀리고 엄마가 옳다 라는 태도로 공격하고, 내 입지를 세워 갔던 것이다. 뒤늦게 상담을 받으며, 아이들을 공격하던 내 태도를 하나씩 인지하며 고쳐야 할 것은 바꾸려 해 보고, 당장 바뀌지 않는 것들은 차라리 아이들과 거리를 두었다. 내가 바뀔 수 있을 때까지 거리를 두며, 아이들에게 상처가 계속 생겨나지 않도록 시간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마치 유리그릇들이 너무 붙어있으면 깨지는 것처럼 관계 사이에 뽁뽁이를 끼워 넣는 시간이라 생각했다. 내가 뒤늦게 바뀌더라도 아이들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면, 내가 못 견딜 것 같아서. 나도 나를 보호하는 장치인 것이다.
그런데 뽁뽁이로 서로를 보호하는 대상에 그동안 남편은 없었다. 상담받은 날은 아이들과의 관계 상담만으로도 내 마음이 이리저리 피투성이가 되었기에, 남편을 공격하지 말자 라는 생각까지는 가지도 못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린 것일까. 어제 남편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다. 아이들에게 하듯이 똑같이 남편을 공격하고 비난해서 내 에너지를 충전시켜 왔다는 것을.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의 인격을 비난하고 마음껏 공격하면, 우리는 부적응자가 된다. 그런데 가족이라는 이유로 나를 버리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나는 집에서까지 피곤하게 신경 쓰며 대화해야 하냐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내세웠던 것이다. 직장에서 온갖 신경을 곤두세워 동료들의 입장을 공감하고, 윗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오면 참았던 것을 마치 반대로 보복이라도 하듯이 이성은 끄고 튀어나오는 대로 말했던 것이다.
창피해졌다.
남편을 공격하는 이유를 알고 보니, 정말 더 창피해졌다. 나는 내 논리가 맞고, 내 생각이 옳고 앞서가기 때문에 남편의 생각에 반대 의견을 낸 것이라고만 포장했었다. 그런데 그게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남편이 어떤 말을 하던지 내 자존감에 에너지가 부족하면 남편을 비난하고 눌러서 내가 좀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야 내가 꽤 능력 있는 사람이라 스스로 느꼈나 보다. 전형적으로 자존감이 텅텅 빈 사람이 하는 짓을 하고 살았다. 모든 가족이 자고 있는 지금.. 정말 어디로 사 라저 버리고 싶을 정도로 창피하고 창피하다. 내가 원했던 것은 결국 좀 괜찮은 사람이고 싶었던 것인데, 정말 최악으로 나를 만들었구나 싶다.
그동안 나는 남편을 때리는 폭력 와이프였던 것이다.
그리고 때리면서 내가 힘센 사람이라 느껴야 했던 것이다.
잘못된 행동은 사과를 하고, 잘못된 행동은 고쳐야 한다. 어제 거짓으로 대충 넘어가려 사과했던 내 대화까지도,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당신을 비난해서 내 못난 모습을 잘나 보이게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당신의 인격을 비난해서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그리고 그것은 나의 폭력이었다고 말이다.
그리 원망했던 아빠의 언어폭력을 나는 똑같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삼 이 부분이 나를 너무 무너지게 만들까 봐... 정신을 차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