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가는 미국 공교육의 현실을 보다
미국 유학을 하면서 다양한 미국 친구들을 만났다. 학과 특성상 그룹 프로젝트가 빈번해 평일뿐 아니라 주말에도 미국 친구들과 함께 모여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들도 한국의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졸업 후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직업이 있는 친구들은 이직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하루는 미국과 한국의 인기 직종에 관해서 대화를 하게 됐다. 미국 친구가 물었다. "한국 대학생들은 어떤 직업을 선호해?" 며칠 전에 봤던 한국 뉴스 내용이 생각났다. "의사, 공무원, 교사"를 답하는 순간, 한 친구가 크게 외쳤다. "교사? 정말로 교사도 인기 직종 중 하나야?"
그 친구 직업은 미국 초등학교 교사였다. 이직을 위해서 대학원을 다닌다고 했다. 그 친구는 "미국에서는 교사의 처우는 열악하다"며 "다른 직업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낀다"고 하소연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인기 직종은
미국에서 인기 직종은 무엇일까? 미국 시사주간지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US News and World Report)는 매년 '미국 최고의 직업'을 선정해 발표한다. 상위 30위권 직업을 살펴보면, 미국인들이 직업을 바라보는 가치관도 함께 엿볼 수 있다.
2020년 미국에서 최고의 직업은 '소프트웨어 개발자'였다. 3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다음으로 치과의사, 보조 의사(PA), 교정치과 의사, 간호사, 통계학자, 내과 의사, 언어치료사, 구강외과 전문의, 수의사 순이다. 반면, 교사와 공무원은 인기 직종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이유는, 첫째 역시 돈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지만, 연봉의 고저(高低)는 있다. 당연히 연봉의 크기와 직업에 대한 선호는 비례한다. 둘째는 일과 생활의 균형 즉 '워라밸'이다. 셋째는 업무의 발전 가능성이다. 최근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직업이 뜨고 있는 이유다.
박봉에 시달리는 미국 교사
생각해보면 미국 교사들의 불평을 처음 듣는 게 아니었다. 2018년 우리가 미국 애리조나에 도착했을 때에도 미국 전역에서 교사들이 파업하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애리조나의 경우 교사들이 빨간색 옷을 입고 길거리와 의회 앞에 모여 촛불 집회를 열고 있었다.
미국 교사들이 길거리에서 한목소리로 외쳤던 것은 "교사들의 처우 개선"이었다. 수십 년간 정부의 교육 예산 삭감으로 처우가 만신창이가 됐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학부모들 또한 교사의 열악한 처우로 학교 교육의 질이 더욱 나빠질 것을 우려했다.
미국에는 현재 약 300~350만명의 공립학교 교사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립교육통계센터(National Center for Education Statistics)에 따르면 공립학교 교사의 평균 연봉은 약 6만달러(약6700만 원)를 조금 넘는다.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을 고려하면 결코 높은 수준은 아니다.
교사들의 소득은 동등한 교육 수준을 가진 다른 직종과 비교해도 약 20% 정도 낮다. 교사의 임금 상승률은 인플레이션을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전미교육협회(National Education Association, NEA)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교사의 평균 연봉은 15.2% 증가했지만,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실질 연봉은 3% 감소했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교사들은 연평균 500달러(약55만원) 개인 돈으로 종이, 필기구류 등 교구를 마련한다. 교육 예산 삭감으로 소모품비를 충분히 지원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사인 미국 친구는 "급여도 쥐꼬리만 한데 교구까지 사비를 털어 사야 하니 울화통이 터질 노릇이다"라고 하소연을 했다.
투잡 뛰는 미국 교사
NEA에 따르면 현재 미국 교사 전체의 30% 정도가 생계를 위해 투잡(Two-Job)을 뛴다고 한다. 사실 당시 첫째 아이의 미국학교 담임선생님도 투잡을 가지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했었다. 아이 픽업을 위해 학교에 가면 담임 선생님이 부랴부랴 두 번째 직업을 위해 달려가는 모습을 종종 봤었다.
한번 우리는 투잡에 대해서 미국 선생님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선생님은 "애리조나 교사 평균 연봉은 4만7000달러 정도이며 미국 50개 주에서 40위권으로 최하위다"며 "나는 아이들 가르치는 것을 매우 좋아해 투잡을 하면서도 선생님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봉을 이기지 못하고 교직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임용 후 첫 5년 이내 약 20% 정도가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찾는다는 통계가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우수한 인력이 처음부터 교직으로 유입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애리조나의 경우 공립학교 교사의 약 10%가 교원 자격증이 없는 시간제 대체 교사로 충당되고 있었다. 부족한 교원을 메꾸기 위해 해외에서 교사를 모집하는 경우도 빈번해졌다. 미국 연방 자료에 따르면 2017 한해에만 특수 비자를 통해 2800명의 외국인 교사가 고용됐다.
무너져가는 공교육
미국에서 교사의 인기가 사라진 원인은 교육 예산을 줄여왔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교사의 대규모 해직도 단행된 바 있었다. 반면 미국의 정보통신(IT)기업 등 민간 부문 일자리가 성과에 따라 높은 임금을 받는 점도 교사의 인기를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미국인들의 이중적인 태도도 문제다. 교사의 파업 취지는 이해하나, 세금의 증가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캘리포니아 교육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인 열에 일곱은 현재 교사의 처우가 매우 부당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납세자 입장이 되면 주 정부 예산에서 교육비 비중을 낮추도록 압박한다.
미국 헌법에 따르면 교육제도는 각 주(State)가 담당한다. 공립학교의 90% 이상의 예산은 주 정부로부터 온다. 매번 주 정부 예산 우선순위에서 교육예산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따라서 교사의 급여 수준도 매년 정체되고 있다. 학교 환경도 더욱 열악해진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결국, 부유한 부모들은 자녀들을 교육의 질이 좋은 사립학교로 보내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낮은 질의 공교육을 받게 된다. 사회의 불평등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이것이 바로 세계 명문 대학이 모여있는 미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공교육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