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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거나 Jan 15. 2022

'있지만 없는 아이들'을 읽고

 작년에 이 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바빠서 읽지 못했다.  내가 받는 시사인 잡지가 매년 발행하는 올해의 책꽂이 중 출판인이 추천한 올해의 국내서에 은유 작가의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 있었다. 평소에 읽고 싶었던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기도 하고  추천 도서 목록에도 있어서 방학을 하자마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다.

벌써 3년이 흘렀을 것 같다. 내가 담고 있는 책모임에서 작가와의 만남에 은유 작가님이 오셨다. 그 당시에는 시사인에 가끔 기고하는 분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 당시 은유 작가와 만난 책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었다.  작가와의 만남 이후로 더 작가님을 좋아하게 된 케이스다. 가장 작가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차마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따뜻하게 향하고 있는 작가님의 지속적인 시선이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실업계를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라면 '있지만 없는 아이들' 미등록 이주 아동 이야기다. '미등록 이주 아동'이란 단어도 조금 생소하다. 우리가 쉽게 말해버리는 불법체류자의 아이들이다.  

올해 나도 17년 차에 접어든다. 17년 차 동안 나는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아이들을 만나 본 적이 없다. 사실 이 책을 읽기까지는 주민번호를 부여받은 것 또한 큰 혜택이라는 것을 몰랐다. 나는 아직 미등록 이주 아동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주민 번호가 없다는 것은 건강에 이상을 느껴도 비싼 병원비 걱정에 병원을 갈 수 없고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콘서트를 예매할 수 없고, 친구들에게 계좌로 돈거래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험 가입이 안돼서 수학여행을 떠날 수 없고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각종 경진대회를 나갈 수가 없다. 다행히 이주 아동 교육권이 생겨서 고등학교까지는 다닐 수 있지만 그들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태어나서 사용한 적도 없는 모국어를 쓰는 본국으로 강제로 돌아가야 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부모님의 의지로 한국에 와서 한국에 태어났을 뿐인데 태어나는 것부터 불법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 삶, 태어남과 동시에 공정하지 않은 그들의 삶이 안타까웠다.

이탁건 변호사(한국도 이들이 필요해요), 석원정 이주인권활동가(정직한 한 사람이 중요해요), 이란주 작가 겸 이주인권활동가(말하는 소리가 작으면 듣는 귀라도 커야한다)와 같은 사람 덕분에 미등록 이주 아동들이 한국에서 삶을 조금씩 연장해 가고 있다. 하지만 언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는 삶이 조금씩 연장된 것일 뿐 완전한 해결은 안 되고 있었다.

 16년 전쯤 부끄러운 기억이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다. 영어 업무를 했을 때 필리핀에서 온 원어민 관리를 맡은 적이 있었다. 필리핀에서 온 청년은 나와 나이가 비슷했었다. 나랑 업무적으로 만날 일도 많고 나이도 비슷했기 때문인지 당시 내게 호감을 보였던 기억이 있다. 그 호감이 나는 그 당시 달갑지 않았었다.  만약 미국에서 온 청년이 내게 호감을 보였다면 그가 주는 호감에 반감을 가지지 않았을 것 같다. 그 당시 그 청년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해줬는지도 나는 기억에 없다. 타국에서 온 사람에게 겉으로만 친절하게 포장했던 부끄러운 내 모습이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오랩되었다.  자신이 담임이 아닌데도 난민신청이 불인정되어 2주 내로 이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민혁이의 사연에 귀를 기울여줬던 민혁이의 국어 선생님의 모습에도 나는 한 없이 부끄러웠다.  과연 나는 그 말에 귀를 기울여줬을 교사였을까? 하는 물음에 자신 있게 Yes라고 말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시를 잘 쓰고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우즈베키스탄 이주아동 달리아가 그래도 우리 사회는 더 낫게 변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했다. 예전에 달리아가 히잡을 쓰고 엄마와 장을 보러 다니면 전에는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이 많았지만 요즘은 "히잡이다"라는 말 정도에 멈추는 한국인이 늘어났다고 한다. 나도 16년 전의 나의 생각과 행동을 쓰레기통에 넣고 싶다. 달리아가 말했듯이 나도 그들을 보는 시선이 바뀐 한국인 중 하나이다.

 '보다 먼 이웃을 사랑하라'는 활자의 의미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삶 속에 스며들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 나는 마냥 따뜻하기만 한 교사는 아니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아이들에게 날카롭게 날이 섰고 어떤 부분에서는 입 안의 캐러멜처럼 부들부들 녹게 행동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 작년보다는 더 따뜻한 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한다. 보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고통을 없애주는 세상보다 고통을 알아보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은유 작가님의 신문 인터뷰를 보았다. 우리가 시선이 가지 못했던 곳에 글로 다른 세계를 보게 해 준 은유 작가님이 감사하다.  달갑지 않은 뉴스로 어지러운 세상만 존재하는 것 같지만 세상에는 따뜻한 글이, 따뜻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음에 희망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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