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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Mar 30. 2023

글씨가 예술이 될 때

더 밝은 빛을 내기 위해 오늘도 레터링을 연습합니다


산책길에 만난 레터링

 오늘도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밖으로 나가본다. 걷기는 나의 루틴 중 하나. 하지만 디지털 레터링을 시작한 후로 조금은 더 특별한 산책을 하고 있다. 가급적 한적한 길보다는 시끌벅적하고 상가들이 많은 번화가를 선호하는데 통유리나 간판에 쓰인 다양한 글씨를 감상하며 걷는다는 것이 포인트이다. 카페나 상가를 지나면서 글자 디자인도 보고, 깔끔하게 붙어 있는 포스터 글씨도 유심히 보며 천천히 걸으면 이것이 나에게 작은 행복으로 다가온다. 가게 앞을 지날 때 갓 구운 따뜻한 빵냄새와 진한 커피 향은 덤. 아무튼 눈과 코가 즐거운 산책이다.

"어!"  외마디 소리와 함께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춰본다. 독특하거나 예쁜 디자인의 글씨와 마주했을 때, 사진을 찍어 나만의 레퍼런스를 만들어 놓는 습관이 어느새 생겼다. 새로운 길을 걸으며 독특한 글씨와의 만남은 나에게 있어 보물찾기 놀이와도 같다. 이리저리 각도를 바꾸어 사진을 찍고 또 찍어 본다. 괜스레 히죽히죽 웃으면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아마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이런 소소한 일상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 이유는, 이런 일상을 갖기까지 홀로 우울한 마음과 싸워야 했던 옛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허한 마음 그리고 레터링을 만나다

 첫 아이를 낳고 무엇이든 처음이던 그 시절, 몇 년 동안 매일이 같은 일과의 반복이었다.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육아의 무게도 달라지긴 했지만 ‘몇 년’이라는 시간은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일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도 여느 엄마들처럼 육아 우울증이 깊게 들어온 것이었다.

 ‘아, 잘 지내고 싶다. 진짜 잘 지내고 싶다.’

행복, 희망… 그 어떤 긍정의 단어를 넣은 거창한 말도 필요 없었다. 그냥 잘 지내고 싶다. ‘나 자신’을 찾고 ‘나도’ 살피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 자신은 돌보지 못하며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만 갔다.

그러다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하니 갑자기 내 시간이란 것이 생겼다.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과 돌봄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유치원에 있는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오롯이 나에게만 주어진 ‘내 시간’이라는 것이 생겼다. 그런데 막상 내 시간이 주어지니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이런! 한숨 섞인 욕이 바가지로 나온다.

“캘리그래피 다시 해보지 그래? 예전에 캘리 수업 재미있어했잖아. “

어느 날 걱정 어린 표정의 남편이 한 마디 건넸다.

맞다. 나는 예전에 취미 삼아 문화센터에서 캘리그래피를 배운 적이 있었다. 그 생각을 못했네! 고맙다는 말대신 왜 이제야 말해줬냐며 괜히 남편에게 장난스러운 말투로 대꾸를 했다.


‘코로나 상황이라 수업이 취소되었습니다’

이 말이 나에게...

 주변에 캘리그래피 수업을 찾아봤지만 코로나 상황이라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대답만 들어야 했다. 그렇다면 온라인으로 강의를 들어야 하나 싶어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인터넷 검색을 했다. 여기저기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어느 강의 플랫폼에서 진행하는 강의를 알아봤는데 내 시선을 완전히 잡아끌다 못해 동공 지진을 일으킨 수업을 알아버렸다. 그것은 바로 ‘디지털 영문 레터링’ 수업이었다. 생소했고 놀라웠고 신선했다. 이 수업을 들으면 내 에너지가 언제나 완전히 충전된 상태로 있을 것 같았고 우울모드 또한 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넘어야 할 허들이 하나 존재했다. 아까도 언급했듯 이 수업명은 ‘디지털’ 레터링이었고 나에겐 아이패드가 없었다.


더 밝은 빛을 내기 위해 쓰고 또 쓰고

 겨우겨우 남편을 졸라 아이패드를 구입한 날, 바로 수업 신청을 했고 즉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역시 온라인 수업은 빠르고 좋다. 피드백이 아쉽긴 하지만…) 알파벳부터 시작해서 문장을 쓰기까지 참 많이도 쓰고 지웠다. 다행스러운 것은 태블릿을 활용하는 것이기에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캘리그래피를 할 땐 온 집안이 신문지로 가득했었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연습을 하니 서툰 글씨가 점점 가다듬어진 곡선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마음의 변화도 예전과 달라졌는데 양육 스타일이 달라졌고 그러다 보니 아이와의 관계도 더 좋아졌다. 비로소 나에 모든 일상이 재미라는 이름으로 변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글씨를 쓰면 마음 챙김을 할 수 있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가 보다. 속도를 늦추고 자신의 손으로 아름다운 무언가를 집중하며 만드는 행위는 나 자신과 연결되었고, 그 연결은 긍정이라는 단어로 마음에 채워졌기 때문이리라.

  

  지금도 육아스트레스에 갇혀 무거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면? 분명한 것은 어쨌든 시간은 흘러간다는 것이고 그때의 선택에 의해 지금의 나는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만약 힘듦의 날들 속에서 나를 변화시켜 줄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있다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만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것은 분명히 존재할 테니 말이다. 아무쪼록 내가 디지털 레터링을 하면서 보낸 시간들의 이야기가 가끔은 힘들고 지친, 그리고 삶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한 당신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도 나는 레터링을 연습한다. 더 밝은 빛을 내는 내 모습을 만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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