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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반짝 Mar 26. 2023

워킹맘, 감히 행복할 용기를 내다

그럼에도 불구, 여유와 자유를 붙들다.

 

꽃은 피는데, 봄은 언제 오려나

미뤘던 안과 진료를 위해 큰 맘 먹고 한 시간 조퇴를 했다. 역시나 병원은 환자로 북적였다. 대기 한 시간이란다. 집에서 나를 오래 기다릴 아이가 걱정됐다. 어쩌나 고민하면서도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안압과 시력 검사를 했다. 갓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감기 때문에 태권도 학원을 결석했고, 퇴근 후엔 함께 병원에 갈 예정이었다. 며칠 전엔 놀다가 막대기에 눈이 찔렸다. 시신경은 괜찮다는 말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빨간 눈, 흐르는 콧물, 덥수룩한 머리는 엄마가 워킹맘인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진료를 포기하고 집으로 갔다. 아이 감기약을 타려 이비인후과에 갔다. 진료 대기 중에 가까운 미용실에 뛰어 가 이발 예약도 했다. 아이를 미용실에 맡겨놓고 그 틈에 또 나는 내과에 갔다. 직장에 제출할 결핵 무보균자 서류를 떼기 위해서였다. 급히 엑스레이를 찍고, 약국에서 아이 콧물과 기침약을 타서 다시 미용실로 갔다. 홀로  엄마를 기다릴 아이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숨가쁜 저녁을 보내고, 집에 왔다. 이런, 기침 가루약 더미가 보이지 않았다. 통째로 떨어져 길 가를 방황하고 있을 길쭉한 약더미가 무척이나 아쉬웠다. 병원, 약국은 이미 문을 닫아 다시 약을 타러 갈 순 없었다. 아쉬운 대로 콧물 완화 시럽을 먹이며, 아이가 잘 견디길 바랄 뿐이었다.     



 워킹맘. 일과 육아에 치여 정신없는, 아니 그렇게 살아야할 존재. 행복의 본질을 ‘여유와 자유’라고 상정할 때, 워킹맘과 행복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이질적인 말이다. 꿈꾸는 삶과도 한참 거리가 멀다. 본인과 가족 건강을 챙기며 사는 것도 버겁다. 인스턴트와 외식이 주를 이룬 식단에 운동과 자연식 집밥은 동떨어진 말이다. 행복하려면 여유 있게 소통해야 한다. 서로의 기념일을 챙기고 관심을 갖고 따뜻하게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다. 그런 안정감이 있어야 주변의 무시와 냉대를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법이다. 일상의 틈은 새롭고 관심 있는 분야를 배우며 성장하게 한다. 그렇게 자신을 유능하다고 느낄 때, 자신감과 활력이 생긴다. 여유와 함께 자유도 행복의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시간과 체력은 한정됐기에 의무와 강제성 있는 일은 사람을 지치기 만든다. 출·퇴근, 형식적 업무, 회의, 빨래, 설거지, 청소가 행복감을 갉아먹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즘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직장인이 많다. 그들이 그토록 SNS와 블랜딩에 공들이는 까닭도 바로 이 ‘자유’때문이리라.       



 최인철 교수의 《아주 보통의 행복》에는 행복감을 결정하는 네 가지 질문을 다음처럼 말했다.      

 

어제 나는 새로운 것을 배웠는가?

어제 나는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했는가?

어제 나는 믿을 만한 사람과 존중과 관심을 주고받았는가?

어제 나는 시간을 어떻게 쓸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는가?    


 행복이란 존중과 성장, 유능과 자유라는 내면의 욕구에 의해 결정된다. 사실 우린 ‘역세권에 사는지, 집 평수는 얼마인지, 어느 대학 나왔는지, 연봉은 얼마인지’를 주로 묻는 시대에 살다 하지만, 자신과 타인이 보다 더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질문부터 바꿔야 한다. 먹고사는 데 크게 지장이 없다면 이젠 ‘외롭지 않은지, 꿈이 있는지, 자유와 여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지’와 같은 질문이 일상의 소통거리가 돼야 옳다.     


 

 간절히 소망한다. 행복이 실종된 사회, 행복하기를 포기한 사회에서 ‘행복할 용기’를 내는 역행자가 되길 말이다. 두 아이는 아직 어리고, 매일 새벽 출근을 하는 워킹맘이지만 난 여전히 행복하고 싶다. 내가 먼저 행복한 나, 엄마 교사가 되기 위해 매일 용기를 내기로 했다. 우선 내 감정과 생각에 더욱 충실하고, 매일 직장을 사명지로 생각하도록 마인드셋 했다. 건강한 몸과 마음, 단단한 아이와 가족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쪼개 소소한 여유와 자유를 누렸다. 행복은 거창한 무엇이 아닌, 일상에 의한 일상을 위한 행복이니까. 더욱 진지하게 일상의 속살로 들어가려 몸부림쳤다.     

한가로운 저녁 산책길


 아무리 바빠도 내일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정시 퇴근을 했다.(다 못한 일은 일요일에 하더라도, 평일에 무리하지 않고 컨디션을 유지했다) 퇴근 직전, 차 안에서 온앤오프를 계속 되뇌이며 머릿속을 꽉 채운 업무 생각을 잠재웠다. 매순간 마음을 다잡고 일곱 가지 루틴을 실천했다. 미라클 모닝, 해독주스, 걷기와 요가, 30분 글쓰기와 독서, SNS(인스타, 블로그, 브런치) 관리, 아이와 단둘 데이트. 이 루틴은 일상 속 내 행복감 결정하는 지표가 됐다. 나름의 여유와 자유를 누린다는 만족감은 다른 영역에도 생기를 줬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남편의 내조 덕분에 난 아침 7시에 출근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계속 읽고 쓰는 삶, 최대한 나답게 사는 사십 분을 가까스로 확보했기에 지금 이 글도 세상에 있다.



카페에서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진지한 내면의 속살에 가닿고 나면 여전히 난 따스하고 선한 빛, 은하수반짝으로 변했다. 퇴근 후엔 혼자 혹은 아이와 조깅을 했다. 공원과 뒷산에서 홀로 오디오 북을 들으며, 혹은 아이와 가슴으로 소통하며 살아있는 기쁨을 누렸다. 금요일 밤에는 차박 캠핑을 위해 숲과 바다로 떠났다. 현재 소소한 여유와 자유를 누렸기에 행복한 워킹맘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한 번 뿐인 인생, 워킹맘 동지들이여! 어렵지만 중요한, ‘행복한 오늘’ 향해 함께 나아가지 않겠는가? 행복할 용기와 끈기, 건강한 루틴이 있다면, 우리도 행복할 수 있다. 아참, 그래서 안과는 어떻게 됐느냐고? 결국, 못 갔다. 하지만 직감했다. 염증이 운동과 무지개 해독주스 때문에 기를 못 펴고 시나브로 사라졌다는 걸. 오예, 대기 시간 벌었다.


  행복이란 오로지

  일상을 위한, 일상에 의한, 일상의 행복이다.

  행복에는 사교육도 신비로운 묘약도 없다.

  행복은 그저 일상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사소함 속으로

  더 깊이, 온전히 들어가는 것이 곧 행복이다.


  행복하게 살기 원한다면서

  하루를 대충 산다는 건

  인류를 위한다면서

  옆자리 김 대리를 막 대하는 것처럼 모순이다.

                       -최인철, 《아주 보통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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