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르타주와 문학의 모호한 경계에서 바라본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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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농장 (Animal Farm, 1945)"과 "1984 (Nineteen Eighty-Four, 1949)"의 저자로 우리에게 친숙한 조지 오웰은 말년에 발표한 상기 두 편의 소설이 전후(戰後) 세계의 현실에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탓에 흔히 디스토피아를 다루었던 '소설가'로 기억되고는 하지만, 그가 20세기 영국 최고의 문호로 거듭날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도 르포르타주 작가로서의 위업이 한몫했다. 특히 "위건 부두로 가는 길 (The Road to Wigan Pier, 1937)"이나 "카탈로니아 찬가 (Homage to Catalonia, 1938)" 등의 대작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 1933)"은 오웰의 초기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사료이자 당대 유럽 사회의 실상을 생생히 재현해 놓은 수기로서, '가난'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는 '르포르타주'의 품격을 보여 준다.
조지 오웰은 이튼 스쿨을 졸업하고 버마의 제국 경찰에 자원하여 1922년부터 1927년까지 경찰 간부로 근무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병폐를 여실히 목격하고 사표를 낸 뒤 런던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이모가 있던 파리로 건너가 버마에서의 경험을 담은 "버마 시절 (Burmese Days, 1934)"을 집필한다. 그가 프랑스의 좌파 성향 잡지에 투고하며 언론인으로서의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하지만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수입이 없었던 그는 건강이 악화되며 병원 신세를 지게 되는데, 설상가상으로 가지고 있던 재산마저 전부 도난당하며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된다. 이에 호텔에서 접시닦이 일을 하며 간신히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그는 2년여의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쫓기듯 런던으로 건너가 1932년 고등학교 교사 직을 맡기 전까지 노숙 생활을 자처한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은 그가 3~4년 간 파리와 런던을 떠돌며 구빈원을 전전하고 투옥되기도 하면서 부랑자의 삶을 겪었던 바로 이 시기의 경험들을 담아낸 표류기다.
오웰은 작품의 초반부에서 이렇게 밝힌다. "내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게 가난이었는데 이 빈민촌에서 그 가난이라는 것과 난생 처음 마주했던 것이다. 시끄럽고 더럽고 기이한 삶들로 이루어진 이 빈민촌은 나에게 가난에 대한 통찰을 하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나의 의식의 기반이 되었다." 그는 고향에 있는 부모와 친구들의 금전적 지원 등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을 외면하고 거리를 나돌며 몸소 가난을 체험한다. 파리에서 그는 방세를 지불하지 못해 쫓겨나 더 싼 여관을 찾아 헤매거나 가지고 있던 옷들을 저당 잡힌 뒤 배고픔에 시달리기도 하고, 호텔의 접시닦이로 취직하여 강도 높은 노동에 파묻혀 살기도 한다. 그리고 런던으로 건너간 후로는 수용소에서 하룻밤 거처와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부랑자들과 함께 생활하기에 이른다. 가난의 비참한 면모를 매우 구체적이고도 사실적으로 그려 낸 이 작품은, 작가가 직접 현실 속에 뛰어들어 그 내부적 진실을 깊이 있게 밝히는 르포르타주로서의 면모가 가감없이 드러나 있다. 1930년대 대공황의 여파로 극심해졌던 프랑스와 영국의 경기 침체 속에서 오웰이 목도했던 빈곤의 실체는, 당시의 암울한 사회상을 조망하는 역사적 거울이 된다.
프랑스 빈민촌의 여관에서 생활하던 오웰은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던 영어 개인 교습이 끊기자 극심한 자금난을 맞게 되고, 러시아 군인 출신의 '보리스'라는 친구를 찾아가 생계를 유지할 방도를 함께 모색한다. 이 대목에서 그가 묘사하는 허기의 증상은 이러하다. "사람이 굶주림이 길어지면 기력은 물론 머릿속도 텅 빈 것처럼 되어 버린다. 마치 지독한 독감을 앓고 난 후 같았다. 혹시 해파리로 변해 버린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다. 몸에 있는 피를 모두 뽑아 버리고 대신 미지근한 맹물로 채워넣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와 같은 구체적인 경험의 서술은 굶주림으로부터 비롯되는 빈민들의 히스테릭한 사고방식과 그 속에서 들끓는 좀도둑의 유행 양상 등 통계적 수치로는 드러나지 않는 빈민가의 끔찍한 사회적 실상을 현실로 소환시키며 당시 하층민들의 무기력한 생활에 대한 단편적인 이미지를 한층 입체적으로 만든다. 오웰은 보리스와 함께 공산주의 비밀결사를 가장한 사기꾼들에게 돈을 빼앗기는 등 온갖 수모를 겪다가 콩코드 광장에 있는 'X 호텔'에 접시닦이로 취직한다.
