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나여. 불안에 떨고 있는 현재의 나에게 고마워하길..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What doesn't kill me makes me stronger)'
철학자 '니체'의 말이다. 김욱진 작가의 <일상이 산티아고> 책을 읽다가 이 말귀가 내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안면부지(顔面不知) 니체가 갑자기 찾아와 말 한마디 툭 던지고 가버렸다. 나는 이 말귀에서 '것'을 '불안'으로 바꿔 읽는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불안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돌이켜보면 '불안'이 내 삶의 '원동력'이었다. 나이 마흔에 뒤늦은 깨달음 하나 더 추가요.
나는 불안하다. 항상 불안에 떨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들뿐이다. 적어도 겉모습은 그랬다. 그래서 나도 센척했다. 아닌 척했다.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러고는 불안에 엄습당한 나 자신을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바라봤다. 불안과 치열하게 맞서 싸웠다. 혼자만의 고독한 전투였다.
인지심리학에는 '접근 동기'와 '회피 동기'라는 개념이 있다. 접근(接近) 동기는 좋은 상황을 상상하고 이를 위해서 열심히 어떤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회피(回避) 동기는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 삶의 동기는 후자에 가깝다. 그래서 내 삶에서 무언가를 크게 성취했을 때 '기쁨'보다는 '안도감'이 더 컸나 보다. '휴. 다행이다' 대학, 취업 합격자 발표 날에 내가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이다.
그렇다. 나의 행동 근저에는 심한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불안감' 덕분에 나는 발전했다. 이제는 당당하게 말하겠다. '노심초사(勞心焦思)가 나의 기질이다. 최악을 상황을 피하기 위해 남들보다 먼저 준비했다. 머리가 명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오래 앉아있었다. 추운 겨울 동트기 전 따뜻한 이불을 박차고 도서관으로 갈 수 있었던 것도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주변 환경이 바뀔 때 불안이 극에 달한다. 그런 내가 새로운 환경으로 '자진'해서 간다. 나 지금 떨고 있다. 결정의 순간엔 도표를 그려본다. 상황에 따라 장단점을 적어본다. 선택 A: 여기 그대로 있는다. (장점: 익숙한 업무로 편하다, 단점: 정체된 느낌이다), 선택 B: 새로운 환경으로 간다. (장점: 새로운 업무를 배울 수 있다. 단점: '잘할 수 있을까' 불안감이 엄습한다) B를 선택하고 불안에 맞서 외로운 전투 중이다. 선택해야 하는 순간 니체의 또 다른 글귀를 보게 됐다. "풍파는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니체는 명언 제조기인가...
생방송을 앞두고 있는 아이돌이 리허설을 여러 번 한다. 실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생방송이 시작되면 생각지 못한 변수가 등장한다. 방송사고는 생방송의 묘미다. 우리의 삶도 생방송과 같다. 불안할수록 철저하게 준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방송사고는 터진다. 통제 불가능한 변수는 현명하게 대처해나가면 된다. 무대만 박차고 나가지 않으면 된다.
마지막으로 고백 하나만 하자. 사실 내가 이렇게 글 쓰는 데 몰두하는 것도 '불안'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 마음의 풍랑이 잠시 잠잠해진다. 집중하기 때문에 잡념이 순연 사라진다. 그리고 위로가 된다. 마지막 문장 마침표를 찍는 순간 다시 불안 모드로 전환되지만...
이다혜 작가가 쓴 <출근길의 주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현재의 내가 누군가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면 그것은 과거의 나다. 미래의 나여, 현재의 나에게 고마워하길"
미래의 나여. 현재 불안에 떠는 나, 그걸 이겨내고 있는 나에게 고마워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