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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프레강 유람선에서 독일의 진심을 배우다

베를린 돔에서 이스트사이드 갤러리가 알려준 인간다움

by 은하수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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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돔의 전경과 내부 모습

베를린 여행의 마지막 날, 박물관도 가고 싶었지만 유람선을 타며 다크투어로 가라앉았던 마음을 회복하기로 했다. 다시 ‘운터 덴 린덴’ 거리로 갔다. 오전의 햇빛을 받아 베를린 돔은 더욱 눈부셨다. 로맨틱한 바로크식 성당은 유럽의 낭만 그 자체였다. 베를린 돔은 1747년에 건축을 시작해서 1905년에 완성된, 독일 제국의 영광과 신앙의 상징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으로 건물의 4분의 1이 무너졌고, 오랜 복원 과정을 거쳐 오늘의 모습을 되찾았다. 특이하게도 이곳은 카톨릭이 아닌 개신교 성당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작된 독일에서 신앙의 자유가 이렇게 거대한 건축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성전으로 들어갔다. 로마의 판테온 신전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천장 돔과 절제된 듯 섬세한 대리석 조각, 붉은 융단이 깔린 계단 위로 펼쳐진 황금빛 제단이 어우러져 바로크 건축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7,269개의 관에서 울려 퍼지는 웅장한 오르간 선율이 무척이나 성스러웠다. 잠시 예배당 의자에 앉아 천장 한 켠의 문구를 바라봤다.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20)

‘화목’이란 사전적으로 서로 뜻이 맞고 정다운 상태이다. 참혹한 전쟁과 분단, 상처의 대가를 치른 파란만장한 이 도시의 심장부에 새겨진 문장이 ‘신과 화목하는 것’이었다.


성서에서 신과 화목하려면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거룩은 곧 ‘신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즉 ‘사랑’이 화목에 이르는 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육체의 연약함과 정욕(마음속의 일어나는 여러 욕구) 때문에 타자는 고사하고 자기 자신을 포용하는 것도 버겁다. 또 사랑이란 자기중심성이란 자연스러운 본능을 거스르는 행위이기에 인간의 힘만으로는 실현이 이렵다.


때문에 성경은 말한다. 신과 먼저 화목하라고 그럴 때 비로서 인간에게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다고 말이다. 이때 화목을 이루는 첫 단계는 ‘참회’이다. 사랑을 향한 첫 단추인 참회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깊이 뉘우치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도시 곳곳에 산재한 참회의 흔적들은 베를린 시민들의 신앙고백이었다. 사랑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그들의 몸부림은 과거와 현재 사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이끌어 내기 위한 독일인들의 신명이었다.

베를린 돔 전망대에서 바라본 슈프레 강

베를린 돔의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수많은 계단을 올라갔다. 탁 트인 전경에 탄성이 나왔다. 슈프레강 위로는 새하얀 유람선이 떠 있고, 노란색 전철이 오버바움 다리를 건너며 채도를 높였다.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건물들이 어우러진 베를린의 전경에서 오묘한 감동이 전해졌다.

“우와, 가슴이 뻥 뚫려. 저기 유람선 좀 봐. 기차도 지나간다! 노란색이 예쁘네”

“베를린은 옛날하고 지금이 함께 사는 것 같아.”

베를린 돔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돔 밖으로 나왔더니 수백 대의 오토바이가 한가득 지나갔다. 각기 다른 색의 헬멧과 엔진음이 도로를 가득 채웠다. 취미를 위한 연대인가? 시위를 위한 퍼포먼스일까? 십여 분을 우두커니 바라봤다. 자유로운 그들의 질주에서 진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루스트 정원 아래쪽에 시장이 열렸다. 생활용품과 기념품은 물론 예술가들의 개성이 담긴 작품들도 보였다. 온유는 그래피티가 화려한 벙거지 모자를 샀고, 다솔이는 브란덴부르크문이 새겨진 크리스털 블록을 손에 쥐었다. 나는 핑크빛 패턴이 수 놓인 도자기 컵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결국 내려놓았다. ‘햇반부터 비워내자’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유람선을 탔다. 슈프레 강 위에서 보는 베를린은 전혀 다른 도시였다. 높거나 낮은, 특이한 건물이 번갈아 등장했다. 시선을 끌었던 것은 강둑의 콘크리트 벽에 새겨진 알록달록한 그래피티였다. 누군가의 꿈이 타이포그래피가 되어 황폐했던 도시의 심장을 생생하게 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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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둑에 그려진 그래피티


마지막으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 갔다. 베를린 장벽에는 100여 점의 벽화가 길게 이어졌다. 장벽은 더 이상 경계가 아니라 캔버스가 되어 ‘상처를 예술로 치유하는’ 인간의 창조성을 증명하고 있었다. 자유를 향해 장벽을 뚫고 나오는 동독의 자동차 트라반트를 지나 ‘형제의 키스’ 앞에 섰다. 두 남자의 키스 장면은 기괴했고 무척이나 선정적이었다. 사실 이 작품은 1979년의 실제 사진을 바탕으로 그려졌다. 소련 서기장 브레즈네프와 동독의 호네커가 입맞추는 장면인데 이런 식의 키스는 공산주의 지도자들만의 독특한 인사법이었다. 작품 아래에는 다음 문구가 적혀 있었다. “주여, 이 치명적인 사랑에서 저를 살려주소서.” 이들의 치명적인 사랑은 다행히 비극으로 끝이 났다. 얼마나 다행인가?


나치는 질문하지 않는 사람을 원했다. 다름을 금지했고, 책을 불태웠고, 언론을 통제했다. 그래서 독일은 반성했고 교육을 바꾸었다. 이제 교실 속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먼저 묻는다. “네 생각은 어때?”, “왜 그렇게 느꼈니?”, “다른 친구의 말에 동의해?” 또 역사 시간에는 “우리는 왜 침묵했을까”를 묻고 문학 시간에는 주인공보다 자신을 먼저 읽는다. 독일의 교육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이들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사유의 주체라고 말이다.


점점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한국의 공교육, 우리도 사랑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화해와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의 주입식 교육과 입시 경쟁은 과거에는 한국의 경제 성장을 견인했다. 하지만 강인공지능 시대를 앞둔 지금, 이 기계화되고 획일적인 교육은 큰 걸림돌이다. 명문대 입학만이 교육의 목적이 된 사회 분위기에 매몰된 아이들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더 많은 문제집을 풀고, 선행학습 진도를 나가야 해서 다르게 생각할 겨를이 없다.


로봇을 뛰어넘는 인간다움이 더욱 중요해질 세상에서, 이제 우리 아이들도 암기하고 정답만을 찾는 공부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생과 인간 본질, 세상의 이치에 대해 탐구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진짜 공부가 필요할 때이다. 개성을 바탕에 둔 창의적인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


한국의 교실에서도 정답이 아닌 질문이 살아나기를 소망한다.

“네 생각은 뭐니?”

“이 이야기가 너에게 어떤 울림을 주었니?”

“이 문제를 다르게 풀 수는 없을까?”


경쟁보다 존중이 있고, 암기보다 사유가 있고, 순응보다 질문이 있는 교육을 말이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우리 아이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믿는다.

“저는요, 더 사랑하기 위해 질문하고 열심히 공부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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