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스토리는 작가의 꿈을 향한 여정에 소중한 친구입니다
브런치 스토리 작가가 되기 위해 2번 낙방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시로 도전했습니다. 브런치 스토리 작가라는 문이 생각보다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이프랜드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이야기로 도전을 했습니다. 3일 만에 아쉬운 낙방소식이 문자로 날아왔습니다. 나와 결이 맞지 않는 곳이라는 생각으로 한동안 묻어두었습니다.
취준생 아들이 집에 오면서 나를 챙기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외부 모임에도 점점 참여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아들이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바라지를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쳐갔습니다. 마음마저 힘들어지던 때에 글로 마음을 다잡아 가기 시작했고, 그 글로 다시 브런치 스토리 작가에 도전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브런치북이 '취준생 엄마의 우당탕 일기'였습니다.
브런치 연재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의 일상과 추억을 글로 남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브런치 스토리 제안하기를 통해 한 통의 이메일을 받게 됩니다. 낯선 이메일에서는 '월간에세이'에 실을 원고를 제안하고 있었습니다. 일상에서 얻게 되는 잔잔한 감동을 담은 이야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제 글과 잘 맞는 제안이었지요. 그런데, 그 당시에 보이스피싱이 유행하고 있어서, 무지한 저는 잠시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돈을 요구하거나 인증번호를 요구하는 메일이 아닌 데다 '월간에세이'는 무척 오래된 권위 있는 잡지였습니다.
2000자 전후로 글을 써야 하고 종이책으로 나오기에 10번 이상 퇴고를 했습니다. 퇴고를 하는 내내 글은 다양하게 변화했습니다. 마감 날짜에 아쉬움을 남긴 채 원고를 보냈습니다. 작년 10월 6일에 첫 에세이 글을 메일로 보냈습니다. 글이 실린 책이 나오기를 한참 기다렸습니다. 새해가 되었지만 소식이 없어서 마음을 접고 있었는데, 올해 2월 초가 되었을 때 제 글이 실린 에세이 한 권이 우편함에 놓여 있었습니다. 한글 파일에 있던 글과 월간에세이에 실린 글은, 활자는 같았지만 격이 무척 달라 보였습니다. 보석하나를 얻은 기쁨이었습니다.
5월이 되었습니다. 감격이 사그라들 때쯤이었지요. 친근한 주소로 이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이번에는 3회 연재로 글을 써달라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그 당시 브런치 연재글로 발행하려고 다듬던 글이 있었습니다. 그 글을 주제로 두 번째 에세이를 완성합니다. 6월 초에 원고를 보내고 난 후 2주 동안 다음 원고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 두었습니다. 억지로 생각한다고 해서 글감이 나타나지는 않더라고요.
6월 셋째 주가 되었을 때였어요. 당시 매실액을 담기 위해 인터넷으로 매실을 미리 주문해두었는데요. 특별한 문자가 날아왔어요. 우박으로 인해 매실이 상해서 제때에 매실을 보낼 수 없다는 문자였지요. 당황스럽기보다는 걱정이 앞섰답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텐데 그 농장주인이 걱정되는 거였어요. 천천히 주셔도 된다는 답장을 보내며 세 번째 글감으로 써야겠다는 영감을 받게 됩니다.
7월이 왔어요. 이번 제안의 마지막이자 네 번째 에세이 주제가 떠 오르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다양한 주제가 떠 올랐지만 마뜩잖았답니다. 그러던 중 밤새 200미리 가까이 폭우가 내렸습니다. 단시간에 많은 비가 내린 경우는 자주 없었어요. 폭우가 내린 다음날, 자주 가던 무풍한송로에 산책을 가게 되었는데, 폭우로 개울이 넘쳐서 다리가 파손되고 황톳길 가장자리에는 흙이 실려나가 패인 곳이 많았습니다. 지나온 삶에서 폭우로 패인 상처로 힘들어했던 기억이 떠 올랐고, 집으로 돌아와 단숨에 글을 써 내려갔습니다.
한 편의 첫 글과 세 편의 연재글. 네 편의 에세이를 쓰면서 에세이를 쓰는 법을 알아가게 됩니다. 일상을 기록하는 글은 오랫동안 써 왔기에 쉬웠지만 에세이는 단순한 일기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한 단락이 필요했습니다. 일상과 연결된 감동의 포인트를 찾는 것이 에세이를 쓰는 화룡정점인 거였어요. 그리고 퇴고의 중요성도 깊이 알게 되었답니다.
이 모든 일들이 브런치 스토리를 통해 얻게 된 행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