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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완성

by 심상보

전시일이 결정되면 어떻게든 작품은 완성된다. 학생 작품의 '완성'은 하자 없는 완벽한 마무리가 목적은 아니다. 완성이라고 하기보다는 그 정도에서 관람자가 보기에 괜찮은 수준의 '마감'을 하는 것이다. 수업 기간 중에 이미 여러 번 콘셉트를 뒤집었고, 만들고 버리기를 여러 번 했다. 시간이 더 있다면 좀 더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되었겠지만 크게 의미는 없다. 작품을 만드는 시간은 길어야 3개월이다. 그동안 아이디어를 정리해서 형태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수업의 목적은 달성했다. 하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지금이 가장 숙련된 시기이고, 자기 작품에 대하여 가장 잘 이해하고 있을 때 이므로 조금 더 붙들고 있고 싶어 한다. 그래도 언제나 정해진 마감 시간이 있다. 그래서 마무리를 잘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먼저 '시간을 계산해 봐라!' 특별한 일은 생기지 않는다. 어차피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 한다면 마감시간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계산할 수 있다. 만약 혼자서 시간 안에 절대로 완성할 수 없다면 도움을 청하라고 한다. 주변에 친구, 후배들에게 도움을 청해서 그들의 시간을 빌리는 것이 필요한 시간을 버는 유일한 방법이다.

작품을 마무리하려고 하면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학생들은 아무리 잠을 줄이고 밥시간을 줄여도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 또 다른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 오래전에는 실기실에서 선후배들이 밤을 새우며 과제전을 준비하던 모습이 일상이었다. 나도 밤 12시에 실기실을 들러 학생들의 최후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 먹을 것도 사주고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모습은 보기 힘들다. 요즘은 동기들 간에도 존대를 하고 내 할 일 네 할 일에 선을 둔다. 선후배가 서로의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던 시절은 사라졌다. 그래서 내 이야기가 학생들에게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 같다. 그래도 이 수업 시간만큼은 그렇지 않길 바란다. 누구에게라도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혼자서는 불가능해도 함께하면 가능한 일도 있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 사실을 알기 바란다.

옷을 만드는 방법을 대학교 교과정에서 대충 배우기는 하지만 학생들에게 익숙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재봉틀을 사용하는 것이 서툰 학생들이 많다. 그래서 복잡한 부분을 봉제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특히 학생들의 작품은 일반적인 봉제 방법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재봉틀을 사용하기 어려운 소재도 많다. 그래서 나는 오버록은 치지 않아도 되고, 마무리는 손바느질로 해도 되고, 안 보이는 부분은 접착테이프로 붙여도 된다고 한다. 봉제에 시간을 빼앗겨 정작 마감 시간 안에 마무리가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패션쇼에 쇼타임이 정해지고 음악이 시작되면 무조건 모델이 나가야 한다. 그때까지 옷은 반드시 완성되어야 한다. 완성이 덜 되었어도 모델이 제시간에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학생들 전시도 마찬가지다. 시간 내에 완성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 이것을 배우면서 디자이너가 되어간다. 옷은 제 시즌에 출시되어야 하고 그래서 시간에 맞춰 기획이 완성되어야 한다. 디자이너는 자기가 만족할 때까지 마냥 작품을 붙잡고 있을 수 있는 예술가는 아니다. 그리고 시즌마다 반복적으로 성실하게 디자인을 짜내서 발표해야 하는 것이 패션 디자이너다. 학생들은 시간에 맞춰 완성을 하면서 디자이너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제때 완성하는 법'을 배운다.

마지막으로 전시를 하기 위해 디스플레이를 하다 보면 생각하지 못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옷이 마네킹에 안 맞는 흔한 경우도 있지만 전기가 안 들어오거나, 야외 전시에서 비가 오거나, 제작한 오브제의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빌려온 장비가 고장 나거나 기타 등등 완벽하게 준비하고 체크했는데도 막상 닥치면 전시 징크스처럼 문제가 발생한다. 그럴 때는 당장 가능한 방법으로 대처를 한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로 보완을 하거나 계획을 수정하고 일부분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상황이 어떻든, 주어진 것이 무엇이던,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디자이너다. 그러니 예상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멈출 수는 없다. 옷이 없이도 옷을 전시할 수 있어야 한다.

정신없는 현장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학생들과 작업실 구석에서 마지막을 붙잡고 있는 학생들 모두 정해진 시간에 모여 결과를 지켜볼 때 모두들 가슴 벅찬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그때 사제 지간은 가장 친하다. 나에게 매번 이 순간을 준 제자들이 한없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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