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파이프 PIPE K Sep 22. 2022

한때 나에게도 날개가 있었을 때

The fun is over, and so is yours.

-


아무튼 나 없는 빈방에서 나오는 그 시간이 지금 내 영혼이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충혈된 빗방울이 창문에 눈알처럼 매달려 빈방을 바라본다 창문은 이승에 잠시 놓인 시간이지만 이승에 영원히 없는 공간이다 말하자면 내 안의 인류(人類)들은 그곳을 지나다녔다


-김경주, '부재중' 中


(C) 2022. PIPE K All rights reserved.


-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생각한다. 가을의 말들. 용서를 구하기 위한 문장들. 웃음의 시간 뒤에 껍데기처럼 남은 책임. 자주 울며 쉽게 흔들리는 것들.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은 두 어디로 갔나, 젠가 저 멀리 담장을 넘어 사라진 공처럼 원래 없었던 것이 되어 버 시절들. 바닥이라는 말이 얼마나 낮은 것인가를 생각해 본 적 없으며 이별을 청춘의 증상이라고 믿고 싶었던 날들.


  너에게 기댈 수 있는 이름이 있었을 때 나에게는 원망할 이름조차 없었어, 슬픔은 겨우 이만큼의 무게로 나를 끌어내리고 있었다. 문을 닫고 나서면 자꾸 돌아가야 할 집이 생으며 아주 잠시 머물다가 떠나가는 생애 속에서도 우리는 수없이 많은 약속을 했고 또 그것들을 주 잊어버렸지. 창에 걸친 풍경에서 척이나 덕스런 씨.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안색 변하는 구름 아래에서 나는 여러 개의 이름과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


김경주. 2006.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랜덤하우스코리아.

Background Image : (C) 2022. PIPE K

매거진의 이전글 Reflections on Recollection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