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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김선미 Sep 05. 2022

아빠가 암이라서 오히려 좋았어요

아빠를 떠나보낸 후 내가 한 말


 아빠의 장례식 때 내가 했던 말이다. 


 아빠가 암인데 좋다니, 이 무슨 불효막심한 말인가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장례식장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제목만 읽으신 분들은 심기가 불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게 이 말을 들었던 분 중 어느 한 분도 내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분은 없었다. 그 뒤에 내가 한 말 때문이다. 



“그 덕에 서로 준비할 시간이 있었으니까요.”  



 아빠는 폐암 4기 암 환자였다. 진단받은 기수에 비해 아빠는 꽤 씩씩했다. 그런 아빠를 ‘유쾌한 아만자’라 칭했다. 아빠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불리는 별명이 나쁘지 않은듯했다. 결혼하고 아이 하나 낳아 잘살고 있었던 2016년의 어느 날, 아빠는 폐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남편의 권유로 친정과 합가를 하고 3년을 보냈다. 함께 사는 3년 동안 아빠는 하나였던 손주가 셋으로 늘었다. 셋째가 6개월이 될 무렵. 남편의 이직으로 내 평생 살았던 인천을 떠나 순천으로 이사를 했다. 분가 후 2년 동안 아빠가 걱정되어 인천과 순천을 옆 동네 다니듯 숱하게 다녔다. 




 아빠가 ‘6년 차 아만자’가 될 때까지 끊임없이 나를 두렵게 만든 건 ‘아빠가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라는 생각이었다. 예상은 하고 있으나 예상할 수 없는 영역. 그래서 내가 했던 건 ‘그저 곁에 있으려 한 것’이었다. 합가하면 합가한 대로 분가하면 분가한 대로 아빠의 옆에 있으려 노력했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니다. 같이 있을 땐 식사 시간에 함께 밥 먹고, 식후 커피를 마시고, 세 아이의 재롱을 보며 웃고 떠들었다. 떨어져 있을 땐 영상통화로 표정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며 떨어져 있는 아쉬움을 달랬다. 


 우리 집뿐만이 아니라 다른 집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특별함이 없는 일상이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그런 일상이 점점 특별해졌다. 그동안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알면서도 ‘늘 그랬던 것처럼 내일도 별일 없겠지.’ 하며 매일 찾아오는 오늘을 당연하게 지나쳤다. 


정신 차리고 보니 많은 것을 놓치고 있음을
문득 깨달았다.  



 

 아빠를 평생 남기고 싶어 작년 한 해 동안 아빠를 인터뷰하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들었다. 온전히 아빠만을 위한 책을 선물한 건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었다. 부녀 사이에 오가는 소소한 대화의 재미를 모르고 살았던 나는 인터뷰를 통해 그간 몰랐던 아빠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욕심이 생겼다. 아빠를 더 알고 싶고, 아빠를 위한 책을 한 번 더 만들고 싶었다.  


 올해도 아빠를 인터뷰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을 시점에 아빠의 건강은 빠르게 악화 되었다. 결국 아빠의 인터뷰를 더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개그맨 박명수의 말처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었던 모양이다.

아빠의 장례를 치르고 친정에서 엄마의 정리를 돕다가 아빠의 수첩을 발견했다. 같은 디자인의 양지노트가 연도별로 있었고, 펼친 노트 안에는 매일의 기록이 있었다.


“그래, 이거야.”     


 하늘로 떠난 아빠와 못다 한 인터뷰를 하는 대신 아빠의 수첩으로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암 진단을 받은 2016년도 수첩부터 아빠가 마지막으로 썼던 2022년도 수첩까지 7권의 수첩을 친정에서 가지고 왔다. 아빠가 아만자로 살아왔던 세월을 7권의 수첩으로 다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잊고 있던 기억을 소환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빠가 돌아가셨음에도 계속 아빠에 대한 글을 쓰려는 이유는 아빠를 잊고 싶지 않아서다. 어떻게든 아빠와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 쑥스럽다는 이유로 아빠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아빠의 책을 완성해서 진짜 작가가 되겠다는 나 스스로와의 약속도 지키고 싶다.      


 아빠가 암이라서 오히려 좋았다. 아빠가 암 진단을 받았기에, 언제가 끝일지 모르는 마지막을 우리는 준비할 수 있었다. 덕분에 후회 대신 좋았던 추억들이 가슴 속에 채워졌다.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분과 가족에게 글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드리고 싶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일상을 살아갈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는 곳도 사는 방식도 각기 다른 남이지만, 어차피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글을 읽고 있는 독자분도 우린 누군가의 가족이니까 말이다.



표지 사진 : 내가 찍은 아빠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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