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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Jan 10. 2021

눈송이가 가져다준 '느림'의 소중함
_술빚기

술에서 길을 찾다_酒道

출처: 조선일보

간밤에 엘사가 마법을 부리고 갔나 보다.


소리 없이 밤새 퐁퐁 내려온 눈송이들은 서로 손에 손잡고 하얗고 고요한 겨울왕국을 만들어냈다.

차갑지만 따듯한, 알 수 없는 마법을 가진 눈은 

지치고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에도 고요히 내려앉았다.


너도나도 어린아이가 된 듯이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있다.


간밤에 도착한 새해 선물인듯하다.

새우깡과 아몬드로 만든 눈사람


아무 생각 없이 쌩쌩 지나다니던 거리를

높게 쌓인 눈 때문에 천천히 지나가게 되었다.

그러자 전에 보이지 않았던 예쁜 풍경이 보였다. 


예쁘게 쌓인 눈 덕분일까, 

눈송이가 가져다준 '느림' 덕분일까.





나는 어릴 적부터 남들보다 한 박자 느린 삶을 살아왔다.

어눌하고 느린 말투,

한 박자 느린 반응,

느릿느릿한 행동, 

이런 나의 '느림'은 항상 콤플렉스였다.


학창 시절에는 이런 나의 말투와 행동을 따라 하며 놀리는 아이들이 많았다.

느긋한 겉모습과 달리 속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티는 안 냈지만 주변의 놀림에 타격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말수도 줄어들고, 움츠러들게 되었다.


성장기에 형성된 나의 그러한 습관은

성격으로 정착되어 소심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조용하고 느리게 살아가고 있고,

이런 나의 성격이 마음에 든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간밤에 조용히 내려 소복이 쌓인 눈을 보며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린 것이 나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양조에 흥미가 생겼다.

아직 제대로 빚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원데이 클래스도 다녀보고 학원도 다녀보면서 술을 빚는 기쁨을 알아가고 있다.


라벨까지 만들어본 내 술들.

하지만 내가 빚은 술은 항상 어딘가 이상했다.

거칠고 앙칼진 것이,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길고양이 같았다.

온도도 바꿔보고, 매일매일 관심을 기울여 애지중지 빚어봐도 결과는 똑같았다.

그래서 '양조는 내 길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고

잠시 술빚기를 접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베란다 구석에 방치되어있던 실패한 술을 한입 마셔보게 되었다.

그런데 전의 길고양이는 어디 가고 사랑스러운 개냥이가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거칠고 사납던 내 술은 부드럽고 향기롭게 변해있었다.


알고 보니,

그동안 너무 빨리 술을 빚고 싶은 욕심에

높은 온도에 방치하고, 충분히 익지 않았는데 걸러버린 것이었다.


그 이후 낮은 온도로 

'느리게 느리게'

술을 빚은 결과, 이전과는 다른 술이 나왔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똑같다.

인생은 술과 같아서 서두르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느리게, 천천히 살아가는 인생도 나쁘지 않다.


느리게 말하는 것은, 듣는 사람을 생각해서 말하는 것이고

느리게 걷는 것은, 빠르게 가면 볼 수 없는 예쁜 풍경들을 볼 수 있는 것이고

느리게 결정하는 것은, 그만큼 신중하다는 것이고

느리게 배우는 것은, 그만큼 깊게 이해한다는 것이다.


느리게 사는 것은, 세상을 좀 더 음미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느리고 조용하게 온 세상에 하얀 기쁨을 주는 눈송이처럼

느리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인생이 나는 좋다.


느리지만 행복한 나 자신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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