그는 하루에 많게는 열일곱 시간씩을 노동하며 접시닦이의 삶을 이어 나가는데, 이 생활에 대해 그가 풀어 놓는 수많은 에피소드는 당시 프랑스 하층 노동자들의 전반적인 삶을 짐작케 한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호텔 주방 내의 위계 질서다. 그의 분석에 의하면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고급 호텔의 주방은 약 백여 명의 종업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사이의 위계 질서는 마치 군대의 계급 체계를 연상케 한다. 호텔에는 주방의 총 책임자이자 최고 권력자인 지배인을 포함하여 급사장, 주방장, 인사계장, 요리사, 웨이터, 세탁과 바느질을 하는 여자들, 견습 웨이터, 접시닦이, 방청소를 하는 하녀들, 그리고 잡역부의 순으로 총 11개의 직급이 존재하며 이들 사이에는 인격 모독적인 욕설이 당연시되는 수직적인 계급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즉, 단순 노동직인 접시닦이를 비롯한 하위의 인력들은 자신의 힘으로 직업적, 경제적 성취를 이루어 낼 수 없는 존재였으며 높은 실직율 때문에 항상 고용 불안정에 시달려야만 했다.
오웰의 접시닦이 생활에 대한 고찰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호텔 주방의 위생을 지적하며 그곳에서 유일하게 깨끗한 음식은 사장과 종업원들의 몫뿐이라고 밝히는 한편, 파리 호텔의 사장들과 그 수하의 직원들이 어떻게 손님들로부터 돈을 갈취하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한다. 사회의 최하위층에 위치한 이들이 겪는 경제적 고충과 자본가들의 호화로운 생활이 대비되며 생겨나는 정경은 작품 속의 생동감 넘치는 진술이 더해지며 더욱 극적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또한 오웰은 당시 유럽에서 보편적으로 공유되었던 인종과 국적에 대한 편견적인 담화들, 가령 "유태인의 말보다는 차라리 뱀의 말을 믿어라. 그리스인보다는 차라리 유태인을 믿어라. 그러나 아르메니아인은 절대 믿지 말라." 라던가 "우두머리가 영국사람을 호통을 쳐가며 부려먹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하던데, 한 달간 계약하지 않겠소?" 등의 대사들을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배치하며 당대 사회의 다양한 통념들을 담아내기도 했다. 특정한 현실에 속해 있으면서도 이방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그는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의 고된 접시닦이 생활을 더는 유지할 수 없다고 느낀 오웰은 고향의 친구에게 연락하여 일자리를 구해 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고, 얼마 후 한 정신박약아를 돌보는 일을 구해 놓았다는 답신을 받은 그는 접시닦이 일을 그만두고 서둘러 파리를 떠나 런던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는 런던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 고용주가 아이와 함께 해외로 잠시 떠나는 바람에 한 달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별 수 없이 다시 거리로 내몰린다. 열악하긴 하나 거처가 있었던 파리에서와 달리 런던에서의 생활은 더욱 불안정했다. 정해진 직업이 없었던 오웰은 남은 돈으로 여러 명이 함께 투숙하는 간이 숙소를 떠돌다가 결국 다른 부랑자들의 틈바구니에서 무료 급식소나 하룻밤의 숙소와 식사를 제공해 주는 수용소, 즉 '스파이크(Spike)'를 찾아 헤맨다. 호텔 접시닦이의 삶이 궁지 끝에 몰린 노동자의 삶이었다면 런던에서의 삶은 일자리도 거처도 없는 노숙자의 삶이었던 것이다.
