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서 길을 찾다_酒道
202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다사다난한 2020년이 어느새 저물고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해'가 떴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오늘은 저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 이야기...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으시겠지만.. ㅎㅎ,
"酒道"를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니
'주도 번외판'이라고 생각하시고 가볍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번주 만큼은 일요일이 아닌 1월 1일, 오늘 연재하겠습니다.
2017년 1월 1일.
12시 종이 땡 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음주'이다.
20살이 되기를 기다린 이유는
지긋지긋한 입시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함도,
설렘 가득한 캠퍼스 로망 때문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거였다.
물론 그 전에도 어른들 술자리에 슬쩍 끼어서 야금야금 마셔봤지만
이렇게 쓰고 맛없는걸 도대체 왜 먹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걸 맛있다고 마시는 어른들이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그렇게 어른들의 술을 야금야금 마시는 것과,
20살이 되어서, 당당하게 성인으로서 마시는 술은 달랐다.
역시나 맛은 없었지만,
'크으... 이런 게 어른의 맛인가!' 하며 한잔 두 잔 마시게 되었고
점점 알딸딸해지는 기분이 싫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나의 눈이 번쩍 뜨이게 한 술이 있다.
그건 바로 '과일막걸리'이다.
달달한 주스 맛이 나면서도 시원하고, 살짝 알딸딸한게 신세계였다.
바로 이 과일막걸리 때문에 나는 술쟁이의 길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과일막걸리의 신세계에 취한 나는,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실 때는 항상 과일막걸리를 마셨고
모두가 소주를 마시는 회식자리, 뒤풀이 자리를 겪으며 소주와도 친해졌지만,
여전히 나의 영혼의 동반자는 과일막걸리였다.
과일막걸리를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막걸리도 마시게 되었다.
처음 접한 막걸리는 '느린마을 막걸리'였는데
과일막걸리처럼 인공적인 맛이 안 나면서도 은은하게 과일향이 나면서 달달하고 부드러운 것이
또 다른 신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그 날을 계기로 나는 막걸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이런 나의 막걸리 사랑을 아는 학회 선배님의 권유로
교수님과 함께 전통주 연구 모임을 하게 되었다.
고교시절에 신물 나게 공부를 한 탓인지
대학 공부는 재미가 없었고, 학점을 위해 아무 생각 없이 학교를 다니고 있던 시기였는데
전통주 공부를 하는 건 너무 재미있었고 전통주가 펼쳐놓은 세계에 끊임없이 빠져들게 되었다.
전통주가 내 운명이구나 싶었다.
그 이후로 전통주 관련 교육기관들의 수업을 찾아서 듣기 시작하였고,
그러던 중 2019년 여름, 22살 인생 최대의 터닝포인트를 만나게 되었다.
그건 바로 전통주 소믈리에로서의 역량을 기를 수 있는 "주예사 양성 과정"이다.
그 수업을 들으며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전통주 업계에서 이미 종사를 하고 계시는 분들도 있었고,
모두 전통주에 대한 엄청난 열정이 있으신 분들이었다.
그분들을 보면서 나 또한 자극이 되었고,
우물 밖의 세상을 알게 되었다.
열정도 없었고, 도전을 두려워하던 나는
주예사 수업을 듣고 난 후 자신감을 얻었고
본격적으로 좀 더 깊숙이 전통주 업계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조기졸업이 꿈이었고, 내 인생에 휴학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과감하게 1년 휴학 신청을 하고 대학로의 한 전통주점 매니저로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 사회생활이었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였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눈물과 콧물의 나날들이었고, 솔직히 후회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그 시련들을 하나하나 극복해나가면서
아무것도 모르던 햇병아리는, 조금씩 솜털을 벗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통주를 좋아하고 즐기던 애호가였던 나는
진심으로 전통주를 사랑하고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났다.
마치 부모가 자신의 자식을 동네방네 천재라고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나에게 전통주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1년 후, 2020년.
나는 복학을 위해 잠시 현장 경험을 접기로 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좋지 않게 맞물려 바로 복학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한 학기를 더 쉬며 그동안 못한 경험을 하고자 했다.
인생의 타이밍은 왜 나한테만 나쁘게 오는지..
한 학기 휴학을 결심한 시점, 바로 코로나가 극심해졌고
매일매일을 매장에서 북적북적한 사람들과 함께하던 나는,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더 큰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던 나는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방 안에 남겨졌다.
하루하루가 지루했고, 매일매일이 우울했다.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전통주에 대한 열정 또한 점차 사그라들었다.
힘들었지만 활기차게 일했던 시기와 달리
아무것도 안 했지만 마음이 너무 힘든 시기였다.
열정 가득했던 1년이 신기루 같았고
나 자신이 너무도 보잘것없이 느껴졌다.
바닥에 깊은 굴을 파서 한없이 밑으로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sns에 올라오는 업계 분들의 활발한 열정을
무미건조한 눈으로 휙휙 넘기면서 눈에 아무것도 담지 못한 채
무의미한 스크롤질을 멈추지 못했다.
이 우울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코로나의 영향도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처음엔 이 우울감을 무시해보려 했다.
우울감을 꽁꽁 묻어놓고 애써 외면하며 다른 일을 찾아서 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리 감춰보아도 스멀스멀 새어 나와 나에게 스며들었다.
상담을 받아보려고도 했고, 약을 먹어볼까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 내 우울감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그러기 싫었다.
그러다 문득, 그렇게 새어 나온 우울감이 내 주변 사람들에게서 스멀스멀 손을 뻗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때 정신이 들었다. 이건 아니다.
그래서 다시 잃어버린 내 열정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첫 번째 시도가 '酒道'이다.
술로 인해 시작된 나의 도전은 많은 시련을 가져다주었지만,
그것보다 더 큰 가치를 나에게 안겨주었다.
나에게 열정적으로 살아갈 道을 찾아주었다.
그래서, 술이 열어준 그 길을 다시 되돌아가면서
잃어버린 나의 열정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나의 글을 보면서 나처럼 열정을 잃고 우울감에 사로잡혀있는 사람들이 희망을 가졌으면 했다.
이것이 내가 "酒道"를 시작하게 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