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
백문이 불여일견. 평소에도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는 거다. 아무래도 한 번 겪는 것이 훨씬 빠를테고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나는 이 말에서 백문의 촘촘함이 더 와닿는다.
즉 100문:1경험이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100문은 1경험이 되기 위해 얼마나 면밀해야할까?
예를 들어 엄마와 어린 아이가 있다. 날카로운 것을 만지고 장난치는 아이를 보며 엄마는 '그러다 다칠 수도 있어.', '조심해야 해', '다른 걸로 놀까?' 여러 말들로 말려본다. 그러다 아이는 실수로 손을 날카롭게 베인다. 끝내 울음을 터트리면서 아이는 으앙 하고 울어버린다. 다음엔 조심해야지. 하고 다짐을 한다. 이 날카로운 물건은 나를 다치게 할 수도 있지만 이 물건은 남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조심성을 키우게 된다.
UX를 공부하면서 가장 중요한 마음은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한 데이터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집계된 데이터에 기반해 UX를 설계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데이터 밖의 공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불편을 겪지 않도록 설계해야하므로 만들고 나서도 계속해 수정한다.
1. 내가 직접 사용해 보고 (내부 테스트)
2. 사용자 경험을 유추해 보고
3. 테스트하고
4. 수정하고
를 반복해야하기 때문이다. 데이터 밖의 경험에 공감이 가지 않으면 놓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험과 공감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에 있어서 박차를 가하게 에너지를 만들어주고, 또 다른 재미난 발상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일 외적으로 일상을 보낼 때도 더 나아질 방법에 생각하곤 한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건다. 길을 헤매는 사람들이다.
여기는 어떻게 가야하는지,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답답한 마음에 낯선이에게 말을 건 거다. 길을 헤매고 있을 때의 그 낯설고 갑갑한 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내게 길을 물어본 것에 대해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낀다. 시험을 보러 갈 때,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 새로운 목적지로 가고 있는 그들에게 작은 지도가 된다는 것이 기쁘다. 나는 그럴 때마다 '지도에 나와 있어요.'하고 지나칠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지도를 왜 그들은 잘 사용할 수 없었을까. 그 지도는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 정말 그 지도가 그들이 접근하기 쉬운 방법으로 보여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길을 묻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장년층으로 내 부모님 세대부터 어르신이었다. 1990년엔 고령인구(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5.1%에 불과했지만 2025년엔 20.3%에 달한다. 그리고 2050년, 그 인구가 40.1%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앞으로 시니어 그룹을 위한 서비스가 더 탄탄해져야 하는데 그 서비스의 부재가 참 크다고 느낀다. 앞으로 지금 우리의 부모 세대, 베이비붐 세대들은 노년층을 이룰 것이고 우리도 나이가 들고 있다.
같은 목적지를 향해가고 있는 우리 삶에 정말 필요한 건 무엇일까? 나는 이 고민들을 촘촘하게 모아 가치있는 일을 하고싶다. 그래서 그게 작은 일견이 되어보고싶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면 그 일견은 백문을 모두 포함해 대표할 수 있을만큼 큰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 수록 우린 일견을 위해 백문에 더 신중해야하고 많은 걸 경험해야한다. 그래서 또 우리는 그 일견을 백문으로 정리하고 그 백문들은 또 다른 일견이 된다. 우리는 계속 깨우치고 나아간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而 不如一見)이요, 백견이 불여일각(百見而 不如一覺)이며, 백각이 불여일행(百覺而 不如一行)이라.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낫고, 백번 보는 것보다 한번 깨우침이 나으며, 백번 깨우침보다 한번 행함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