부랑 생활에 대해 무지했던 오웰은 주변의 다양한 조언을 들으며 점차 자신의 삶에 적응해 나가는데, 그가 작품에 옮겨 놓은 노숙 생활의 면면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홍차를 주는 스파이크, 코코아를 주는 스파이크, 그리고 스킬리 스파이크가 있지. (…) 스킬리를 주는 스파이크가 항상 제일 못한 곳이지." "부랑인들 간에는 수용소와 수용소 사이를 걸어서 하루에 도달할 수 있도록 정해진 코스가 있었다. 그들은 내게 바넷에서 세인트알반스 수용소로 이어지는 코스가 가장 좋다고 추천해 주었다." "한밤중에 옆자리 사나이가 동성애 행위를 걸어왔다. (…) 부랑인들 사이에는 동성애가 특별한 일도 아니라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스파이크 내에서 관리인들이 부랑자들을 대하는 방식이라던가 수용소 내부의 상세한 규칙들, 스파이크 간의 특징과 장단점 등이 작품 내에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는데, 이는 영국에서의 빈곤이 뿌리 깊은 사회의 병폐 중 하나이며 그 역사가 결코 짧지 않음을 시사한다. 세계 1차 대전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닥쳐 온 1920년대 말과 1930년대 초의 대공황은 영국에 유례 없는 경기 침체를 낳았으며, 특정 지역은 실업률이 70퍼센트에 달하기도 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영국 전역을 떠돌던 노숙인들의 삶에 직접 뛰어들었던 오웰의 경험은 주목받지 못하는 약자들의 삶에 목소리를 덧입히고 그들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낱낱이 가려낸다.
그의 접시닦이에 대한 고찰은 흥미롭다. "나는 접시닦이는 현대세계에 잔존하는 노예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그들이 불쌍해서 동정하려는 게 아니다. 사실 그들은 막노동꾼들보다는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시장에서 매매되던 노예만큼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호텔의 접시닦이들이 '쓸모 없는 일'에 혹사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접시닦이 일은 별다른 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고, 사고를 불가능하게 하는 단순 반복 노동은 그들을 그러한 생활의 굴레에 가두어 버린다. 그리고 그는 호텔의 존재 가치는 단순한 사치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의 노동이 무의미하게 허비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지적한다. 특권층의 민중에 대한 두려움이 무익하고 권위적인 일을 끊임없이 재생산해내던 사회 속에서 오웰은 권력 구조의 본질과 그 메커니즘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걸인들에 대한 그의 태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부랑자들이 보통의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가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도 불합리하다"고 말한다. 부랑자들이 끊임없이 노숙 생활로 내몰리는 이유는 결코 그들이 나태하거나 무능력한 존재들이어서가 아니라, 같은 수용소에는 한 달에 한 번만 머물 수 있게 하는 식의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정책들이 그들의 자립을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이러한 비판과 함께 수용소가 자체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방법, 가령 경작을 통해 부랑자들이 자신들의 식자재를 직접 생산하는 식의 현실적인 대안들도 함께 제시한다.
그러나 오웰은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바로 '휴머니즘' 속에 있다. 작품의 말미에서 그가 수용소 안에서 담배를 빌려 주었던 한 스코틀랜드인으로부터 담배를 돌려받는 장면이 등장한다. "내가 자네에게 담배 한 대를 신세졌잖아. (…) 오늘 아침 나올 때 반장이 담배통을 돌려주었거든. 호의는 당연히 갚아야지. 안 그래?" 이 에피소드야말로 작품의 핵심을 관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들을 가난 속으로 밀어넣는 기형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은 에릭 아서 블레어가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첫 번째 저서로, 르포르타주 문학의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오웰은 삶의 어두운 이면들을 낮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열린 귀로 들으면서 깊은 통찰을 얻고 이를 담백한 언어로 옮겨 적으며 철저한 '경험적 글쓰기'를 실천한 작가인데, 그가 동시대의 독자뿐만 아니라 동료 문인들로부터 남다른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현실에 대한 감각과 행동력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를 기반으로 한 오웰의 저널리즘은 제국주의의 식민 정책, 범지구적 경기 침체, 그리고 스페인 내전을 비롯한 2차 세계 대전의 참상 등 개인이 경험하기에는 무거운 주제들을 다루며 많은 이들에게 단순한 '읽기' 이상의 경험을 제시했다. 작가 본인이 피부로 느낀 현실들을 텍스트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은 충분히 가치 있는 작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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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ground Image : George Orwell. 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 Penguin Classics.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