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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Jan 17. 2021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
_금정산성막걸리

술에서 길을 찾다_酒道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



출처: 원더풀마인드


실연을 당해서 세상이 무너진 듯이 슬퍼하는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말이 무엇일까.


보통 이렇게들 말한다. 

"너무 슬퍼하지 마. 괜찮아!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 

지나고 보면 이 시기도 웃으면서 돌아볼 수 있을 거야."


물론 나도 그렇게 말하곤 했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지

과거의 나는 몰랐다.





출처: 브라보 마이 라이프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히던 문제도 한숨 푹 자고 나면 해결방안이 떠오르기도 하고,

풀지 못해서 골머리를 썩던 문제도 하루를 보내고 다시 풀어보면 신기하게도 풀리기도 한다.

그리고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시련도 나중에 돌아보면 별거 아닐 때도 있다.


이런 경우를 보면 시간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은 시간 속의 우리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무의식 세계 속의 내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썼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 후의 나 자신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도 있다. 

충분한 시간 동안 영글어야 비로소 꽃을 피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과연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줄까?





출처: 한국전통주백과

시큼새큼 요구르트 같은 산미에 상큼한 과일향과 어우러지는 구수한 누룩향,

입안을 꽉 채우는 압도적인 바디감에 풍부한 탄산감.


막걸리 마니아들 사이에서 아마 금정산성막걸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금정산성막걸리는 워낙 개성이 강해서 호불호는 갈리지만, 그만큼 두터운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다.

특히 신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금정산성막걸리는 빼놓을 수 없는 막걸리이다.


신맛이 워낙 강해서 잘 느껴지지 않지만, 사실 금정산성막걸리는 단맛이 꽤나 있는 막걸리다. 

그래서 단맛에 예민한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게다가 바디감이 워낙 무거워서 벌컥벌컥 깔끔하게 마시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금정산성은 유통기한이 지난 후에도 짧게는 몇달, 길게는 몇 년까지도 묵혔다 마시는 걸로도 유명하다. 


보통 한 달 정도 숙성해서 마시는데, 

김치냉장고에 깊숙이 잘 넣어놨다가 마시면

바디감은 가벼워지고 산뜻해지면서 단맛은 줄고, 신맛이 좀 더 깔끔하게 나는 막걸리로 변화되어있다.


쉽게 말해 숙성 전의 금정산성 막걸리가 남성적인 느낌이라면 숙성 후의 금정산성 막걸리는 좀 더 여성적인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오랫동안 잘 숙성된 금정산성막걸리만을 찾는 마니아도 상당수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잘 숙성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쇼케이스 냉장고


보통 집에서 사용하는 냉장고나 가게에서 사용하는 쇼케이스 같은 경우는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경우가 많아 온도가 일정하지 않으며, 특히 냉장고 문쪽에 보관한 술은 열고 닫을 때 흔들리고, 실온에 노출이 많이 되기 때문에 변질이 되기 쉽다. 그리고 쇼케이스는 직사광선에 노출되기 쉬워서 술의 색이나 맛 등 품질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만약 쇼케이스나 냉장고에 보관하던 금정산성막걸리를

숙성 막걸리의 맛을 보고자 그대로 쭉 냉장고에 방치해 두거나,

김치냉장고에 옮겨 숙성하면 그 맛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산패된듯한 막걸리가 나온다.


잘 숙성된 맛의 금정산성 막걸리를 원한다면 애초에 처음 양조장으로부터 막걸리를 받을 때부터

김치냉장고처럼 빛이 통하지 않으면서 온도가 낮은 온도로 잘 유지되고, 열었다 닫았다 하는 일이 적은 곳에 깊숙이 넣어뒀다가 시간이 지나면 마셔야 한다. 김치냉장고가 없다면 냉장고 구석 깊숙이 넣어두거나 채소 칸에 넣어두어도 좋다.


숙성된 금정산성막걸리의 그 맛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단지 시간만이 그 맛을 만들어준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시간과 더불어 관리자의 섬세한 관리, 그리고 막걸리 속 미생물의 활발한 상호작용이 있었기 때문에 매력적인 숙성 막걸리의 맛이 탄생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 무엇도 해결되지 않고, 오직 시간의 흐름밖에는 방법이 없는 문제를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낙담하고 시간에 모든 걸 맡기기보다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그 일이 해결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언젠간 거짓말처럼 문제가 해결되어있을 것이다.


그건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이 아닌

시간을 타고 온, 성장한 나 자신이 해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노력 없이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모든 걸 내팽개치고 시간의 흐름에 맡긴다면 시간만 흐른 채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게 될 것이다.


시간은 노력하는 자에게만 선물을 준다.






시간만 보내며 방황했던 나 자신을 위해서,

시간의 흐름을 타고 아주 조금은 성장한 내가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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