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을 쏟는 삶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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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제가 쓴 글에 대해 따뜻하게 반응해 주고, 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제가 전에 했던 말들을 기억해 주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세상은 참 유연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저는 세상이 그다지 따뜻한 곳도, 그렇다고 차가운 곳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게 뻣뻣하지는 않은 곳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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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中庸). 지나치거나 모자라지도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고 알맞은 상태. 사전에서는 중용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중용'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반드시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아야 할 삶의 기준으로서 인간 문명의 역사상 가장 보편적인 성질을 띠고 있는 도덕론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에서는 중용을 아레테(Arete), 즉 탁월함을 실천하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설명하고, 사서삼경의 하나인 자사의 <중용>에서는 원대한 뜻을 지키면서도 인간관계를 현명하게 유지하는 판단력과 지혜가 바로 '중용'이라고 이야기한다. 대학에서 만난 같은 과 동기인 '콩나물빵'은, 나에게 중용을 지키며 사는 삶의 가치를 알려 준 친구이다. 그는 어떤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실행함에 있어서도,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킴에 있어서도 자신의 몫을 훌륭하게 수행해 내며 결코 그 중심을 잃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주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가져다 주는 그의 이런 면모들은 어떤 사고와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나의 세 번째 인터뷰 대상자, 콩나물빵과의 대화 속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K 콩나물빵씨가 생각하기에, '나 이것만은 자신 있다' 하는 점이 있을까요?
콩나물빵 음, 누구를 만나든 저는 그 사람의 장점을 찾을 수 있어요. 아무리 들여다봐도 예쁜 구석이 없는 사람이라도, 노력하면 그런 구석들을 다 찾을 수 있거든요. 그렇게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찾고 나면, 누구도 그렇게 나쁘게만은 보이지 않아요.
K 듣고 보니 정말 멋진 삶의 태도인 것 같네요. 모든 사람에게서 장점을 찾으려는 태도가 삶에서 도움이 되었던 적이 있나요?
콩나물빵 어떤 특정한 순간에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인생을 살아가는 관점 자체를 바꿔 주는 것 같아요. 예컨대, 어떤 사람을 만나도 오픈 마인드를 가지게 돼요.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해도 그러려니, 하게 되고 너무 미워하지 않게 된다는 거죠. 사람이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뀐다고 할까요? 이옥섭 감독님도 비슷한 말을 했는데요, 그분이 말하기를 자기는 누군가가 너무 미우면 그냥 사랑해버린다고 해요. 저도 그런 태도를 가지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누군가의 특정한 부분이 싫으면 거기에 서사를 부여해 보는 거에요. 그러면, 그 사람을 미워할 구석까지 사랑할 수 있게 돼요. 누군가를 싫어하는 건 너무 소모적인 일이잖아요.
사람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많은 이들이 겸연쩍다는 듯이 웃으며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대답을 해 온다. 아마도 그들의 쓴웃음 속에는 스스로를 남들과 비교하며 깎아내리기만 했을 뿐,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서 오는 서글픈 마음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콩나물빵의 답변에는 매우 특별한 데가 있었다. 누구에게서나 사랑할 만한 구석을 찾아낼 수 있다는 그의 태도는, 개인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세상 전체를 조금 더 살 만한 공간으로 만든다. 이옥섭 감독이 <서울체크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야기했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그가 미국 여행을 하던 때, 버스 안에서 독한 냄새를 풍기며 매니큐어를 칠하는 어떤 여자 때문에 짜증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문득 그 여자를 자신의 영화 속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자 갑자기 너무 사랑스러운 인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우리가 서로에게 연민을 가지면 모든 사람들이 다 예뻐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누군가가 너무 미우면, 그 사람을 사랑해 버리자. 너무나도 멋진 말이 아닌가.
K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는 자신의 모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콩나물빵 많은 사람들이 제가 고분고분한 성격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떤 일에도 절대 나서지 않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그다지 고분고분하지도 않고, 필요할 때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에 주저하지도 않아요.
K 그렇다면 나를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콩나물빵 인간에게는 세 가지의 페르소나가 있대요. 하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 다른 하나는 '나를 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은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 하지만 그 세 가지의 자아 중에서, 뭐가 진짜인지는 모르잖아요? 그래서 딱히 그 오해들을 바로잡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K 콩나물빵 씨가 가지고 있는 각각의 페르소나는 어떤 모습인가요?
콩나물빵 '내가 생각하는 나'는, 선이 있는 사람. 그런데 남들한테는 그 선을 잘 보여 주지 않으려고 해요. 그리고 실패할 확률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경험과 사례를 기반으로 행동하는 사람. 신중하다기보다는 겁이 많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나를 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는, 확실한 사람? 제 인생을 제가 잘 설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들을 들어요. 그리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는 아마도, '조용한 사람'일 것 같아요.
인간 공동체에 대하여 조금은 박애주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콩나물빵이 자기 자신을 대하는 시선은 어떨까. 그는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세 가지의 페르소나'라는 흥미로운 개념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나'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관점을 단순히 내부와 외부라는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일인칭과 주관적인 삼인칭, 그리고 객관적인 삼인칭이라는 세분화된 기준으로 구분하는 그의 가설은, 타인에 대한 정보의 불균형이 같은 사람을 매우 다르게도 보이도록 한다는 점을 반증한다. 콩나물빵은 이 모든 자아들이 전부 자신을 이루고 있는 정체성이며 이 중에서 '진짜'와 '가짜'를 가려낼 수는 없기 때문에 자신의 실제 성격이 어떻든, 타인이 판단하는 '나' 또한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의 '나'를 발견하고 이를 인정하려는 그의 마음가짐은 타인으로부터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다. 자신이 판단하는 자기 자신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며, 나를 모르는 사람이 판단하는 나의 모습이 반드시 진실과 다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K 본인을 움직이는 동력은 뭐죠?
