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처진 느림보를 생각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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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으로 떨어지든 왕좌에 오르든, 홀로 여행하는 자가 가장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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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wn to Gehenna or up to the throne, He travels the fastest who travels alone.' 지옥으로 떨어지든 왕좌에 오르든, 홀로 여행하는 자가 가장 빠르다. 영화 <1917>에서 인용되기도 했던 이 구절은 러디어드 키플링의 시, "The Winners"의 한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백인의 의무'를 주장하며 제국주의를 옹호하기도 했던 키플링은 여러 작품을 통해 백인 우월주의의 시각을 내비치고는 했는데, "The Winners"에서 드러나는 결과주의적인 태도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시의 전반적인 내용은 어떤 목표에 빠르게 도달하고자 하는 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한 것으로, 도입부에서 '도덕이란 무엇인가?'라는 직접적인 문제의식을 제기한 시의 화자는 이 땅의 약탈품들을 독차지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도움 받은 일을 저버리더라도 반드시 혼자 길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화자는 '말을 타는 사람들', 즉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백인들에게 동조를 구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정당성을 호소하며, '꼭 필요할 때 있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타산적인 태도를 견지하기도 한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의 의식 속에 각인되어 있는 도덕관념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고, 타인과 함께하는 삶에 근본적인 의문점을 남긴다. 즉, 화자가 표방하는 삶의 방식은 성공을 향한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타자를 수단적인 존재로 치부하는 화자의 태도가 반드시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타인은 무언가를 성취하는 데에 필요한 전략적인 존재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다. 인생의 어떤 방면을 놓고 보더라도 성공에 있어 누군가의 도움은 필수불가결하다. 작게는 팀 단위로, 크게는 기업 단위로 협력해야 하는 직업 분야에서의 성공은 말할 것도 없고 원만한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도,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일에도 타인의 존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물며 연인 관계에서도 제삼자가 끼치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처럼 삶에서의 크고 작은 성취들은 전부 수많은 존재와의 관계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성취의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타인과의 관계를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는 화자의 주장은 매우 현실주의적이며, 설득력이 있다. 물론,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에는 그만큼의 어려움이 따르기도 한다. 가령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 그리고 감정의 부산물들이 오히려 일의 효율과 속도를 저하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데에는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보다 빨리 왕좌에 오르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들과의 개인적인 관계와 스스로의 진보 사이에서 적절한 합의점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홀로 여행하는 자가 가장 빠르다'라는 명제는 얼마간 진리의 성질을 띠고 있기도 하다. 주체적인 성공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타인의 도움을 양분 삼아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인간관계의 맹점을 냉정하게 가려내고 인연의 맺고 끊음을 확실하게 주도할 수 있어야 하며, 주변 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택할 수 있는 자기 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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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여행하는 자’는 스스로를 위험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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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The Winners"의 화자가 추구하는 '홀로 여행하는 자'의 태도에는 어딘지 모를 찜찜한 구석들이 있다. 가장 먼저 외로운 여행자의 에너지가 지나치게 내부로 향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One may fall but he falls by himself-- Falls by himself with himself to blame.' (그는 추락할 수 있지만 홀로 추락한다. 그의 추락을 탓할 사람은 그 자신뿐이다.) 라는 행에서 드러나듯, 혼자서 행동하는 사람은 자신의 성공에 대한 보상을 독차지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 과정에서 오는 모든 위험을 오롯이 혼자 부담해야 한다. 누구나 겪게 되는 좌절의 순간과 그 아픔을 아무와도 공유할 수 없다는 말은 꽤나 가혹하게 들리기도 하는데, 화자는 이를 성공을 위해 응당 감수해야 할 불편함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혼자이기를 택한 사람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은, 단순히 동료가 부재하는 데에서 오는 아쉬움과는 그 무게가 다르다. 타인과의 갈등, 그리고 갈등의 해소에서 오는 에너지의 양방향적 교환이 없는 존재는 고립되기 마련이고, 삶의 에너지가 자기 외부로 발산되지 못하면서 스스로를 소진시키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의사결정과 그 실행에 있어 사회적 교류가 결여된 사람들은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혔을 때 자신의 내부로부터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습관이 있는데, 우리가 삶에서 직면하는 문제들은 대부분 외부와의 소통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내면으로만 시선을 두는 사고방식은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감정을 갉아먹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홀로 여행하는 자가 도달하게 될 지점이 반드시 '왕좌' (Throne)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Down to Gehenna or up to the throne, He travels the fastest who travels alone.' (지옥으로 떨어지든 왕좌에 오르든, 홀로 여행하는 자가 가장 빠르다.) 라는 행에서 '지옥'과 '왕좌'라는 시어의 병치는 단독으로 행동하는 여행자가 얼마나 빠르게 목표점에 다다를 수 있는지를 부각시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주변의 존재가 부재하는 삶이 내포하는 커다란 위험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무언가를 성취하는 과정에서는 다양한 인간관계가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로부터 갈등과 충돌을 외면하는 삶의 방식은, 주변을 돌아볼 수 없게 만들며 방향 감각을 상실시킬 수 있다. 