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변했다. 올해 초등학생이 되는 온유는 능글능글 말이 안 통하는 장난꾸러기가 됐다. 대여섯 살까지 평생할 효도를 다 한다는 말이 맞았다. 귀여워서 수시로 날 설레게 했던 아들이 갑자기 버거워졌다. 이러다 왠수 된다던데, 아찔하다. 어느새 내 목소리 톤도 변했다. 여러 번 말해야 행동하는 아들 때문에 수시로 큰소리가 담장을 넘는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잘 분출하지 못해서일까?'라는 생각에 태권도 학원을 알아봤지만 2,3 개월 대기가 필요했다. 결국 하교 후, 나와 축구하며 에너지를 발산한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날에는 여지없이 제 누나를 괴롭힌다. 유독 이 나이에 즐기는 "똥유머"를 들먹이며 혼자 즐거워한다. 수시로 손발로 누나를 건든다. 하지 말라고 하면, 씨익 웃으며 더 해댄다. 딸의 앙칼진 목소리와 고집불통 아들덕분에 매일 집안이 시끄럽다.
딸도 변했다. 4학년이 되더니, 부쩍 친구를 찾는다. 소규모 대안학교를 다니다보니 동학년 여자친구가 없다. 언니와 여동생은 있지만 마음 통하는 동성 친구가 없으니 서러울 법도 하다. 엉엉 우는 딸이 안스러워 가슴이 미어졌다. 일반 학교로 전학을 가야하나 고심하며, 딸의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엄마끼리 친해야 아이도 친할 수 있으니, 옆집 엄마와 친근하게 톡으로 대화하며 약속 시간을 적극 잡아 함께 놀리고 있다. 또 중학년이 되더니 숙제 종류가 다양하고 양도 많아졌다. 본인도 깜빡 빠뜨리고 숙제를 못할 때가 많아졌다. 매번 잔소리 하기는 싫고.....결국 겨울 방학 찬스를 활용해서 딸과 3p바인더(초등보물찾기)를 배우며 쓰고 있다.
엄마는 역시 극한 직업이다. 아들 때문에 수시로 허벅지를 찌르고, 딸 때문에 시간을 쪼개쓰느라 바쁘다.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서 매일 퇴근이 늦은 남편에게 sos를 쳤다. 혼자서는 도무지 감당이 안 된다고, 일찍 들어와서 아들의 체력소진을 부탁했다. 쑥쑥 자라는 아이에게 맞춰, 내게도 변화가 필요해 보였다. 계속 소리 지르는 포지션은 서로를 힘들게 했다. '분노'를 피하려면 그것의 반대인 '유머'를 장착해야 했다. 화날 때,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유머를 섞어 말하기로 했다.
분명 화낼 타이밍인데, 웃긴 말과 표정을 짓는 나를 보면서 아이들은 배꼽잡고 웃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화를 누그러뜨리고 상황을 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육아의 기준을 낮췄다. "그럴수도 있지."를 되뇌었다. 생각을 바꿔보니, 꼭 그래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내가 정한 기준에 아이들이 따라오지 못하면 화가 치밀었을 뿐이었다. 저녁밥 먹기 전에 씻지 않아도, 빈 도시락통을 저녁 먹고 나서 내 놓아도 괜찮았다. 생각해보니 내가 정한 규칙이 많았다. 어쩌면 나 편하자고 아이들을 들볶은 건 아닐까 하는 반성도 들었다. 어쩌면 부모의 과업은 '견딤'에 있다. 알지만 쓰디쓴 인내는 멀리하고 싶다. 최대한 화내지 않고, 웃기면서, 아이들과 소통하기. 하지만 안 되는 건 단호하게 말하기. 오늘도 적당히 부족한 현역엄마는 아이들 때문에 울고 웃는다.
요즘에는 학교도 변했다. 학생들에게 규칙과 권위를 운운하던 시대는 지났다. 역시 '관계'와 '소통'이 중요하다. 아이들의 돌발 행동을 문제 행동이 아닌 낯선 행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과의 관계를 깨는 거친 말 대신 그들의 자존감과 소속감을 세워주는 친절한 말을 하는 유연한 교사가 돼야 한다. 이 어려운 연습을 집에서부터 해야 했다. 허벅지를 쿡쿡 찌르면서 연습해야 한다. 가면 없이, 편안한 나 그리고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라도 내 틀을 조금씩 깨부수셔야 했다. "여유있는 엄마, 유연한 선생님" 결국 여유있는 소통이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