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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탄생한 괴테의 방

괴테 하우스, 배움과 감성이 조화로운 인문학의 집

by 은하수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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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하우스 외관과 정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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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하우스의 아기자기한 정원과 사색의 벤치

햇반을 모두 먹어버린 덕분에 커리부어스트로 아침 식사가 바뀌었다. 소시지에 커리 소스를 뿌리고 따뜻한 카푸치노를 곁들인 이 단출한 메뉴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환상적인 궁합이었다.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괴테 하우스로 향했다. 약 15분쯤 걸었을까, 구시가지 골목 사이로 노란빛의 4층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골목에 바짝 붙은 외관은 생각보다 소박했지만, 내부 공간이 넓고 알찼다.


안으로 들어서자, 녹음이 짙은 아담한 정원이 펼쳐졌다. 보라와 진홍빛 수국이 나란히 피어 있었고, 베르테르와 로테를 닮은 동상, 물동이와 님프를 들고 있는 천사 조각상들이 보였다.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조용히 사색에 잠겼을 청년 괴테의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1층은 18세기 중엽의 식당과 부엌, 응접실을 원형 그대로 복원해 놓았다. 짙은 목재 바닥, 청동 손잡이가 달린 문, 검게 그을린 화덕 주위엔 당시 가족이 쓰던 조리기구와 그릇이 놓여 있었다. 2층에는 이 집에서 가장 화려한 공간, 붉은 방이 있었다. 손님을 맞이하거나 가족 파티를 하던 곳으로, 선명한 주홍빛 벽지와 금빛 문양, 중국 도자기와 비단 그림이 어우러져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옆의 음악실에는 괴테 가족이 즐겨 연주하던 하프와 피아노가 남아 있었고, 벽에는 숲속의 가족화가 있었다. 괴테 어머니의 방은 아기자기한 콘솔과 따뜻한 색감의 커튼으로 꾸며져서 그녀의 다정하고 지혜로운 기운이 여전히 느껴졌다.


3층에는 괴테가 가장 사랑했던 누이 코넬리아의 방과 손님 방이 있었다. 작지만 단정한 공간들을 지나 4층으로 갔다.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의 서재와 젊은 괴테의 작업실이 나란히 있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 속에는 질서정연하게 꽂힌 수많은 책들이 있었다. 넓은 탁자에 앉아 책을 읽고 토론하는 어린 괴테의 모습이 그려졌다. 괴테의 방은 밝고 창문이 넓었다. 자연광이 작은 서랍이 여러 개 있는 목조 책상 위로 부드럽게 쏟아졌다. 괴테의 손때가 묻은 책상이라니, 괴테의 깊은 사유처럼 나무결도 특별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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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방과 괴테가 실제로 사용한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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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아버지의 서재와 중국 풍으로 꾸민 붉은 방

괴테의 아버지는 법률가이자 부동산으로 자산을 모은 부유한 시민 계급이었다. 그는 아들을 귀족 못지않은 교양인으로 키우기 위해 라틴어, 철학, 지리, 미술, 음악, 천문학 등 다양한 과목을 가르칠 가정교사들을 붙였다. 단순한 암기보다 세상을 질서 있게 바라보는 힘을 가르쳤다. 반면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는 활달하고 따뜻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매일 밤 동화와 전설,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들의 상상력을 길렀다.


아버지의 엄격한 교양과 어머니의 자유로운 감성이 만나 괴테는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룬 인간으로 자라났다. 그 공존의 힘이훗날 예술과 과학, 문학을 아우르는 그의 천재성을 피워냈을 것이다. ‘괴테와의 대화’를 집필한 요한 페터 에커만은 사망한 괴테를 보고 “하나의 완전한 인간이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철저하게 공부한 괴테가 곧 파우스트였던 거네.” 남편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1774년, 스물다섯의 괴테는 이 방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완성했다. 그 작품은 출간과 동시에 유럽을 뒤흔들었다. 베르테르의 일기 같은 고백은 이성의 시대에 억눌린 감정을 솔직히 드러냈고, 편지체 형식은 독자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젊은이들은 그 안에서 자신의 불안과 열정을 발견했다. 베르테르의 파란 연미복과 노란 조끼가 유행이 될 만큼, 그는 낭만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작품의 비극적 결말은 청년들의 모방자살을 낳았고, 독일 일부 지역에서는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괴테의 친필


“이 책상에서 괴테가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대. 약혼자가 있었던 로테라는 여인을 죽을 만큼 사랑했나봐.”
다솔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게 사랑했으면 아무리 약혼자가 있어도 결혼 전에 고백이라도 하지 왜 죽었을까?”
“그게 1774년이니까 그렇지. 그땐 자기 감정보다 체면이다 도덕이 더 중요했거든. 베르테르는 그걸 무시하고 제 감정대로 사랑한 첫 남자였어. 말하자면 ‘첫 번째 모던보이’이랄까?”
온유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그 책이 왜 그렇게 인기가 많았어?”
“그때까지는 소설 속 주인공이 왕이나 신이었거든. 그런데 베르테르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어. 독일 청년들이 ‘저건 내 이야기야!’ 하며 공감했지. 너무 공감한 나머지…”
“자살했지?”

다솔이가 말을 이었다.
“응, 그게 ‘베르테르 효과’야. 너무 슬퍼서 따라 죽는 청년들이 생겨서 금서가 되기도 했대.”
“괴테도 놀랐겠다.”

온유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이어서 내가 말했다.
“많이 충격받았대. 그래서 나중에 결말을 바꿨대. ‘베르테르는 아픈 사람이다’라고, 따라 하지 말라고 말이야. 그리고 서문에 이렇게 썼지. ‘선한 영혼을 가진 분들이여, 베르테르와 같은 충동을 느낀다면 그의 슬픔에서 위안을 얻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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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작성한 공잘공즐 활동지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우린 그 책상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대를 앞서간 천재 작가를 기억하기 위해 기념품 가게에서 괴테의 두상이 새겨진 보라색 줄무늬 컵을 샀다.


뢰머 광장으로 갔다. 알록달록한 독일식 목조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장난감 같은 지붕과 창문들이 아기자기하면서도 고풍스러웠다. 아이들은 에버랜드의 홀랜드 마을을 떠올리며 웃었다. 광장 앞 식당에 앉아 소시지와 맥주, 음료를 시켰다. 며칠 후면, 이 삼삼한 소시지를 쉽게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무척 아쉬웠다.


나른하고도 평화로운 오후였다. 온유는 한산한 광장을 뛰어다녔고, 다솔이는 가만 있지 못하는 동생을 이끌고 기념품 가게를 구경다녔다.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드릴 선물을 고르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라인 강변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아, 이 로맨틱한 풍경을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내일 출국할 생각에 무척이나 헛헛했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우리 다음에 또 오자! 그땐 지금보다 소세지를 두 배로 먹자고.”

햇반으로 시작한 여행은 이렇게 소시지를 향한 향수로 끝이 났다. 하지만 괜찮다. 그 사이 우리는 책과 풍경, 그리고 웃음으로 훨씬 더 깊은 가족이 되었으니까, 이 모든 순간들이 빛나는 삶의 문장들로 남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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뢰머 광장에 줄지어 선 독일식 전통 목조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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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광장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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