마치 경주마처럼 주변시가 차단된 채 직선적이고 전진적인 움직임만을 지속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의 신체는 감각이 일으키는 착각에 취약해서, 스스로의 판단을 맹신할 때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다. 예컨대 '비행착각' 혹은 '공간정위상실'은 비행 시 조종사가 외부로부터 기준이 될 만한 표식을 식별하지 못하여 기체의 물리적인 움직임과 본인이 인식하는 공간감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현상을 뜻하며, '링반데룽(Ringwanderung)', 즉 '환상방황'은 등산자가 악천후, 저조도에 의한 시야 확보 실패, 육체적 피로 등으로 인해 방향 감각을 잃고 원을 그리며 같은 지점을 맴도는 조난 상황을 뜻한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삶은 상대적인 것이어서, 외부의 존재들을 인식하고 이를 기반으로 삶의 방향을 끊임없이 재정립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스스로의 감각이 일으키는 착각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끝없는 '지옥(Gehenna)'으로 추락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The Winners"에서 무엇보다도 눈에 밟히는 부분은 바로 'But a fool to wait for the laggard behind.' (그러나 뒤처진 느림보를 기다리는 사람은 바보다.) 라는 대목이다. 시의 나머지 부분이 홀로 여행하는 자의 내부적인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면 이 행에서 화자는 시선을 외부로 전환하며 타인의 일에 관여하는 사람들에 대한 직접적인 가치판단을 내린다. 화자의 논지는 명확하다. 눈앞의 이익과 효율을 고려했을 때 '뒤처진 느림보' (The laggard behind)를 기다린다는 것은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고, 개인의 성취에 있어 이들의 존재가 걸림돌이 된다면 동행자로서의 인연을 정리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존재로서, 어느 집단에나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느림보'를 냉담하게 배제해 버릴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고로 사회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은 집단 내에서 뒤처진 존재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딜레마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딜레마를 마주했을 때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든 뒤처진 자들을 포용하려 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들을 돌아보고 나아가 그들에게 서슴없이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는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타인을 돕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들이 결코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논리성은 인간들의 공존 방식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지 않으며, 그 간극에는 인간 공동체가 공유하는 알 수 없는 '어떤 이유'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뒤처진 자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그 '어떤 이유'의 비합리적이면서도 강력한 힘을 간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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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오랜 본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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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inners"에서 키플링이 제시하는 독단적인 삶의 방식에도 나름대로 합당한 면모는 분명히 있다. 혼자만의 힘으로 무언가를 결정하고 실행하여 목표에 도달해야 하는 순간들은 인생에서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이고, 그러한 경험들은 매우 개인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결단력이 필요한 때에는 '홀로 여행하는 자'의 마음가짐이 빛을 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존재를 개인적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하는 태도는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인간은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 완전히 혼자라고 느끼는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복잡한 유대 관계는 우리의 삶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기반이 된다. 따라서 타인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삶에 조화롭게 들어차 있지 않은 사람들은 지속 가능한 성취를 만들어 낼 수 없고, 좌절의 순간마다 자신을 비난하면서 스스로를 고갈시키게 된다. 건강한 삶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자 사회적 존재가 생존하는 방식이며 성공에 이르는 가장 풍요로운 길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뒤처진 느림보'를 생각하는 일은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베푸는 무조건적인 선의이고,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사회적 자아의 오랜 본능이기도 하다. 우리는 집단 내에서 언제든 뒤처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안고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야말로 사람들을 집단으로서 끈끈하게 응집시키는 요인일 것이다. 키플링의 시에서 화자는 이러한 가능성을 배제한 채 오로지 왕좌에 오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타인과 함께 하지 않는 여행자는 스스로를 다치게 할 것이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 속으로 스스로를 몰아넣게 될 것이다.
즉,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면서 동시에 필연적인 생존의 조건이고, 우리가 평생에 걸쳐 풀어야 할 인생의 숙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한 과업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근원적인 결론에 도달하고 나면, 우리는 곧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거대한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 타인과 관계하는 삶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인생의 길에는 왕도가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도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그토록 도달하고자 하는 '왕좌'도 어쩌면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르다. 그래서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미약한 인간 존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더욱 방대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일정한 방향조차 정해져 있지 않은 삶에서 우리는 어떤 가치들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까. 그리고 그 과정에 필요한 삶의 방법론들은 어떤 것들일까. '왜' 함께 살아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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