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도시에서 나눈 인간의 불완전함
프랑크푸르트는 파리와 암스테르담, 빈, 프라하를 잇는 유럽의 교차이자 새로운 삶을 꿈꾸는 이들이 유럽 사회로 들어서는 첫 관문이기도 하다. 금융 산업이 성장하면서 세계 각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이민자가 몰려들었고, 현재 프랑크푸르트 시민의 절반은 외국 배경을 지녔다.
우리에게 프랑크푸르트는 이번 여행의 시작점이자 끝점이었다. 밤 9시에 중앙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기 전, 남편은 짐짓 심각한 목소리로 당부했다.
“내가 앞서 갈 테니까, 당신은 뒤에서 아이들을 챙겨요. 얘들아, 주변은 돌아보지 말고 아빠만 따라와야 해. 역 주변은 치안이 안 좋으니까 빨리 벗어나는 게 최선이야.”
기찻간에서 내렸고, 벤치에는 흐릿한 눈빛으로 젊은 남자가 구부정하게 앉아 있었다. 순간, 하얀 가루를 입에 털어 넣었는데 매캐한 풀 냄새가 훅 풍겼다. ‘말로만 듣던, 대마초인가?’ 한국에서는 강력 범죄에 해당하는 마약이 여기서는 일상적인 행위라니, 놀라서 심장이 뛰었다.
독일은 2024년 4월부터 대마초를 합법화했다. 보수 성향의 뮌헨과 달리 다문화적이고 개방적인 이 도시의 길거리에서는 마약 냄새가 자주 풍겼다. 특히 중앙역 바로 옆에는 ‘바흐인피어텔’이라는 환락가가 있다. 오래전부터 마약 중독자, 성소수자, 노숙자, 매춘부들이 함께 살아온 곳이다. 정부는 이들을 범죄자로 몰아내기보다, ‘도움이 필요한 시민’으로 간주했고, 중독 상담소와 쉼터를 설치해 이곳을 유지해 왔다.
역을 빠져나왔다. 주변에는 정장을 입은 회사원과 무장한 경찰과 경찰차는 물론, 벽에 기대어 축 늘어진 노숙자까지 다양한 세계가 뒤엉켜 있었다. 화려하게 치장한 흑인 청년들이 몰려다니며 과장된 몸짓으로 거리 곳곳을 장악해서 우리 걸음은 더 빨라졌다.
“아빠, 여긴 왜 이리 무서워요? 지금까지 갔던 유럽 도시랑 너무 달라요.”
“쓰레기도 많고, 거리에 담배랑 이상한 냄새가 심하게 나요.”
“맞아. 엄마도 머리 아프고 목도 칼칼하네.”
담배와 마약에 유난히 관대한 유럽 사회가 의아했다. 아무리 개인의 권리가 중요해도 그렇지, 담배와 마약은 타인의 건강과 공간을 침해한다. 게다가 역 바로 옆에 환락가를 방치하다니. 또 다른 약자인 여행자와 아이들을 생각할 때, 이것은 진정 포용인가 방임인가? 첫날, 우린 깨끗하고 안전한 한국을 그리워하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역에서 세 블록 떨어진 유로 광장에 갔다. 유럽중앙은행 본사가 있는 유로 타워와 글로벌 IT기업들이 몰려 있었다. 화려한 마천루, 유리창에 비친 하늘, 고급 슈트 차림의 직장인들까지, 어제의 무법지대와는 전혀 다른 번영과 질서의 공간이 나타났다.
라인 강변 공원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자전거를 타고, 조깅하는 사람들, 잔디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가족과 연인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우리도 벤치에 앉아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펼쳤다. 사실 프랑크푸르트는 그 위대한 작가, 괴테의 고향이다. 괴테 하우스 방문을 위해 《파우스트》에 관한 대화를 시작했다.
평생 지식을 갈망하며 살아온 늙은 학자 파우스트는, 결국 진리를 얻지 못한 채 절망에 빠진다. 그를 두고 신과 악마는 내기를 벌인다. 이 때 악마는 인간이 기회만 주어진다면 결국 욕망의 노예가 될 것이라 확신했고, 신은 인간 안에 선함이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에게 이승에서는 모든 소원을 들어줄 테니 저승에서는 자신의 종이 될 것을 제안한다. 절망에 빠져있던 파우스트는 악마의 유혹을 받아들인다. 젊음을 되찾아 아름다운 소녀 그레첸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 사랑은 죄와 비극으로 이어지고 만다. 또 파우스트는 황제를 도와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그리스의 전설적인 미녀인 헬레네와 결혼도 한다.
노년에 그는 황제에게 하사받은 해안선에 간척 사업을 벌인다. 이를 반대하는 노부부를 죽이기도 하지만 그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는 이상 사회를 꿈꿨다. 파우스트는 쾌락이 아닌 공동체를 위한 삶에서 만족을 느끼며 생을 마감한다. 악마는 계약대로 그의 영혼을 거두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언제나 갈구하며 노력하는 자, 우리는 구원할 수 있노라.”라고 말하며 그의 영혼을 구원하며 끝이 난다. 이렇게 8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파우스트》는 대부분 탐욕과 죄악 즉 인간의 불완전함에 대한 통찰로 가득하다.
아이들이 먼저 질문했다.
“그럼 파우스트는 결국 악마를 이긴 거야?”
나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글쎄… 이겼다고 하기엔 너무 많은 죄를 지었지. 그렇다고 진 것도 아니야. 결국 구원받았잖아. 그런데 왜 신은 파우스트를 구원했을까?”
내 물음에 온유가 감자튀김을 재빠르게 먹던 손을 멈추고 말했다.
“그레첸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잖아. 나중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간척 사업도 했고.”
온유의 말에 다솔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였는데, 마지막에 착한 일 했다고 구원받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
아이들의 대화를 듣던 나는 조심스레 덧붙였다.
“아마도 괴테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이유는 우리가 완전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함 속에서도 더 선한 방향을 향해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말야.”
그 말을 듣고 남편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불완전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괴테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던 거네.”
그때 다솔이가 감자튀김을 집으며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제 햄버거보다 공동의 감자튀김부터 부지런히 먹는 것도 불완전해서 그런 거지, 뭐.”
인간은 완전함을 꿈꾸지만, 끝내 불완전한 존재로 남는다. 마치 어둠과 빛이 뒤섞인 이 도시처럼 말이다. 그러나 불완전함 속에서도 진심으로 사랑하고, 때로는 실수하고, 다시 노력하며 웃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우리는 삶을 잘 살아내고 있는 게 아닐까. 라인강은 은빛으로 반짝이며 완벽하진 않아도 괜찮다고 마치 우리를 위로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