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찾아오자 마당은 신비롭게 변하기 시작했다. 홍매화, 백매화나무에서 꽃이 터져 올랐다. 땅에서는 튤립, 수선화가 쑥 고개를 내밀었다. 겨울 간 부쩍 마르고 언 땅이 녹자 작고 어여쁜 꽃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어릴 적 할머니네서 시골의 삶을 경험한 바 있다. 그래서 무모하지만 용기 있게 쉼이 주어지자 시골로 이사를 왔다. 물색하던 지역에서 우연찮게도 전셋집이 있었고 이곳까지 들어왔다. 밤이면 칠흑같이 어둡고 아침이면 지리산 너머로 밝게 동이 터 오르는 그런 곳이다.
여름을 앞두고 풀과 나무가 뒤섞이어 쑥쑥 자라났다.
풀을 매는 일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어릴 적 할머니 밭에서 땅콩 캐던 기억이 흐릿하게 남아 있지만, 이렇게 단독주택을 가꿔본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집을 그냥 바라만 보았다. 예쁜 것들이 있기에 바라보았다. 도시에서처럼 쉽게 바라보고 편히 취했다. 그런데 내가 시골의 삶에 낭만에만 빠져 있는 사이, 잡초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정말 빠른 속도로 자라나고 있었다.
들꽃도 예쁘고 함부로 꺾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이 낭만을 취하려 온 내겐 독이 되었고 점점 현실감이 느껴졌다.
들에서는 잡초도 꽃이야. 알고 있지만, 이제는즐기게 되는(?) 풀매기
뭐가 잡초고 뭐가 꽃인지도 모르게 하루 자고 나면 손가락 한 마디만큼 쑥 자란 풀들이 마당 이곳저곳에서 삐죽거렸다. 가만히 두었더니 집은 점점 정글처럼 변해가고 급기야 집주인 분이 오셔서 집 좀 가꿔 달라고 몇 마디 하고 가셨다.
그때부터 꾸준히 풀을 뽑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렸을 때 시골에서 몇 년 살았던 시간이 약이 되었다. 잡초와 직접 심은 꽃과 나무들을 구분하며 뽑았다. 잡초가 난 자리에는 꽃나무들이 자리를 내주기 일수였다. 그래서 잡초를 뽑아야 했다.
잡초를 뽑은 자리에 라벤더도 심고 카렌듈라도 심었다. 천일홍과 메리골드, 수레 국화도 한 포기 심었다. 화단에 난 제비꽃은 그냥 두었다. 처음 해보는 정원관리여서 뭔가 엉성하지만, 잡초만 잘 뽑아주어도 마당은 제법 집주인이 심어놓은 꽃들이 나고, 내가 심은 꽃들이 피며 조화롭게 풍경을 이뤄가는 듯하다. 모르는 식물들은 검색도 해보고, 이 풀이 나무가 꽃이 지금쯤 자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잡초를 뽑아주니 말랐던 풀들도 잘 뿌리를 내려 푸릇해졌다.
한낮에 내가 심어 놓은 꽃들에 노랑나비가 옮겨 다니며 꿀을 빠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뭉클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그때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 곡을 듣고 있었다. 잡초를 매일 뽑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는데, 뽑은 자리에 피어오른 꽃들 위로 나비가 길을 지난다.) 가꾸니 그만큼 벌과 나비가 날아든다.
여름이 들어서고 나서는 하루 30분에서 1시간은 풀을 매야 하는 것 같다.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 모기들이 달라붙어 엉덩이를 물고 가서 너무 간지럽다.
누리는 만큼 이어지는 손길과 노동,
내가 좀 더 알았다면, 다시 단독주택을 살게 된다면 그땐 봄이면 넋 놓기보다는 씨앗과 모종을 구해다 구석구석에 많이 심을 것 같다. 흙이 있는 자리에는 뭐든 피어오르는 것 같다.
남편은 "행복해? 그래서 만족하느냐고!?" 가끔 내게 묻는다. 시골살이를 하겠다는 내게 허락은 하지만 자신은 텃밭일이던 마당일이건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아낸 터라, 잡초뽑기는 나의 몫이다. 내가 자주 달라붙어 땅만 캐고 있으니, 남편이 포기했는지 이제는 주말에 와 텃밭에 예초기를 돌려주기 시작했다.
나는 이사 와서 텃밭만 가꿨고 마당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알아서 꽃과 나무가 나길래 그냥 두면 되는 줄 알았다. 이제 순서를 바꾸었다. 마당을 가꾸고, 텃밭은 심은 작물 외에 부분은 예초기로 민다. 여름이 되니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텃밭의 풀들이 자랐다. 텃밭은 두 평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역시나 내겐 과분하게도 너무 넓은 땅들이다. 전셋집이 이곳 한 곳뿐이라, 한옥에 정말 아름다운 곳이지만, 내겐 우리 아이들과 머무르기에 크고 과분한 곳 같다.
그만큼 더 손길을 줘야 하고, 또 손길을 주는 만큼 이 집도 가꿔 나갈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집에 대한 생각이나 땅을 대하는 마음도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
그래도 아름다워, 꿈처럼 살다 가야지.
바라보고 있으며 마음이 평온해진다. 이렇게 초록에 둘러싸여 지내는 삶이 참 감사한 것 같다. 손도 많이 가고 모기도 뜯기지만, 그만큼 찾아드는 마음의 평온이 있다. 시골의 낭만이 현실이 될 때는 마음이 분주했는데, 자연에 순응하고 나니 자연스러워진다. 그래서 더 살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단 두 달 사이 풀을 매고 마당을 일구며 닿는 마음들이다. 오늘도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하다.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재밌게 지내자. 시골의 삶은 녹록지 않지만, 그래도 아름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