콩나물빵 사람들인 것 같아요. 제가 듣고 있는 수업이 하나 있는데, 그 수업에서는 매주 사람들이 온라인 공간에 자신의 글을 올리고, 거기에 다른 사람들이 댓글을 남겨요. 처음에는 이런 과정들을 그냥 수업의 일부로만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사람들이 제가 쓴 글에 대해 따뜻하게 반응해 주고, 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제가 전에 했던 말들을 기억해 주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세상은 참 유연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저는 세상이 그다지 따뜻한 곳도, 그렇다고 차가운 곳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게 뻣뻣하지는 않은 곳 같아요.
K 일상에서 힘을 얻는 자신만의 또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콩나물빵 앞으로의 일정에 기대가 될 만한 사건들을 심어 놓는 거요. 일상은 지겨운 거지만, 그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즐거움들을 생각하면서 버티는 거에요. 최근에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많이 만들고 있는데, 자소서를 쓰면서 보내는 일상은 지루하지만 그때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생각하면 행복해져요. 사람은 단기적인 기대감을 많이 만들어야 하는 것 같아요. 사소한 것도 괜찮고요. 삶을 자꾸 기대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근 들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점점 더 좋아진다는 그에게, 자신을 움직이는 동력이 무엇인지 물었다. 스스로와 타인에게 열린 사고를 유지하려는 그는 세상에 대해서도 치우치지 않은 관점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사람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부터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대답하면서 그가 세상에 대해 남긴 단상은 자사 중용론의 '성(誠)'이라는 미덕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지만 또 그다지 뻣뻣하지도 않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에게 삶의 동력이 되어 줄 수 있는 방법은, 서로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타인의 말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 보고, 타인의 마음에 조금 더 다가가려는 용기를 가져 보고, 대가 없이 따뜻함을 베풀겠다는 마음을 먹어 보는 일들. 아무런 정성도 쏟지 않으면서 타인으로부터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세상을 유연한 곳으로 만드는 힘은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보여 주는 정성과 진심에서 나온다. 내면으로부터 동력을 얻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삶에 꾸준히 정성을 쏟고 가까운 미래에 기대할 만한 일들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게 된다.
K 본인을 오랫동안 괴롭혔던 고민이 있을까요?
콩나물빵 사람들의 고민이라는 건, 어린 시절의 고민들이 그 형태를 조금 바꾼 것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어떤 집단에 속해 있든 제가 중간 이상의 위치에 있는지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게 어떤 집단이든, 그리고 어떤 영역이든. 저는 어떤 집단에서 상위의 그룹에 속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그 집단을 나와 버려요. 그러다 보니 끊임없이 남들과 저를 비교하게 됩니다.
K 그렇게까지 상위의 그룹에 속하고자 하는 이유는 뭔가요?
콩나물빵 저는 중간 이상은 해야, 제가 투자한 시간들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냥 내면적인 욕구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K 남들과 스스로를 많이 비교하는 편인가요?
콩나물빵 그렇다고 생각해요. 안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잖아요. 그래서 죽을 때까지 스스로를 남들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태어난 거죠. 그래서 그게 나쁘다고 느껴도, 멈출 수가 없나 봐요. 그런데 중요한 점은, 사람 눈에는 잘된 사람들만 보인다는 거에요. 그런 사람들만 보면 자연히 세상에는 잘된 사람들만 있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걸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용'을 실천하는 삶의 방식은 결코 중간자의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자사의 도덕론에서는 중용이란 갈등을 회피하는 기회주의가 아니라 자신의 믿음에 따라 최선의 선택들을 만들어 내는 적극적인 행동주의라는 점이 강조된다. 콩나물빵이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과정을 통해 내면적인 발전을 도모하려는 삶의 자세도 자신이 세운 최선의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주의로 볼 수 있다. 물론 '최선의 기준'을 세우는 과정에서 도에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일 테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준에 다다르기 위해 노력하는 주체적인 행동력이다. 우리는 어쨌든 삶을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최선의 기준'을 향한 방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강인한 정신력을 가져야 한다. 그는 그러한 정신력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남들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자신과 남을 비교하는 일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폭력성을 경계하기 위해서 세상에는 잘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즉, '나'의 상대적인 존재성을 수긍하면서도 절대적인 내면의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K 이 글을 읽게 될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콩나물빵 인용하고 싶은 네 가지의 문장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천 개의 파랑>이라는 소설에 나온 구절인데요, '삼차원의 우리가 일차원의 말에 상처받지 말자'. 두 번째는 거트루드 스타인의 '해답'이라는 시 전문입니다. '해답은 없다. 앞으로도 해답은 없을 것이고, 지금까지도 해답은 없었다. 이것이 인생의 유일한 해답이다.' 세 번째는 <일간 이슬아 수필집>에 나오는 문장, '우리, 환상이라는 걸 잘 다뤄 보자.' 마지막은 후지이 카제라는 싱어송라이터의 '타비지'라는 노래 속 가사입니다. '이젠 괜찮아. 여행길은 계속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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