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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문 단상

도쿄올림픽 야구

중앙일보(210924)

by 생각의 변화

24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봉중근과 김태균의 인터뷰이다.


이들이 말하는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야구의 실패 원인을 정리해보면,


1. 스트라이크 존의 차이

2. 구속 경쟁에서 뒤처짐

3. 인프라와 한국형 프로그램의 부재이다.


개인적으로 두 선수 모두 선수로서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들의 의견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스트라이크 존을 핑계 삼는 것은 초딩때 지고 나서 심판 탓 하는 구차한 변명처럼 들린다. 만약 이번 야구팀만 올림픽 존이 더 넓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그건 코칭 스태프의 직무유기이다.

국내 경기에서도 심판들마다 존이 조금씩 다르지만 타자와 투수들은 그 때마다 적응해야 한다. 그건 미국이나 일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결국 적응에 실패했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의 다른 표현일 뿐. 공부를 못한다는 거나 시험 문제를 많이 틀린다는 거나 그 말이 그 말인 것 처럼.


구속 경쟁에서 뒤쳐졌다는 것에 동의한다. 원인이 뭘까? 체격 핑계를 댈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와 체격이 비슷한, 아니 오히려 더 작은 일본의 170센티미터 신장의 투수들도 시속 150킬로미터가 넘는 공을 거침없이 던지기 때문이다. 공을 던지는 메카닉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다.

내 생각에 이건 한국 프로야구 팀이 10개 팀으로 늘어나고 경기수가 늘어난데 비해서 제대로 된 투수들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혹 던질 수 있다하더라도 자주 등판해서 피로도가 쌓이면 자연스레 스피드는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리고 원래 빠른 공을 던지던 투수들도 등판이 잦아지면 체력 안배를 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두 해 불 같은 강속구를 뿌리다가 사라지는 유망주가 얼마나 많은가. 결국 돈 좀 더 벌려는 KBO의 무리수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이미 만든 구단을 줄일 수 없다면 경기수라도 줄여야 한다.

봉중근은 부족한 인프라 탓을 하는데, 그렇다면 부족한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경기수를 늘리는 이유는 뭘까? 봉중근이 말하는 인프라가 유소년 팀을 의미하는 거라면, 그건 한국 야구가 철저한 엘리트 위주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승자는 모든 걸 갖지만(연봉, 주전, 해설자, 군면제) 그렇지 못한 자는 아무 것도 없다. 입시 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승자독식이다.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것은 아이를 벼랑 끝에 세우는 것과 같다. 그러니 지원자가 적을 수 밖에.

미래에 대한 아무 대책없이 유소년 팀을 늘리는 건 불가능하니 방법은 하나다. 한국 프로야구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어설픈 분석을 하기 보다는 누군가 나서서 경기수를 줄이라고 얘기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야구만의 프로그램이 없다는 봉중근의 넋두리는 "우리 능력으로는 미국과 일본 야구를 (그리고 도미니카 공화국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라고 자인하는 것과 같다. 프로그램이란 게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이길 수 있는 팀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또는 그 프로그램이 곧 한국형 프로그램인 것이지 누군가가 '짠' 하고 제시하는 비방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발야구, 수비야구, 좌-우-언더로 이어지는 변화무쌍한 불펜 운용. 이게 2008년 올림픽 금메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4강, 프리미어12 우승을 일궈냈던, SK의 불펜야구와 두산의 발야구가 자웅을 겨루던 2000년대의 KBO라는 야구 생태계가 만들어낸 한국만의 팀 컬러였다. 불행히도 지금은 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게 없다. 한국 프로야구 구단이 늘어나고 있는 어느 시점에 김성근 감독이 한국야구가 점점 퇴보하고 있다고 한 지적은 깊이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김성근 감독의 방식도 144경기 시스템에서는 무력했다). 장점은 공기와 같아서 있을 때는 모르지만 사라지면 절실해지는 법이다.


다시 한 번,


<백인천 프로젝트>에 나왔던 얘기인 것 같은데, 한 리그의 타자들의 수준은 그 리그의 투수력에 비례한다. SK의 벌떼야구와 삼성의 철벽불펜을 뚫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면서 타자들과 한국야구는 성장했다. 훌륭한 투수들이 많아질 수록 타자들은 그 투수들을 상대하면서 실력이 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훌륭한 투수들을 많이 보유한 리그일 수록 좋은 타자들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투수 인프라가 적다면 거기에 맞는 경기수를 유지해야 한다. 아무런 변화없이 현재 리그 시스템을 유지한다면 우린 다음 올림픽에서도(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허망하게 무너지는 한국팀을 보면서 상대팀을 응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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