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전문가
전환
꽃길만 걸으라는 말은 덕담이 아닌 저주다. 꽃길이어서가 아니라 꽃길뿐이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꽃길만을 걸으면서 배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갈등과 충돌 없이 사랑과 인류애로 충만한 의학 드라마가 판타지에 불과한 건 그 때문이다. 갈등과 충돌이 없는 천국에는 이야기가 없는 법. 시청률은 별개의 문제다.
인생은 야구 경기와 같아서 위기와 기회가 1인 2역을 맡은 배우처럼 옷만 바꿔입고 번갈아 가면서 등장한다. 둘은 전혀 다른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비슷한 점도 있는데 끝나지 않을 거란 낙관 또는 불안과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위기든 기회든 결국 지나간다. 중요한 건 그 시간 동안 돌파건 도전이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악은 연속 쓰리 볼 후에 다음 공을 느긋하게 기다리는 타자처럼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걸 꽃길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겐 화상은 일종의 전환점이었다. 더 이상 응급의학과 의사로 살지 못하겠다는 ‘위기’가 있었고 선배의 제안과 함께 ‘기회’도 생겼기 때문이다. 화상외과의가 되면서 전문 분야가 없다는 아쉬움과 당직에 대한 불안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내 경우는 화상이 아닌 화상외과의라는 직업이 그런 거였지만 실제로 화상은 환자들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전 남친이 고용한 사람에게 염산 테러를 당한 여자 환자는 열 번도 넘는 수술을 받았지만 원래 얼굴로 돌아오진 못했다. 홧김에 친구와 함께 자기 집 현관문 앞에 장난으로 불을 지른 소년은 부모님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중환자실에서 깨어났다. 그는 한동안 자기 자신이 저지른 일인이라는 사실조차도 기억하지 못했다. 내연녀를 살해하고 암매장한 뒤 차에서 분신을 한 남자는 끝내 매장 위치를 형사에게 말하지 않았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홧김에 불을 질러 두 돌이 갓 넘은 아기와 부인에게 심각한 화상을 입힌 남자의 오른쪽 팔뚝에는 푸른 잉크로 새겨진 ‘忍(참을 인)’이 선명했다. 셋 중에서 가장 가벼운 화상을 입은 본인은 석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경찰서와 병원을 들락날락 했다.
그들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전혀 모른다. 어쩌면 오랜만에 외래에 들른 환자의 농담처럼 한동안 화상병원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으면서 그냥 그렇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연하게 추측할 수 있는 건 이들 모두가 화상을 입기 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거라는 것이다.
십 년 전 여름이었을 것이다. 계절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와 마주치게 된 장소가 집 근처의 냉면집이었기 때문이다. 앞 테이블에 앉아 있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면을 몇 번 무신경하게 건져 먹더니 젓가락을 내려 놓고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남자친구를 빤히 쳐다 보고 있다.
“왜?” 남자가 먹는 걸 멈추고 고개를 들고 말했다.
“맛있어?” 여자가 진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 난 그런데.” 남자가 말끝을 흐렸다.
“이게 무슨 맛이야?”
대답하기 곤란해하는 남자의 표정이 등 뒤에서도 훤히 보이는 듯했다.
화상병원에 취직해서 바뀐 게 많지만 그중에 하나는 냉면을 먹는 습관이다. 병원 바로 맞은편에 유명한 함흥냉면집이 있어서 여름이 되면 꽤 자주 거기서 점심을 먹었다. 그러다가 함흥냉면에서 평양냉면으로 입맛이 바뀌게 되고 집 근처에 단골집이 생겼다. 스무 살의 나였더라도 차갑고 밍밍한 고깃국물에 툭툭 끊기는 메밀면을 말아준 이런 음식을 돈 주고 사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여자가 까다롭다기보다는 남자친구의 입맛이 좀 올드한 것이리라. 얼마 후에 주문한 냉면과 제육이 나왔다. 여름이어서이기도 하고 원래도 손님이 바글바글한 곳이어서 우리 가족은 식사를 마치자마자 일어났다. 계산대 앞에서 지갑을 꺼냈다.
“계산 끝났어요. 저쪽 분이 하셨어요.”
직원이 안쪽에 있는 테이블 쪽으로 손을 뻗어 가리켰다. 빨간 두건을 쓰고 몸에 딱 붙는 형광 사이클복 차림의 남자가 의자에 일어나더니 절을 꾸벅하고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과장님, 접니다.”
처음에는 살이 많이 빠져서 못 알아봤지만 턱에서 목으로 내려간 화상 흉터를 보고 나서야 누군지 기억이 났다.
남쪽의 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이십 대 초반에 무작정 상경했다. 섬이 너무 답답해서 서울로 탈출하긴 했지만 번듯한 직장을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아무 자격증 없이 고졸의 학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편의점 알바나 서빙 같은 시급이 낮은 비정규직뿐. 여기저기 주점 알바를 전전하다가 그는 결국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자살을 결심했다. 반지하방에서 조개탄을 피워놓고 잠들었지만 다음 날 살아서 깨어났고, 며칠 후에 다시 더 많이 피우고 잠들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세 번째는 방법을 바꿔 부탄가스를 잔뜩 뿌린 상태에서 잠들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세 번째 자살에 실패한 후에 갑자기 머릿속에 번쩍 떠오른 생각은 ‘살자’였다. 죽으려고 세 번이나 시도했는데도 살아났으면 그건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는 어떤 계시였다. 바닥에 놓여있던 담뱃값에서 담배를 한 대 빼서 물었다. 그리고 라이터를 켰다. 쾅.
“요즘 어떻게 지내요?” 내가 물었다.
그가 땀이 난 손바닥을 허벅지에 슥슥 문지르더니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비늘같은 그물무늬가 선명한 피부이식 자국이 선명한 손등이 보였다. 당시에 그는 화상 체표면적 70퍼센트 화상을 입었고 열 번이 넘는 수술을 받고 석 달 뒤에 퇴원했다.
“여기서 일합니다.”
‘베스트 디텍티브’라는 상호 밑에 탐정사무소라는 설명이 작게 찍힌 명함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