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노래는 나를 춤추게 해

라이킷 49 댓글 19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수니엘 Oct 18. 2023

김밥은 사랑이지

두 가지 김밥 예찬

코로나 3년에 어렵사리 다시 시작된 현장 체험학습은 아이들끼리 점심을 가서 사 먹거나 체험학습 장소에서 제공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라고 하기엔 도시락을 직접 싸주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편하고 좋은 마음이 컸다고 급 고백한다. 내 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그동안 도시락을 안 싸도 됐었는데, 이번 지난주 큰 아이의 가을 소풍은 도시락을 싸 가게 되었다.

중학교 올라와 처음으로 엄마표 도시락을 준비하려는 순간, 엄마가 해주는 김밥이 제일 맛있다며 초등학교 소풍 때 도시락통을 싹싹 비우고 왔던 아들이 생각났다. 그래. 메뉴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김밥으로 정해졌다.

김밥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고, 맛은 또 얼마나 맛나는지, 여러 가지 재료의 맛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비빔밥과도 같이 단짠고소 조화롭기 그지없다. 김과 밥의 질감과 여러 가지 씹는 맛 또한 일품이다. 큰 아들이 이런 나를 닮았는지 김밥을 너무나 좋아하고 하나씩 하나씩 집어 먹으면 게 눈 감추듯 빈 접시만 덩그러니 남는다. 그런 효자(?) 아들 덕분에 어렸을 때도 도시락의 꽃인 캐릭터 모양으로 이것저것 꾸민 먹기도 아까운 예쁜 소품 같은 도시락을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보통은 김밥에 시금치가 들어가는 반면, 우리 집은 예전부터 시금치를 넣지 않고 오이를 넣어 김밥을 만다. 오이는 호불호가 확실히 있기에 김밥집에 가면 시금치를 넣은 김밥이 주를 이룬다. 김밥 마니아인 나에게는 시금치를 넣은 김밥도 사랑이다. 한 번은 시금치 데치는 게 귀찮아 냉장고에 있던 오이를 길게 등분해서 살짝 절이고 한번 물에 휘리릭 씻어 다른 재료들과 김밥을 말았는데 자칫 퍽퍽하고 목이 메려고 할 때, 오이가 아삭아삭 상큼하게 씹히면서 촉촉하게 어우러져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나는 오이김밥을 싸기 시작했다.

김밥의 핵심은 모든 재료의 간이 적절해야 한다. 간을 안 하게 되면 밥이 둘러싸기 때문에 싱거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고슬고슬하게 한 밥은 단촛물과 깨, 참기름을 넣어 섞어준 후 한 김 식힌다. 여기서 단촛물은 소금과 약간의 설탕, 그리고 식초를 섞어 만든 물이다. 식초를 안 넣어도 무방하지만, 초밥 만들 때처럼 식초를 넣으면 시큼한 맛은 거의 나지 않고 감칠맛이 올라온다.

그리고 햄, 맛살, 단무지, 계란, 당근, 우엉, 어묵, 오이까지 썰고 볶고 간을 하면 모든 준비는 끝. 김의 거칠거칠한 면에 밥을 얇고 고르게 펴서 기다랗게 줄 맞춰 누워있는 재료들을 하나씩 쌓아 김밥을 돌돌 말아주면 완성.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꿀맛이다. 알록달록 고운 빛깔의 김밥이 자꾸만 입 속에서 사라진다.

나는 좋아하는 김밥이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 더 자두의 <김밥> - 노래다. 이젠 올드해진 원조 곡 말고 자두가 혼자 부른 2012 김밥, 리메이크 버전이다. 우쿨렐레 연주도 들어가 있어 한층 경쾌하고 신이 난다.

운전을 할 때는 물론, 음식을 만들 때, 설거지할 때, 빨래를 널고 개킬 때 등등 대부분 집안일을 할 때면 노래와 함께 한다. 장르불문 안 가리고 좋아하지만 특히 이런 서정적인 멜로디와 유쾌한 가사가 만나 예쁜 나만의 노동요가 된다. 깜깜한 새벽에 일어났음에도 힘든 줄 모르고 기분이 한껏 업이 되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도 하고, 어깨를 들썩이기도, 발을 까딱하기도 하며 김밥 노래를 들으며 김밥을 말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진정 나에게 힘이 되는 노동요인 셈이다.

가사를 흥얼거리며 천천히 음미해 본다. 김밥 가사 안에 가족의 만남부터 삶의 태도가 들어있다. 식성도 성격도 다른 남남이 만나 남이 님이 되고 토끼 같은 자식들도 같은 배에서 나왔음에도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그렇지만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며 같이 손잡고 가는 것이 가족이고 삶이니까.

밥알이 김에 달라붙고 각각 재료들이 똘똘 뭉쳐 김밥이 되는 것처럼 서로 다른 사람들이 똘똘 뭉쳐 늘 붙어사는 하나의 가족이 되는 것이다. 그 밑바탕엔 사랑하는 마음이리라.

사랑한다는 말을 김밥에 비유한 이 노래가 참 좋다.

나에게 김밥과 김밥은 사랑이다.

몇십 년 동안 서로 달리 살아온 우리
달라도 한참 달라 너무 피곤해~
-
그래도 우린 하나 통한 게 있어 김밥
김밥을 좋아하잖아~
언제나 김과 밥은 붙어 산다고
너무나 부러워했지
잘 말아줘 잘 눌러줘
밥알이 김에 달라 붙는 것처럼
너에게 붙어 있을래~
-
널 사랑해 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